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소식

쌍용차 분향소 찾은 KBS교향악단 "죄송합니다"

양현모 2012. 5. 27. 13:28

쌍용자동차, 고통의 신비로부터

[기고] 고통의 신비로부터*

김소연(시인) 2012.05.25 09:35

김소연 시인의 고통의 신비로부터
아스팔트의 균열에서 자라는 들풀과
그 잎을 적셔주는 새벽녘의 이슬과
이슬 속에 담긴 태양의 공평함과
평등을 빼앗긴 노동자의 월급봉투와
그를 아버지로 둔 아이들의 멍울과
나에게 멍울을 물려준 나의 아버지의 길고 긴 한숨
의 도움을 받아
숨소리여, 그 소리를 공경하나이다

*
이모부가 죽었을 때에 너무 어려 잘 몰랐던 일과
큰아버지가 죽었을 때 너무 알고 싶었던 비밀들과
오빠가 죽었을 때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던 외면들과
산재로 점철된 가족사의 알아야겠음과 살아야겠음의
어금니와 어금니의 앙다뭄과 억울해서 흘리는 짠 눈물과
나의 가족사와 우리들의 가족사의 닮은꼴
의 도움을 받아
내가 알고 있거나 알지 못하는 죽음들을
공경하나이다

*
죄를 지어라, 그러면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죄를 짓지 말아라, 그러면 벌을 받을 것이다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어떤 작별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놓여 있다
어떤 죽음은 목숨을 잃었어도 생명을 얻게 된다
이 말이 우리 앞에 도착하게 될 때까지,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사람이라서 사람에게
들어온 목소리를 들리는 목소리로
들어주소서

*
이제 우리들 각자의 것들을 모아주소서
한숨을
숨소리을
닮은꼴의 가족사를
죽음을
목소리를
사람을.

* 프랑시스 잠의 시 <고통의 신비>에서 제목과 형식을 빌려옴.

[시에 붙이는 한 마디]

아버지가 과자를 만드는 공장에 다니실 때 엄청나게 많은 과자를 집에 가져온 적이 있었습니다. 몇 달 정도를 그랬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일입니다. 그게 월급 대신 받아온 것이란 것도 모르고 그저 과자를 실컷 먹는다고, 친구들에게 과자를 나누어준다고 철없이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전화를 받고 쓰러진 아버지를 보았고 소리내어 울던 엄마를 보았고 더 이상 출근하지 않던 아버지를 보았고, 너무 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딸 앞에서 언제나 죄인의 표정만 지으며 늙어가시는 아버지를 보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난을 물려받았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멍에라며 묵묵하게 살아왔지만, 모든 부당함과 부당함의 점철과 부당함의 끝간 데 없는 오만과, 특히 그 오만에 길들여지는 것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이 시를 썼습니다.

견디지 말기로 합시다.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덕기업과 독재자의 오만은 학살의 시대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기나긴 투쟁을 하고 있고 스물두 명의 동료를 잃은 쌍용의 해고노동자들에겐 지금-여기가 아우슈비츠와 다름이 없습니다. 한 철학자(조르조 아감벤)는 "아우슈비츠는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품위가 아닌 것이 되는 장소, 자신의 존엄과 자존을 잃지 않고 있었다고 스스로 믿었던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부끄러움을 경험하는 장소이다"라고 했습니다. 품위를 잃지 않은 채로 자신의 존엄만을 위해 살다가는, 부끄러움보다 더 큰 치욕이 삶을 삼켜버릴까봐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의 오만이 우리의 존엄을 되찾아줄 때까지 말하고 말하기로 합니다.

쌍용차 분향소 찾은 KBS교향악단 "죄송합니다"

이동권 기자 su@vop.co.kr

입력 2012-05-26 12:31:52 l 수정 2012-05-26 21:18:06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안타까운 죽음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함신익 상임지휘자의 낙하산 인사와 법인화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는 KBS교향악단 단원들이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방문해 교향악과 시가 어우러지는 문화한마당을 열었다.

 

26일 저녁 세종로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연주회를 KBS 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목관악기팀 5명, 현악기팀 10명으로 구성된 KBS교향악단 실내악 연주단이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여론 형성에 힘을 보태고자 26일 오후 7시 35분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방문해 바하, 모차르트, 비발디 등의 명곡을 40여 분간 연주했다.

KBS교향악단 단원들은 Mozart 소야곡 'Eine kleine Nachtmusi스k' 중 1악장으로 문화제의 포문을 열었다. 이 곡은 4악장의 세레나데 곡으로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에 더블 베이스가 추가되는 형식으로 작곡됐지만 현대에는 관현악곡으로 편곡돼 연주되곤 한다.

이어 장중하고 비장미가 넘치는 '바흐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조곡 제2번'과 전세계 클래식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비발디 사계 중 봄 1악장'과 '여름 3악장', Holst(홀스트)의 'Warlock', Grieg(그리그)의 'Holberg' Suite 중 1악장. 시민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아침이슬'과 '상록수' 등이 연주됐다.

이밖에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Cesar Franck(쎄자르 프랑크)의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과 Popper Polonaise (포퍼 폴로네이즈), 영화 쉰들러 리스트 OST, 영화 미션의 OST 'Gabriel's Oboe',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예고편으로 삽입돼 유명해진 'Kazabue'가 대한문 앞 광장에 울려퍼졌다.

아울러 김소연, 신용목, 유희경 시인이 무대에 올라 힘차고 감성적인 목소리로 시낭송을 펼쳤다.

발언하는 이창형 교향악단 단원대표

26일 저녁 세종로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KBS 교향악단 연주회에 앞서 이창형 KBS 교향악단 단원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국립 오케스트라인 KBS교향악단 단원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다르지 않다. 음악밖에 몰랐던 예술가들이 상임지휘자 낙하산 인사와 법인화 문제로 투쟁하면서 사회의 아픈 지점에 무관심했던 점을 자각한데다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는 KBS교향악단의 사정을 국민에 알릴 필요가 절실해서다. 또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호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죽음의 비보가 전해지자 자신들도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인 여론 형성에 부족하나마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의지도 작용했다.

이창형 KBS교향악단 단원대표는 "죄송합니다. 우리가 무지했음을 고백합니다. 이곳 저곳에서 분노, 절규,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며 "단 한 분의 죽음도 애통한데 22명이나 됩니다. 우리의 음악으로 22명의 영혼을 위로하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동지 여러분께 힘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김정우 쌍용자동차 노조지부장은 "엊그제 22명의 영혼이 쓰레기차에 실려가 고통스러운데 KBS교향악단 단원들이 찾아와 좋은 연주를 들려줘 감사드립니다"면서 "고통, 설움, 착취 당하는 세상을 후대에게 무려주지 않도록 희망을 가지고 싸울 것이며, 분향소를 찾은 여러분들 모두 KBS교향악단의 공연을 유쾌한 마음으로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쌍용차 문제해결 위한 '100인 희망지킴이'가 바자회를 통해 바련한 수익금 중 5백만원을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에 전달해 문화한마당의 의미를 더했다.

한편 지난 4월 19일 '100인 희망 지킴이'가 발족한 이래 대한문 분향소 앞에는 각계각층의 연대와 시민들의 추모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 희망지킴이 소설가 공지영은 쌍용자동차 문제를 알리기 위한 르포 작업에 들어갔고, 변영주 영화감독도 22명의 영화감독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제작에 착수했다.

거리로 나선 KBS 교향악단

26일 저녁 세종로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연주회를 KBS 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를 위한 연주회를 듣는 시민들

26일 저녁 세종로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연주회를 KBS 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주를 백기완 선생님과 정동영 전 의원과 시민들이 함께 듣고 있다.


노동자를 위해 거리 연주하는 KBS 교향악단

26일 저녁 세종로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연주회를 KBS 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를 위한 연주회를 하는 KBS 교향악단

26일 저녁 세종로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연주회를 KBS 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와 함꼐 KBS 교향악단

26일 저녁 세종로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연주회를 KBS 교향악단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