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국회 김신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장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죽음과 절망의 역사를 토해내자 숙연해 졌다.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은 김신 후보자를 두둔하기 위해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봤지만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의 죽음과 절망의 역사 앞에 역풍이 불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인숙 새누리당 청문위원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생생한 증언에 사쪽 과의 대화 여부 정도를 묻고 “건강해서 다행이다. 안타깝다”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런 김진숙 지도위원의 증언은 야당의 결정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민주통합당 인사청문위원인 박영선 의원은 13일 국회기자회견장에서 “김신 후보자는 종교적 편향 문제와 근로자 단결권에 대한 존중문제가 후보자로 적격한지가 가장 큰 판단의 축”이라며 “민주당 청문위원들이 마음의 갈등 겪고 있는 부분은 장애인으로서 몇 안 되는 판사라는 점이지만, 어제 한진중 김진숙 지도위원의 대법관으로 적절치 않다는 강한 발언이 참고 대상이며 노동계 입장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 김주익 전 한진중 지회장 죽었던 크레인에 김진숙 올랐단 사실 알아
김신 대법관 후보자는 2011년 1월에 부산지법 수석부장판사였다. 김신 후보자는 그해 1월 6일 밤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을 상대로 당직실에 낸 ‘퇴거 단행 및 사업장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다음날 바로 받아들였다. 김진숙 지도위원이나 노동자들의 의견은 전혀 들어보지 않았다.
김신 후보자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퇴거에 응하지 않자 1월 19일엔 “크레인에서 내려올 때까지 하루 100만 원씩 한진중공업에 지급하라”고 간접강제 결정을 내렸다. 한진중 사쪽은 간접강제 결정이 나오자마자 김진숙 지도위원과 민주노총부산본부, 한진중공업지회를 상대로 1억 1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 결정은 해고 노동자들에겐 절망의 결정이었지만, 김신 후보자는 소신에 따른 문제없는 판결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오른 크레인에서 전 한진중공업 노조 고 김주익 지회장이 목을 매 자살한 장소임을 알고 있었다고 밝혀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졌다.
김 후보자는 “김진숙 씨가 올라간 타워크레인은 저도 보고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거기서 2003년도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주익 씨가 농성을 하다 목매달아 자살한 일이 있던 곳”이라며 “그래서 당시 부산지역에서는 큰 충격을 주었던 장소이다. 그 장소에 김진숙 씨가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 빨리 내려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매일 이행 강제금 100만원 부과를 정당화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를 두고 “고 김주익 지회장이 올라갔던 그 계단을 거쳐, 그 사람이 목을 맨 난간을 지나서, 그 사람의 시신이 뉘어 있던 공간에서 생활을 했는데, 그런 사람에게 하루 100만원의 벌금이 압박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김신 식의 사고”라고 꼬집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도 김 후보자의 이런 답변을 두고 “굉장히 온정적인 것 같지만 그 답변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선 위원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결권과 관련된 조항에 비춰봤을 때 월급도 받지 못하고 생계가 어려운 노동자에게 하루 100만 원의 강제이행금을 부과하는 것이 양심에 맞느냐”고 질문하자 김 후보자는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강제금은 당사자의 행위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빨리 퇴거시키기 위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수단이다. 다소 피신청인의 형편보다 많은 금액을 부과해야 집행이 빨리 된다고 생각한다. 다소 많이하는 것이 관례다”라고 반박했다.
김 후보자는 또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생계가 힘든 약자에게 강제이행금을 마구 부과해도 되느냐”는 박 위원의 질문엔 “당시 신청인인 한진 측에서는 하루 500만 원을 신청했으나 나는 (금액을 낮춰) 1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또한 “대단히 죄송하다”면서도 “김진숙 씨가 한 달이나 두 달, 오랫동안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대법관 후보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에 개탄”
김진숙 지도위원은 김신 후보자의 이런 인식을 두고 “여기 앉아있는 게 대단히 모욕감을 느낀다. 그 정도로 법과 노동자의 현실이 멀다”며 “대법관 후보로 올라와 있는 분이 그 정도 인식밖에 안 된다는 게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김진숙 위원은 “대법관까지 꿈꾸는 사람이라면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최소한의 상식은 있어야 한다”며 “500만 원 짜리를 100만 원으로 깎아줘서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라고 말했다.
김 지도는 이어 “후보자가 당시 한진중공업이 직장 폐쇄 상태로, 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 의문스럽고, 노동자들을 벼랑 끝에 내모는 판결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절망을 안기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지 전혀 생각을 않은 것 같다”며 “쌍용차에서 왜 22명이 죽어 나가는지 여기 와서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어디다 호소를 해야 겠느냐”고 노동자의 아픔을 드러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어 2003년 자신이 올랐던 크레인에서 일어난 당시 김주익 노조지회장의 죽음과 그 죽음과 해고의 고통을 붙잡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의 아픔을 담담하게 청문위원들에게 말했다.
“2003년 크레인에서 목을 맸던 김주익 지회장과 저는 같은 부서에서 같이 용접을 했습니다. 같이 징역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사람을 잃은 그 크레인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하루 100만원의 벌금이 압박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법이 노동자들을 너무나 모른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그 추운날 동지가 죽어서 내려온 그 크레인에 올랐겠습니까. 그날 부산이 영하 13도였는데 계단을 잡고 올라가는데 손이 쩍쩍 얼어붙었고 자물쇠를 뜯는데 안 뜯어져서 1시간을 씨름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올라갔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왜 거기까지 올라갔는지 사전에 한번이라도 조사하든가 누구 얘기 들어봤다면 그런 얘기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또한 법이 얼마나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는지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지도위원은 “이 시간에도 전국 곳곳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천막이 있다. 대한문 앞에는 22명이 죽어간 쌍용차 분향소가 있고 그 바로 맞은편에는 6년을 길바닥에 있는 재능교육의 천막농성장이 있다”며 “한진중공업도 오늘 36일째 다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들어갔다. 김신 후보 같은 분들이 그런 노동자들의 사정을 알고, 판결을 내리기 전에 그런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한 번이라도 되돌아보면 사회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주익에 밥 올리던 그 노동자, 지금은 정신병원에...”
“이 밥으로 건강하게 살아내려오길 바라던 노동자의 간절한 마음, 법이 아나”
김진숙 위원은 이어 “우리 조합원 한 사람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 분이 2003년도에 김주익 지회장 밥을 129일 동안 올렸던 사람”이라며 “그 밥을 해서 올릴 땐 얼마나 마음이 간절했겠냐. 이 밥을 먹고 건강히 지내다가 무사히 살아내려 오시라고, 밥을 올릴 때마다 기도했지만 김주익 지회장이 죽어서 내려온 거다. 바로 내려오지도 못했다. 2주일 동안 장례도 못 치렀다. 그 2주 뒤에 곽재규라는 노동자가 또 다시 죽고 나서야 시신이 내려오고 장례를 치렀다. 그 이후 이 조합원이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 사람을 한진중공업이 해고했다”고 밝혔다.
김진숙 위원은 “그리고 제가 다시 크레인에 올라갔는데 은둔생활을 하던 그 분이 나타나서 저에게 간절하게 울면서 얘기했다. 너는 살아서 내려와야 한다. 살아 내려오지 않으면 내가 못 산다고 했다. 제가 살아 내려오면서 이 분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 이후에 회사가 다시 휴업하고, 11월 10일 날 복직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해지면서 다시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며 “노동자들이 이렇게 절망에 빠져있을 동안 이 나라 법은 도대체 뭘 했는가. 누구의 편을 들어왔는가”라고 절절한 해고노동자의 아픔을 전했다.
김진숙 위원은 “정말 법만 제 역할을 했어도 저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잘리고 죽어나가진 않았을 것”이라며 “한진중공업에서 그런 가처분 신청서가 왔으면 그걸 검토하기 이전에 왜 회사가 노동자들을 자르고, 무슨 사유가 있었는지 그걸 검토하는 게 우선 아니냐. 이런 결정이 내려지면 이 결정에 의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절망하고 죽어나갈지 그걸 먼저 헤아리는 게 법 아니냐. 법만 제대로 선다면 억울한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뿐더러 저렇게 길바닥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숙 위원은 청문위원들에게 “이런 분들이 대법관 되면 노동자들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그나마 노동자들이 삶의 벼랑 끝에서 마지막으로 움켜지는 풀포기가 법이라는 건데 (김신 후보자는) 그 풀포기 쥔 손을 짓이기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마음이 따뜻하고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에 단 한번이라도 가본 분이 대법관이 되는 것이 역사의 순리 아니냐”고 김신 후보자에 대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또한 “김신 후보자께서 대법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령 된다 하더라도 정말 이 땅에서 섬겨야 하는 예수가 누군지, 고난 받는 사람이 누군지, 버려진 사람이 누군지 따뜻한 눈으로 되돌아보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