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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교사 49재

양현모 2023. 9. 5. 15:38

당신은 지키지 못했지만 교육은 지키겠습니다
- 서이초 박인혜선생님 49재 날에

박선생님,
오늘은 중음신으로 배회하던 당신의 영혼이 좋은 세계에 다시 태어나길 기원하며 마지막 칠칠재를 지내는 날입니다. 당신은 이름이 참 예쁜 학교 서이초라는 학교로 가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젊은 교사였습니다. 처음 만날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들떠 있었고, 아이들 앞에 선 교사의 모습을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던 새내기교사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학교는 당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불안하고 두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박선생님,
교사들은 당신의 소식을 듣자마자 금방 알았습니다. “당신은 나다”, “당신은 우리다” 교사들은 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던 교사들이 울면서 당신의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당신이 목숨을 끊었던 교실 밖에 꽃 한 송이를 내려놓으며 꺾인 꽃이 되고만 당신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 거기 줄지어 선 조문 행렬은 ‘꺾인 꽃들의 행진’이었습니다.

박선생님,
그 눈물이 물줄기를 이루었고, 눈물은 매주 모여 강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죽음 앞에 처음엔 그저 한 개의 검은 점이었던 교사들이 5천 개의 점이 되었고, 2만 개, 6만 개의 점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엊그제는 20만, 아니 30만 개의 점이 되어 국회 앞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움츠러들었던 교사들의 목소리가 함성이 되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지키지 못했지만 교육은 지키겠습니다.”“우리는 교육을 지킨다, 교육부는 교사를 지켜라”“교육 활동은 아동학대가 아니다, 아동학대법 개정하라”
이렇게 외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는 절박했고, 비장했습니다. 30도가 넘는 기온으로 토요일 오후는 뜨거웠고, 아스팔트도 끓고 있었지만, 교사들의 함성은 그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그저께도 전북과 서울 두 곳에서 두 명의 교사가 목숨을 버렸고, 어제도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가 세상을 등졌습니다. 교사가 목숨을 끊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교사를 울부짖게 만드는 나라는 미래의 아이들을 통곡하게 만듭니다. 교사가 모욕당하는 학교에서는 어떤 아이도 존중받는 아이로 자랄 수 없습니다. 교권이 지켜지지 않는 교실에서는 어떤 아이도 바른 인격체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교사의 자존감이 무너지면 아이들은 방관의 강물로 떠내려가고 맙니다. 교사들이 가르칠 용기를 잃어버리면 나라는 미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박선생님,
당신이 살아계실 때 당신의 의지처가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정치는 당신의 기댈 곳이 되지 못했습니다. 국회는 당신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곳이 되지 못했습니다. 당신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정치가 되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의 동료 교사들이 요구하는 ‘아동학대법’,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이런 법들을 고치고 다듬어 9월 중에 당신 앞에 내놓겠습니다.

박선생님,
당신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49재에 모인 교사들을 교육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합니다. “법과 원칙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선생님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추모하는 게 동료 교사로서의 원칙”이라고 어느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공교육을 멈추게 만드는 사람들을 벌하고 교육 활동을 하는 교사를 보호하는 게 진정한 법과 원칙”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말을 지지합니다. 교사들을 지키겠습니다. 슬퍼하는 이들에게 칼을 들이대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눈물을 칼로 베는 건 야만입니다. 49재에 참가한 교사들을 징계하면 우리가 나서겠습니다. 박선생님을 지키지 못했지만 교사들은 지키겠습니다. 교사들을 지키는 일이 이 나라 교육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예쁘고 아름다웠던 박인혜선생님,
여름내내 붉게 피던 목백일홍꽃이 시들고 있습니다. 중음신으로 떠돌다 마지막으로 이승을 떠나는 오늘밤. 선생님이 사랑했던 아이들의 어린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가십시오. 짧았지만, 선생님이 주신 사랑은 아이들 가슴에 오래 남아 있을 겁니다. 아픈 시간은 내려놓고 가십시오. 감당하기 힘들었던 일들은 내려놓고 가십시오.
당신은 우리입니다.
당신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선배 교사, 국회의원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