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이희호 '조문 방북', 햇볕정책으로 돌아가자

양현모 2011. 12. 26. 19:32

이희호 '조문 방북', 햇볕정책으로 돌아가자

[환송기] 아흔의 노구 이끌고

        엄동설한에 평양 방문

최경환 (beyondiom) 기자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방북하는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이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출입사무소를 통해 북으로 출발하기 전 "저희 방북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짧게 입장을 밝혔다.
ⓒ 권우성
김정일 사망

"잠을 잘 못 잤어요."

 

오늘 아침 7시 이희호 여사님은 동교동 자택 문을 나섰다. 어둠이 걷히지 않는 새벽 찬 기운 속에서도 여사님은 밝은 표정이었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 권노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원혜영 민주통합당 대표 등 30여 명의 인사들이 환송했다. 정부 대표로 나온 김천식 통일부 차관도 이희호 여사의 방북을 환송했다. 취재진들의 카메라 불빛이 새벽 동교동 골목을 환하게 비췄다.

 

여사님은 승용차에 탑승하시기 전 취재진들을 향해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출발하기 전 자택에서 이희호 여사님을 뵈었다. "잘 주무셨습니까. 편안히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드렸다. 여사님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잠을 잘 못 잤어요"라고 말씀하신다. 어젯밤 긴장이 되셨던 모양이다.

 

응접실에서 이 여사님은 환송을 위해 찾아온 인사들과 김천식 통일부 차관과 환담을 나눴다. 여사님은 또 어젯밤 잠을 잘 못 잤다고 말씀하셨다. 원혜영 민주통합당 대표는 여사님에게 "민주통합당은 여사님의 방북이 남북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북측에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좋은 계절에 오시라"는 초청이 조문길 돼

 

이번에 서거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 퇴임 이후 2004년 6·15남북공동선언 4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리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일행의 방문 때를 비롯해 세 차례에 걸쳐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님을 초청한 바 있다. 그때마다 김정일 위원장은 "좋은 계절에 오시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6·15 10주년인 2010년 북측은 "김대중평화센터 리희호 이사장 선생과 6·15 관계자"를 초청한 바 있다. "좋은 계절에 오시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은 이번 초청 당사자의 조문길로 대신하게 된 셈이다. 이희호 여사님의 방북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그리고 2007년 금강산 관광을 가신 이후 세 번째 방북이다.

 

이희호 여사의 방북은 큰 의미가 있다. 정부 일각과 보수진영은 김정일 사망 이후 '급변사태'니 북한의 급속한 붕괴를 기대했을지 모르겠지만, 북한은 이른바 '김정은 체제'로 빠르게 안정돼 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일본도 북한의 조속한 안정을 바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MB 정부, 기회를 놓쳐선 안돼

 

정부도 이제 김정일 위원장의 사후 김정은 체계와 대화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희호 여사의 방북은 비록 '답례 조문방북"의 성격이 기본이지만, 그 영향은 클 것으로 보인다. 많은 국민들이 이희호 여사님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훈풍이 돌고, 중단된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관광 등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재개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4년여 동안 모든 것이 중단되고, 연평도 사태에 보듯 전쟁의 위협마저 느끼는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결국 남과 북은 대화하고 협력하는, 공존하는 관계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다. 이희호 여사의 방북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다시 돌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사후 조성되고 있는 국제정제에 엇박자를 놓거나 국민정서에도 반하는 강경정책을 계속한다면 이희호 여사의 방북으로 얻은 기회도 놓칠 수 있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이번 김정일 위원장 서거 이후 정부는 조의 조문 문제에 대해서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이희호 여사의 방북 협상에서도 정치인 배제, 정부 실무지원단 불참 등에서 보여주듯이 정부는 속 좁은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정부가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가는 모처럼 얻은 기회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은 11년 전인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남북분단의 역사를 협력과 화해, 통일의 역사로 물꼬를 바꿨다. 오늘 이희호 여사님이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이희호 여사님은 나이가 90이다. 아흔의 노구를 이끌고 엄동설한에 평양을 방문한다. 여사님의 어깨가 무거우실 것이다. 이희호 여사님께서 편안히 조문을 마치고 내일 밝은 표정으로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