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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넘고 울타리를 넘어서 ᆢ

양현모 2014. 12. 14. 11:39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인가?

 

애비 잘 만난 조양호·조남호·조수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책봉 받은 나라.

 

이병철 회장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으로 부자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가 부자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재계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사교육비로 한 달 수천 만 원을 써도 재산은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한 달 100만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순이익 수백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오는데,

 

2년치 임금 7만 5000원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 올라간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을까?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커녕 여전히 회장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100만원 주던 노동자 잘라내면 70만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을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게 또 얼마나 같잖았을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 명의 노동자가 골반압착으로, 두부협착으로, 추락사고, 감전사고로 죽어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 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도시 대구,

전자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의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들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50이 넘은 농민 이경해는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그는 down down WTO를 외치며 갔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을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할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거다.

 

맨날 우리만 죽고 맨날 우리만 패배하는 거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김진숙 추도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