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갔으나 다른
한 시대는 오지 않고
한 사람이 갔으나 그를 마중할
한 사람은 오지 않고
머리를 찧으며 부끄러워했으나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진실은 아직 책장 꽂혀 있고
광장은 멀리 있는데
진리는 아직 풍문으로만 떠돌 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데
어찌 놓아드리나요,
어찌 잘 가시라 하나요
저들은 과거의 신문을 찍어대고
낡은 법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고
매국의 역사 앞에 충성을 맹세하고
앞서간 사람들 몸 눕혀 분단을 이은
다리를 걷어내고
죽은 망령 불러내는 굿판을 벌이고 있는데
어찌 편히 쉬시라 손 흔드나요
(중략)
당신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보았습니다
성공과 허망은 한 뿌리였습니다
영광과 좌절은 같은 뿌리였습니다
그 경계에서 당신은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던졌습니다
거침없이 일어나라 하였습니다
그 경계 속 허망의 깊이가
인간의 깊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고 가는 것은
시대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이 몸을 던지면 시대가 됩니다
당신이 남기신 것은 업적도
이름도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사람들 가슴 가슴에 스며들어
한 시대를 이룰 것입니다
당신이 남기고 간 그 사람들이
이제 무대에 오르고 조명이 켜질 것입니다
그때서야 당신을 광장에서
마중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에 가 계십시오
떨리는 손을 내밀겠습니다
-백무산 시인의 김대중대통령 추도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