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세상

41년 만에 아들 전태일과 함께 잠들다

양현모 2011. 9. 7. 23:22

이소선, 41년 만에 아들 전태일과 함께 잠들다
[현장] '노동자 어머니', 모란공원에서 마지막 인사... "엄마, 천국에서 만나요"
현장취재팀 (endofwinter) 기자

 

[현장취재팀]
취재 : 최지용 홍현진 기자
사진 : 권우성 유성호 기자
 
 

 

  
7일 낮 서울 대학로에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영결식을 마친 장례행렬이 영정과 부활도를 앞세우고 아들 전태일 열사의 분신장소인 청계천 평화시장 '전태일 다리'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운구가 7일 오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유가족과 조문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장되고 있다.
ⓒ 유성호
이소선

 

[5신-최종 : 7일 오후 7시 15분]
 
[모란공원 하관식] 41년 만에 아들 전태일 열사와 함께 잠들다
 
"엄마, 천국에서 만나요."
 
이소선씨의 둘째 딸, 전순덕씨가 땅속 어머니 관 위로 흙을 뿌리며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 양대노총 위원장, 각계 인사들도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고인의 장례 마지막 절차인 하관식은 500여 명의 추모객이 자리한 가운데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묘역에서 오후 4시부터 시작됐다. 9대 관광버스에 나눠 도착한 추모객들은 묘역 입구에서부터 줄지어 고인의 뒤 따랐다.
 
묘역 중턱에 자리한 고인의 묘지는 아들 전태일 열사와 가깝지만 바로 옆자리는 아니다. 열사의 묘 왼편에 있는 강희철 열사의 묘 뒤에 자리를 잡았다. 뒤편에서 아들의 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매년 11월, 열사의 기일이면 이곳을 찾았던 이소선씨는 이제 자신의 자리에 누워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투쟁의 짐은 우리가 책임지겠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안장식이 거행되고 있는 7일 오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고인의 아들 전태삼 씨가 취토하고 있다.
ⓒ 유성호
이소선
  
7일 오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안장식이 거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가족들과 조문객들이 하관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이소선

 

 

하관식은 고인의 종교인 개신교 예배로 진행됐다. 김거성 구민교회 목사의 집례로 시작한 예배에서 이해동 목사는 "이소선 권사가 살아 온 삶은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그는 우리 모두를 자녀로 삼았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살았다"라고 말했다.
 
하관예배가 끝난 후 추모객들이 묘지에 흙을 덮는 취토 순서가 이어졌다. 이때 오후 노제에서 전달된 각 노동현장의 '선물'이 땅속에 묻혔다. '함께 살자'라고 적힌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을 상징하는 수건과 안전모, 기륭전자 복직 투쟁의 조끼 등이 고인 발 아래쪽에 자리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고인이 가시는 길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며 '선물'을 정중히 사양했고 이 선물들은 김영훈, 이용득 양노총 위원장들이 되돌려 받았다. 두 사람은 "이 투쟁의 짐은 이제 어머니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되돌려 받겠다"라며 "어머니의 뜻을 따라 하나 된 노동자로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전통방식의 제사가 이어졌고,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와 공연이 계속됐다.
 
이렇게, 이소선씨는 41년 만에 아들 전태일 열사와 함께 잠드는 첫날을 맞이했다.
 
  
7일 오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안장식이 전태일 열사의 묘지에 있는 동상 뒤로 거행되고 있다. 이날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는 유가족과 조문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태일 열사 묘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안장됐다.
ⓒ 유성호
이소선

 
[4신 : 7일 오후 3시 50분]
 
['전태일 다리' 노제] 하이바, DVD, 현수막... 어머니에게 드립니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7일 오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노제에서 고인의 영정사진과 운구가 아들의 동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이소전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7일 오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노제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헌화하고 있다.
ⓒ 유성호
이소선

고 이소선씨의 상여가 41년 전 아들이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쓰러져 간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 도착했다.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평화시장까지 1시간 넘게 걸어온 운구행렬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전태일 다리 위에 세워진 아들의 동상 앞에 놓이자 유가족과 조문객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평생을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아온 이소선씨를 위해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선물'을 준비했다. 이들은 어머니의 영정에 큰 절을 올리고는 각자가 준비해온 선물을 꺼냈다.
 
기륭 노동자들이 준비한 선물은 이소선씨에게 쓴 편지. 오후 4시께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되는 하관식 때 함께 땅에 묻을 예정이란다. 기륭노조의 상징인 빨간색 조끼를 입은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제가 단식투쟁할 때 이소선 어머니께서 '단식할 때 죽는 건 태일이 하나로 족하다, 꼭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서 한동안 울먹였다.
 
김 분회장은 "기륭조합원뿐만 아니라 투쟁하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은 내가 일했던 일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요구를 위해 목숨까지 잃을 각오를 해야한다"면서 "이러한 야만의 삶, 짐승 같은 삶을 끝내기 위해 어머니 말씀처럼 단결하고 또 단결해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 당시 자신들이 입었던 티셔츠, 머리에 썼던 '하이바'(안전모), 지난 2년간의 투쟁기록을 담은 영화 DVD, 책자 등을 준비했다. 티셔츠와 안전모에는 '함께 살자'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한진중 노동자들은 이소선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가득히 적은 현수막을, 전북고속버스 노동자들은 투쟁 티셔츠를 영정 앞에 놓았다. 이들은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를 향해 몇 번이고 절을 올렸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7일 낮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앞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노제에서 고인의 영정사진이 아들의 동상앞에 놓여 있다.
ⓒ 권우성
이소선 민주사회장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노제가 엄수된 7일 낮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앞 '전태일 다리'에서 투쟁사업장인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전북고속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과 정리해고 철회 등을 다짐하며 전태일 열사의 동상과 이소선 여사 영정사진앞에 절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민주사회장

 
박원순 상임이사 조사 위해 나타나자 취재진 몰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7일 오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노제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조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박원순

이날 노제에는 최근 서울시장 출마의사 타진과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과의 단일화로 화제가 되고 있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조사를 위해 참석했다. 박 상임이사에게 몰려든 취재진들로 인해 평화시장 주위가 혼잡해지기도 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상임이사는 "추석이 지나고 나서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제 입장을 정식으로 표명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어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공성경 창조한국당 대표, 안효상 사회당 대표, 박자은 한국대학생연합 의장,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등도 조사를 통해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노제의 마지막, 2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다 함께 '아침이슬'을 불렀다. 아들 전태삼씨도 직접 나와 마이크를 들었다. 참가자들은 이소선씨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어머니" 를 몇 번이고 외쳤다. 장례위원회는 오는 오후 4시께,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을 진행한다.
 

 

[3신 : 7일 오후 2시 20분]
 

 

[대학로 영결식] 시민 2000여 명 집결, 고인 추모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7일 낮 서울 대학로 영결식장에서 유족과 장례위원, 노동자 등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민주사회장

 

"고맙습니다. 어머니를 보내는 길에 여러분이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소선이고 전태일입니다. 당신들의 눈동자 속에서 전태일이 보입니다. 전태일이 나서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고 이소선씨의 둘째 아들 전태삼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무대에 올라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그는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머니... 어머니..."라며 훌쩍였고 어느 순간 "엄마..."라고 흐느끼며 말했다. 아침 발인 때부터 통곡을 했던 그의 목소리는 이미 쉬어 있었다.
 
서울 대학로에서 진행된 이씨의 영결식의 참석한 2000여 명의 사람들도 전씨가 "엄마..."라고 외치는 순간 고개를 숙였다. 작은 선녀 '이소선'이 41년 전 먼저 떠난 아들 곁으로 정말 떠나는 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나가 되겠습니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영결식이 열린 7일 낮 서울 대학로에서 합창단과 노동자 풍물패가 민중가요 '어머니'를 부르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민주사회장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에서 이소선씨의 발인식을 마친 장례식 참가자들은 30여 분을 행진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 도착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적힌 100여 개의 만장은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나눠 들었다.
 
선선해진 가을 바람이 불었지만 아스팔트 위에는 여전히 뜨거운 햇살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4개 차선을 막고 차려진 1000여 석의 자리는 꽉 찼고, 길가에도 많은 사람이 서서 영결식을 지켜봤다.
 
배은심 상임장례위원장(유가협 회장)은 개식사에서 "어찌 창신동 우리 유가협에 등을 돌리시고 그렇게도 훌훌 떠나실수 있습니까! 야속합니다. 슬픕니다. 어머니"라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자식의 유언을 가슴에 안고 40 평생을 한 길로 걸어오신 이소선 어머니, 그 거룩한 뜻을 우리들 잊지 않고 오래오래 간직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조사에서 "어머니께서는 이 썩은 자본주의 문명이 깔아놓은 물기 없는 모래밭, 아니 푹푹 빠지는 수렁에 뛰어들어 길을 내고 있는 것"이라며 "때려잡는 것밖에 모르는 이명박, 내꺼 밖에 모르는 독점자본, 분단지배 학살 몰살의 제국주의는 종아리를 걷어 올려 어머니의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 소장은 또 "강정마을도 가고 김진숙을 살려내려는 희망버스를 꼭 타시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강정마을은 폭침을 눈앞에 두고 있고, 김진숙은 야금야금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그래서 희망버스를 손수 몰고 계신가요? 그것은 강정마을과 김진숙을 살리면서 사람의 희망, 자연의 희망까지도 죽이는 오늘의 문명을 청산하는 참된 희망버스"라고 말했다.
 
  
▲ "하나가 되어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7일 낮 서울 대학로 영결식장에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영훈 민주노총위원장이 고인의 영정앞에 고개를 숙인 뒤 조사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오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민주사회장

이어진 조사는 김영훈 민주노총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나섰다. 이씨는 생전 노동자 대회나 각종 행사 자리에서 항상 "하나가 되라"라는 말을 많이 했었고, 그 대상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그리고 그 자리에 선 양대노총을 향한 것이다. 두 위원장은 고인의 임종을 같이 지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전태일 정신으로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어머니의 따뜻함과 열정으로 세상을 바로잡겠다"라며 "이제 우리 모두는 전태일, 나를 아는 모든 나, 나를 모르는 모든 나는 하나"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어울어지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힘을 모아 차별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겠다"라며 "어머니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렇게 하나가 되겠다"라고 다짐했다.
 
2시간여 진행된 영결식을 마친 장례행렬은 오전 11시 30분경 동대문을 경유해 전태일 동상이 있는 청계 6가로 향했다. 오후 1시부터는 전태일 다리에서 이씨의 노제가 진행 중이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열리는 7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나선 운구행렬이 영정과 부활도를 앞세우고 영결식이 열리는 대학로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부산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가 어머니 이소선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대형 판화그림을 옮기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2신 : 7일 오전 11시 2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예배
 
  
발인예배를 마친 뒤 유가족과 장례위원들이 뒤를 따르는 가운데 고인의 운구행렬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이소선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씨의 발인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아들 전태삼씨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소리 없이 눈물 흘렸다. '천국에서 만나보자'라는 찬송가가 장례식장에 울려 퍼지자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하얀 면장갑을 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오열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역시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민주사회장' 마지막 날인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300여 명의 유가족·조문객들이 모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소선 '권사' 발인예배의 사회는 고인이 생전에 다니던 창신교회 이종복 목사가 맡았다. 발인식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노회찬·심상정 전 의원,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재오 특임장관 등이 참석했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으로 향한 상여
 
예배 말씀에서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전태일 재단 이사장)는 "미국에서는 자동차 귀편에 스티커를 붙이는데 그 스티커에 붙어있던 '당신의 장례식에서 목사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해라'는 구절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아무리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오열하는 유족들 앞에서 당신의 가족이 나쁜 사람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좋은 말 밖에 할 수 없어서 목사들은 괴로움을 느낀다. 그런데 저는 오늘 아침에 다른 의미로 괴로웠다. 어머니의 그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삶의 그릇은 너무나 크고 깊었다."
 
조 목사는 이어 "어머니의 죽음을 축복하고 기뻐했으면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의 육신은 다시 볼 수 없지만 어머니의 영혼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고 생각한다면 축복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죽음 후의 삶, 부활을 진정으로 깨어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셨다. 어머니, 전태일 열사는 깨어있는 삶을 사셨다. 이러한 분들의 가족이었다는 점에서 오늘 유가족들은 슬퍼하기보다는 기뻐했으면 한다."
 
발인을 마친 이소선씨의 관은 가로 세로 2m 크기의 거대한 상여에 태워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향했다. 영정사진은 전태삼씨의 아들인 동준·동명군이 함께 들었다. 길게 늘어선 운구행렬 선두에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가 이소선씨의 영정사진을 안고 있는 대형그림을 들고 섰다. 풍물패와 만장행렬이 그 뒤를 따랐다.
 
오전 10시께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1신 : 7일 오전 9시]
 
6일 밤, '이소선 어머니' 추모의 밤 행사 열려
 
  
이소선씨 영정을 가슴에 품고 있는 전태일 열사의 그림
ⓒ 최지용
이소선

이소선 어머니의 '상주'는 여럿이다. 아들과 딸과 사위들, 양대 노총 위원장과 각계 인사들이 검은 옷을 입고 상주 완장을 찼다. 그리고 또 한 사람. 41년 전 어머니보다 먼저 떠난 아들 전태일 열사가 어머니의 영정을 가슴이 품고 섰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씨의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 곳곳에는 전태일 열사가 이씨의 영정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의 판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어머니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라며 고인을 추모하는 여러 노동조합의 현수막도 어지럽게 걸렸다.

 

사실상 장례일정 마지막 날인 이날, 야외에서는 추모제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뒤늦게 고인을 찾은 행렬이 빈소에 끊이지 않았다. 돌아가신지 며칠이 지났지만 빈소 곳곳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문상객들도 있었다.

 

추모제가 진행되는 주차장을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시민들은 이씨의 생전 영상과 음성이 나올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희망은 꺼지지 않는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시 낭송과 노래 공연이 이어졌고, 각계 인사들이 무대에 올라 이 씨와 인연을 소개하며 그의 삶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힘을 주셨던 분"

 

  
6일 오후 이소선 어머니 추모의 밤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고인의 생전 영상을 보고 있다.
ⓒ 최지용
이소선
  
6일 오후 이소선 어머니 추모의 밤에서 고인을 회고하는 배은심 유가협 회장.
ⓒ 최지용
이소선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추모사에서 "지난 1987년 망월동에 아들을 묻고 찾아간 곳이 유가협이었다"며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이소선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했고 어머니가 힘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현재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어머니를 뵙지 않고 떠나보내서는 안 될 거 같아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다"라며 "어머니는 항상 큰 용기를 주셨던 분이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도 그랬고, 앞으로도 감사드릴 것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44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전화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김 지도위원은 "희망버스를 타고 가 해고 노동자들을 보고 싶다는 말씀이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다"라며 "아드님 곁에서 이제는 미소 지으면서 우리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20대 젊은 대학생들이 유독 많이 참여했다. 대학생 김여희(21, 여)는 "나는 이소선 어머니를 잘 모른다, 대학에 들어 온지도 얼마 안 됐고 전태일 열사를 알고는 있었지만 어머니의 삶을 알지는 못했다"라며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어머니는 추모받기 충분하다. 지금은 막연히 알지만 차차 공부해서 어머니의 삶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김근태 전 장관도 이날 추모제에 참석했다. 추모의 밤 행사는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앞과 제주도 강정마을, 울산과 광주 등 전국 6개 장소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한편, 이씨의 장례는 7일 오전 8시 발인식, 오전 10시 대학로 영결식, 오후 1시 청계천 노제, 오후 5시 마석 모란공원 하관식으로 진행된다.

 

이소선 어머니 부활도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이윤엽 2011.09.07 08:06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20세기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져갔던 열사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여의도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하실 때, 그 추운 겨울 천막안에서 어머니, 아버지들이 라면을 끓이고 계시더군요. 라면보다 더 많은 약을 드시면서 매일 뜯겨나가는 천막을 붙잡고 422일을 싸우셔서 만들어낸 법안에 의해 제가 마침내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을 받고 부당해고와 복직결정까지 갔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감사드린다는 제 인사에 어머니께서는 ‘니들이 꼭 열심히 싸우면 니들 후손들이 혜택을 보고 살겄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것은 다 내주고 이 땅 노동자들을 위해 평생을 사셨던 분, 어머니는 그런분이셨습니다. 노동자는 단결해야한다고 늘 강조하셨던 말씀은 어머니 삶에서 나오는 평생의 철학이었고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해 죄송하고 송구스런 말씀뿐입니다. 내려가서 뵙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병원에 계실 때만이라도 찾아뵙고자 했던 다짐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기다리시게 한 시간들이 너무 길어, 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질 못하고 그렇게 가셨나 하는 원망도 할 수 없습니다. - 85호크레인에서 보내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추도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