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세상

민주노총, 일하는 99%의 정의 실현해야

양현모 2012. 2. 4. 11:32

민주노총, 일하는 99%의 정의 실현해야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인터뷰
[0호] 2012년 01월 10일 (화) 홍미리 기자 gommiri@naver.com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사진=이명익기자
“우리 사회가 상식에 기반한 따뜻한 사회면 좋겠어요. 힘 있는 소수가 아니라, 일하는 다수의 생각과 이익이 사회의 중심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쟁과 효율보다는 연대와 평등이란 단어가 우리 삶의 중심가치가 되는 따뜻한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노동과세계>가 새해 들어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41세)을 만났다. 그는 2009년 3월 민주노총 법률원에 와 2011년 9월 법률원장직을 맡았다. 그 전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서 4년간 판사로 재직했고, 로펌에서도 3년 동안 근무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오는 2월1일 10주년을 맞는다. 민주노총 부설기관이라는 조직적 위상을 갖고,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노동탄압 관련 소송과 자문, 상담을 주로 하고 있고, 미조직/비정규직 무료법률 상담과 소송지원 업무도 맡고 있다.

민주노총 정책사업에 대한 법적 조언이나 TF팀 구성에 참여하는 것도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금속노조 법률원,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을 포함하여 민주노총 법률원에는 변호사 12명, 노무사 7명, 송무차장 7명 등 총 26명이 함께 하고 있다.

“타임오프 소송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우리 조합원들과 노조에 현실적으로 닥친 문제라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교사, 공무원 1,600여 명이 1달에 1만 원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대량 기소된 사건도 법률원 동료들과 함께 처리하고 있습니다.”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관련 소송은 신 원장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91년 고3 때 국사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되었다고 한다. 출근투쟁에 나선 선생님을 응원하러 교문으로 나갔다가 학생주임에게 끌려가 몽둥이로 맞고 반성문을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된 선생님을 응원했다고 반성문을 썼던 까까머리 고3이, 20년이 지나 그 선생님의 동료 선생님들을 변호하게 된 거죠. 개인적으로 벅차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재판부는 일부 무죄·면소판결, 일부 벌금 30~50만원 내외를 선고했다. 교과부가 전원 파면을 지시하고, 검찰도 무리수를 두며 강경하게 밀어붙인 것을 감안할 때 다행스런 결과였다. “근본적으로 재판과 상관없이 교사, 공무원도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에 지장이 없는 사적 생활 공간에서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헌법 정신과 세계적 추세에도 맞습니다.”

지난해 말 청계피복노조 국가배상소송이 이소선 어머님을 포함한 원고들의 승소로 일단락 됐다. 전태일열사뜻에기초해만들어진청계피복노조의정당성을확인하는의미있는판결이었다.
최근 민주노총 법률원이 수행한 사건에서 좋은 결과가 잇따르지만 패소한 사건도 없을 수는 없다. “패소했을 때 오히려 저희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많아요. 일반 로펌에서는 흔치 않은 풍경이죠. 저를 포함한 법률원 성원들이 더욱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신 원장은 민주노총이 스스로 힘과 실력이 없다고 자조하며 위축되는 것, 그 연장선에서 노동운동이 법률과 정치에 매달리는 모습에 비판적이다. “외람되지만 노동조합이 단결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사용자-정부와 대등한 교섭을 벌여 문제를 푸는 것이 원칙이라고 봅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이 원칙이자 유일한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 내부적으로 단결되지 않고, 사회적 힘이 없는 상황에서 법률, 국회, 정치에만 매달리는 것은 위험하고, 주객이 전도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밖에서 바라보는 입장일 때 그는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단체라고 생각했다. “민주노총이 동네북처럼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온갖 말은 난무하지만 그래도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지원할 수 있는 조직, 임금체불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자대회가 끝나면 조용히 쓰레기를 치우는 총국성원이 있는 조직, 복수노조 시대에 온갖 회유와 압박을 견디고 굳건히 남아 있는 조합원들이 있는 곳은 민주노총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대거 피고가 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사용자는 민주노총을 탈퇴하거나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해당 피고에게 전달했을 때 담담히 그렇지만 단호하게 그냥 거액 손배를 맞겠다고 하시더군요. 조합원과 노동운동의 원칙을 위해 구속의 위험을 무릅쓰는 임원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민주노총 정신이 살아있다는 걸 느낍니다. 다만 민주노총이 덩치가 크고, 워낙 사회가 빠르게 변하다보니 그에 맞게 스마트하게 변하지 못한 측면은 있는 것 같습니다.”

신 원장은 민주노총의 법적, 조직적 책무가 우리 조합원들의 권익향상이지만, 더 크고 중요한 사회적 책무를 안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일하는 99%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권익향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하고, 특히 미조직, 비정규직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야말로 민주노총의 존재와 정당성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 원장은 민주노총이 정파별, 노조별 모든 이슈를 차치하고, 모든 힘을 모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면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이 제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스스로 모든 역량과 돈을 쏟아붓고 희생을 감수하면서 우리와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과 함께 살고 싶다고 호소하는 모습을 꿈꿔 봅니다. 립 서비스가 아니라, 구체적인 희생과 실천을 담보로 호소했을 때 그 진정성은 분명히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고, 그것이 총선이나 대선준비보다 더 시급히 우선적으로 검토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신인수원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작년에 배운 건배사 중에 ‘빠삐용’이 있습니다. 빠지지 말고(빠), 삐지지 말고(삐), 용기잃지 말자(용)는 것인데, 그 말뜻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올해 우리 모두 ‘빠삐용’처럼 힘차게 나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