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지역을 중심으로 중소영세 조선소의 줄도산이 예고되고 있으며, 수만 명의 조선업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유럽발 경제위기와 중국과의 저가수주 경쟁으로 이미 2010년부터 조선산업에 적신호가 켜졌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작년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를 겪으며 조선업 전반의 위기가 드러났지만, 결국 중소영세 조선소의 연쇄 도산이 현실화되면서 조선업 노동자들의 악몽은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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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영세 조선소, 연쇄도산의 위기
지난 2월, 통영의 중소 조선업체인 삼호조선이 청산절차를 밟았다. 전반적인 조선경기의 침체로 지난해 4월, 법정관리를 신청했지만 결국 한 달 만에 부도처리 돼 공장문을 닫게 됐다.
삼호조선은 1~2만톤 유조선을 건조하던 회사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직원 500여명이 근무하며 수주잔량 기준 세계 100대 조선소로 호황을 누려왔다. 하지만 최종 부도처리 된 2월, 삼호조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80명 뿐이었다.
삼호조선의 부도는 통영지역 중소 조선소의 줄도산을 경고하는 신호탄이었다. 통영지역의 또 다른 중소 조선소인 21세기 조선과 신아SB, 성동조선 등도 연쇄 도산을 앞두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21세기 조선은 오는 6월로 건조물량이 고갈되며, 청산형 법정관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통영에서 가장 큰 조선소인 성동조선해양은 구조조정을 전제로 채권단이 자금지원을 검토 중이다. 세코중공업 등은 결국 작업장을 잠정폐쇄하며 공장 문을 걸어 잠궜다.
신아SB의 경우도,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현장을 떠났고, 남아있는 노동자들 역시 일부 일손을 놨다. 신아SB는 지난 2008년 이후 4년간 단 한 척의 배도 수주하지 못했다. 현재 건조작업을 하고 있는 선박 4척 역시 9월이면 작업이 끝난다. 12월에는 워크아웃이 종료되는 시점으로, 파산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다.
정경국 산아SB지회 부지회장은 “물량이 축소되다보니 4000명에 육박했던 노동자들 중 반 이상이 현장을 떠났고, 현장에 남아 있더라도 손 놓은 파트가 속출하고 있어 현재 15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대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체불역시 본격화됐다. 정경국 부지회장은 “4월 25일, 관리직 급여 중단을 시작으로 현장직의 급여와 상여금 중단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신아SB는 산업은행과 무역공사가 지분의 70%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산업은행에서 워크아웃기간 연장을 통해 2014년 상반기까지 지원을 이어가면, 2014년부터 수주를 통해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말 워크아웃기간이 종료되는 만큼, 워크아웃기간 연장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담판을 지어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세계1위 조선업 몰락하나...정부 무대책 일관
현재 조선경기 침체의 직격타를 맞고 있는 조선업체는 선박 완성 공정으로 사업을 확장한 중소 업체들이다.
중소영세 조선소가 줄도산 위기에 시달리고 있지만, 한국의 빅3 조선소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삼호조선이 청산절차를 밟은 지난 2월 14일, 현대중공업과 STX조선해양은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선의 수주를 얻어냈다.
성만호 대우조선노동조합 위원장은 “빅3의 경우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해양프로젝트 사업 등의 기술력이 확보돼 있다”며 “하지만 중소사업장은 이 같은 기술력이 없는 상황에서 중소형 선박으로 경쟁을 하다보니 유럽경제위기에서 물량 축소와 중국과의 저가수주 경쟁에 밀려 파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정부의 대책은 전무하다. 성만호 위원장은 “중국의 경우 국가에서 조선업을 전략사업으로 키우면서 기술력과 재정 등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세계 1위를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한국정부는 조선업의 위기상황에서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금속노조 조선분과위원회는 지난 3월 22일, 국무총리실에 2012년 대정부 3대 공동요구인 △총고용(비정규직 포함)보장 △조선산업 발전전략위원회(노사정 대화기구) △중소조선소 지원 대책마련 등을 전달했다.
이어서 관련 정부부처인 지식경제부에 면담을 요청하고, 4월 12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자동차조선과장과 금속노조 조선분과 대표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측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성만호 위원장은 “한진중공업의 수빅조선소 이전으로 타격을 입은 노동자들과 산아SB, 삼호조선, 성동조선, 21세기 조선 등의 노동자까지 수만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2010년부터 예견돼 왔던 조선업종 불황에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해 온 만큼, 이제는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들의 고용과 조선업 위기 타계를 위해 3대 요구를 즉각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