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세상

희망버스>사람을 보라!

양현모 2011. 8. 26. 13:37

김진숙과 전태일의 유서, 같지 않기를!

사진가들이 만든 희망버스의 장면들

<사람을 보라>

노순택 (nannaya) 기자
  
3차 <희망버스>, 85호 크레인으로 날려보내는 풍등
ⓒ 조재무
희망버스

누구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세상에, 우리는 산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마다는 저마다의 사진기로 세상을 보는 방법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이제 사진기는 사진기에만 붙어있는 게 아니라, 전화기에도 노트북에도 심지어 장난감이나 자동차에도 붙어있다.

 

하루에 사진 찍는 횟수가 밥숟가락 뜨는 횟수보다 많아진 세상에, 우리는 산다.

현대사회는, 적어도 한국사회는 사진범람공화국이라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려는 것일까, 무엇을 재현하려는 것일까, 어떤 장면을 나누려는 것일까. 도대체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본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유발한다.

재현은, 재현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요구한다.

 

사진은, 오만가지 기능을 품고 세상을 활보하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목격의 전달기능'이다. 목격자에겐 증언의 욕망이 의무처럼 뒤따른다.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 한금선
희망버스

의문이 경이로움이 될 때

 

희망버스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계획에 참여해 달라는 시인 송경동의 애절하고 집요한 꾐에 빠진 사진가 예닐곱이 한중중공업 담을 넘을 때만해도 그것은 하나의 의문이었다. 의문이 그렇게 쉽게 경이로움으로 바뀔 줄 아무도 몰랐다. 그 날의 새벽은,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정말 이렇게 살아도 좋은지를 저마다에게 묻는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케 한 시간이었다. 연대였다. 우리가 잃어버렸고, 결국 되찾아야 할 것은, 눈물의 연대였다. 눈물과 땀이 뒤섞인 소금의 연대였다.

 

그러므로 "다시 와 달라"는 해고노동자들의 호소에 "가는 듯 돌아오겠다"고 응답한 건 희망버스 기획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탑승자들이었다. "이 버스는 재가동되어야 한다"고,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저 소금꽃들이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저마다 아우성쳤다. 의문이 경이로움이 되는, 그런 장면 앞에서 사진기들이 작동한 건 당연하다.

 

약속대로 2차 희망버스가 재가동되었을 때, 더 많은 사진가들이 버스에 올랐다.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졌다. 부산역에서 시작된 평화행진이 폭우를 뚫고 영도에 닿았을 때, 탑승객들을 맞이한 건 한진노동자들이 아니라 거대한 물대포 장벽이었다. 물대포와 최루액이 쏟아지는 봉쇄와 저항의 장면들이 고스란히 사진기에 담겼다.

 

  
희망버스를 가로막은 경찰의 물대포와 최루액
ⓒ 류우종
희망버스

 

3차 희망버스는 조선소 앞 산복도로 골목골목을 헤매는, 봉쇄의 빈틈을 찾아 걷고 또 걷는 산행이었다. 왜소했던 희망버스가 거대한 물결이 되어가는 사이, 경찰에게도 응원군이 생겼다. '친북좌파 척결과 어르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성난 눈을 부릅뜬 이른바 '어버이'들께서 주먹을 휘두르며 버스로 골목으로 난입했다. '절망버스는 꺼지라'는 관변단체들의 현수막도 곳곳에 나부꼈다. 어느새 희망버스는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뜨거운 버스가 되어 있었다. 놓칠 수 없는 장면들, 기억해야 할 장면들 앞에서 각자의 사진기는 쉼 없이 찰칵댔다.

 

그랬던 그 버스에, '4대강 3종세트'(사진집, 시집, 에세이)를 기획했던 아카이브 출판사 박지홍 주간이 탑승하고 있었다. 사진가들과 박 주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금 당장의 연대'를 '사진으로' 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처음에 뜻을 모았던 소수의 사진가만이 아니라, 희망버스를 목격하고 기록했던 더 많은 사진가들의 참여가 필요했다. 매체 소속 여부, 나이와 경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목격한 자의 책임이 이 긴급한 사진집 한 권으로 땡처리 될 수 있는 건 아닐지라도, 희망버스에 몇 모금의 윤활유를 넣을 수는 있을 거라는 점에 모두가 긍정했다.

 

참으로 긴급하게, 하지만 밀도 있게, 그러므로 몇날 며칠을 새며, 따끈따끈한 사진집 한 권을 만들어 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 박승화
희망버스

 

무엇을 보는가, 사람을 본다

 

용산을 되돌아본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를 들을 줄 몰라서, 생사람 여섯이 망루에서 타 죽었다. 살려고 올라간 사람들이 죽어서 내려왔다.

 

한진을 되돌아본다.

 

벌써 몇 명이 그곳에 영혼을 묻었는가.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의 슬픈 이름들이 저 거대한 크레인에 보이지 않게 새겨있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그들의 얼굴조차 모른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하지만 85호 크레인에서 233일째 외롭게 싸우고 있는 김진숙을, 조 회장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살려고 올라간 김진숙이 죽어 내려온다면, 조남호는 지금껏 그래왔듯 쉽사리 그녀를 잊겠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지금은, 망각기계가 되어버린 조 회장이 치료받아야 할 시간이다. 온 몸을 던져 싸워온 김진숙이 살아 내려와 지친 몸을 달래야 할 시간이다.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를 '김진숙의 유서마저 같은 나라'로 만들어 버린다면, 우리는 희망이라는 언어를 버려야 할지 모른다.

 

 

 

  
<사람을 보라> 앞표지
ⓒ 임태훈
희망버스

그래서 이 사진집의 제목은 <사람을 보라>다.

처음엔 제목 아래 "남이 괴로운데 나는 아무렇지 않다면, 옆에서 누군가 고통의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내 귀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사람이다"라는 문구를 넣었으나, 최종작업에서 뺐다. 왜 그랬을까,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33x25cm의 커다란 판형에 124쪽 분량이다. 사진만 빼곡한 건 아니다. 본문에 실린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는 시인 송경동이 쓴 '희망을 절규하는 이유'다.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와 <끝나지 않은 기다림>은 소금꽃 김진숙이 쓴 '우리 자신의 추모사'다. 뒤편에는 참여사진가 23명의 짧은 후기도 담겨있다.

 

인세와 수익은 바닥난 희망버스의 연료를 채우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오는 27일 4차 희망버스가 가동되는 서울의 거리에서 기름을 넣어줄 수도 있고, 아래에 링크된 주소를 통해 온라인에서 기름을 넣어 줄 수도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4140

http://www.yes24.com/24/goods/5589575?scode=032&OzSrank=9

 

이 책은 우리의 시각적 목격담이다.

우리가 목격담을 나누는 이유는, 이런 목격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사진만큼 쉬운 게 없고, 사람사진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걸, 우리는 절감한다.

 

  
<사람을 보라> 뒷표지
ⓒ 정기훈
희망버스

  
희망의 등
ⓒ 김수진
희망버스

  
물 올려 보내기
ⓒ 김홍지
희망버스

  
용역에게 끌려 나오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 이재원
희망버스

  
버스에 난입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끌려나오는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 유성호
희망버스

  
조남호 회장의 불출석으로 한진사태 국회청문회는 오래도록 파행을 겪었다.
ⓒ 권우성
희망버스
  
사람을 찾습니다.
ⓒ 이치열
희망버스

  
멀리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영도의 거리에서는 오늘도 촛불집회가 이어진다.
ⓒ 박민혁
희망버스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외부세력은 정녕 누구일까
ⓒ 김흥구
희망버스

  
희망행진은 절망스런 경찰의 물대포장벽에 가로 막혔다.
ⓒ 박정훈
희망버스

  
더이상 죽이지 마라
ⓒ 양태훈
희망버스

  
영도의 밤
ⓒ 오은진
희망버스

  
정부가 해결하라
ⓒ 이명익
희망버스

  
불량버스 오지 말라!
ⓒ 이미지
희망버스

 

  
사람은 꽃 보다 아름답다
ⓒ 이정선
희망버스

  
한진노동자 곽재규가 몸을 던졌던 4도크
ⓒ 정택용
희망버스

  
국가의 행복 = 나의 행복? 자본의 행복 = 노동의 행복?
ⓒ 최형락
희망버스

  
<사람을 보라>에는 송경동의 글,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와 김진숙의 글 '끝나지 않은 기다림',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 송경동
희망버스

  
김진숙은 오늘로 233일째, 고단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땅의 소금꽃들이 더이상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절망과 희망을 함께 고민하는 4차 희망버스가 27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가동된다.
ⓒ 노순택
희망버스

 

"조합원들 일하게 해 주세요"
청문회 전 김진숙씨로부터 온 편지
[0호] 2011년 08월 20일 (토) 편집국 kctuedit@nodong.org

       두 달째 전기가 끊어진 깜깜절벽 크레인위에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이 글을 씁니다.

일요일날 자정이 다된 시간, 8차선 도로 건너편 인도에는 30여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오늘밤도 모기에 뜯기며 노숙을 하겠지요.

저들 중에는 이 크레인 중간 지점에 올라와 있는 해고 노동자의 아이들과 부인들도 있습니다.

이 염천더위에 가마솥처럼 달궈진 크레인위에서 가족들의 생존을 지키겠다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비가 오면 물위에서 밤을 지새우는 가장을 지켜보는 마음이 어떨까요.

저분들 중에는 서울에서 오셔서 주말을 길에서 보낸 분도 계시고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대전에서 오셔서 노숙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제가 모르는 분들입니다.

8년 전 사람이 죽어나간 크레인 위에 또 누군가 올라가 있다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오신 분들입니다.

저분들을 보면서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저분들만큼의 애틋함이 있었다면 저분들만큼의 측은지심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정리해고가 막무가내로 자행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희망버스가 처음 오던 날이 제가 크레인에 오른 지 157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떤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야당국회의원 서너분이 다녀가신 정도였습니다. 고립된 채 절망했고 그때마다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희망버스가 3차까지 이어지자 비로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내 국회청문회까지 열리게 됐습니다.

사회의 무관심속에 쌍용차에선 정리해고 이후 15명이 죽었고, 한진중공업에서도 2003년 두

사람이 생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3년도에도 650명의 대규모 구조정이 있었고 거기 반발한 노조가 2년을 싸웠습니다.

당시 김주익 지회장이 이 85호 크레인에 129일을 매달려 있었습니다.

회사는 물론 언론도, 정치권도 그의 절규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냉대속에 129일 만에 밥을 매달아 올렸던 밧줄에 목을 맸습니다.

지회장의 시신은 2주가 넘도록 이 크레인을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사측의 어떤 조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15일 만에 곽재규라는 노동자가 또다시 목숨을 끊고 나서야 합의가 이루어졌고 한사람의 시신은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또 한사람의 시신은 도크바닥에서 끌어 올리는 기가 막힌 합동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스물 한 살 청춘시절에 같은 공장에서 만나 거의 매일 얼굴 보며 같은 꿈을 꿨던 사람들입니다.

여름이면 온몸에 땀띠가 돋고 땀으로 안전화가 질퍽거리는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도 그 사람들이 있어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질풍노도 같은 시절을 옛말삼아 얘기하며 좀 달라진 세상에서 같이 늙어갈 수 있을거라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두 사람을 한꺼번에 땅에 묻고 돌아온 날 밤, 보일러는 올리기 위해 무심코 스위치에 손을 대다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습니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묻은 손으로 저만 살겠다고 보일러를 켜는가.

차가운 땅바닥에 20년지기 두 사람들 묻고 저만 따뜻하게 살겠다고 보일러를 켜는 나도 인간인가.

그 후로 8년 동안 단 한번도 보일러를 켜지 못했고 크레인에 올라오기 전날 밤 처음으로 따뜻한 방에서 잤습니다.

2010년, 회사는 다시 432명의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조합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구조조정 중단에 노사합의 했습니다.

그리고 채 1년이 되지 않아 400명의 정리해고를 다시 통보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정규직들은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하청노동자들은 찍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이 공장에서 3천명 가까이 일자릴 잃었습니다.

왜 막대한 흑자가 난 기업에서 그 흑자를 만들어낸 노동자들만 고통 받아야 하는지 꼭 밝혀주십시오.

경영진들은 경영실패의 책임은커녕 주식배당금에 현금배당에 연봉까지 인상시킨 기업에서 왜 노동자들만 거듭되는 정리해고로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반드시 밝혀주십시오.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의하더라도 조합원들의 노조사무실 출입이 허용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역들을 동원해 출입을 막는 회사에 대해서도 밝혀주십시오.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저항하여 외쳤던 구호가 ‘해고는 살인이다‘ 였습니다.

그 비극이 한진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2003년 합동 장례식을 치렀던 그 참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우리는 일하고 싶다”

해고된 조합원들이 공장안에 있을 때 누군가 크레인 밑에 써놓고 간 구호입니다.

우리 조합원들 일하게 해주십시오.

9개월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거리를 헤매는 우리 조합원들 가정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환노위 국회의원님들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광복절 66주년 85호크레인

222일차 새벽을 맞으며 김진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