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 방문은 ‘평화비행기’를 타고 와 1박 2일간의 연대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두 번째 연대방문은 작심하고 왔다. 한진중공업 역시 힘든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주일 이상 연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심대로, 벌써 5일째 한진중공업 투쟁만큼이나 열심히 강정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서귀포시에서 3보 1배를 진행할 때도, 매일 아침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 백배에도, 촛불문화제에도, 1인 시위 현장에도 항상 이용대 조합원이 있다. 어려운 시기, 홀로나마 이곳에서 연대투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진짜 연대’를 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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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의 공허함,
그것을 채워주고 싶었어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누구보다 연대의 소중함을 안다. 한진중공업에서는 쌍용자동차에 이은 또 한 번의 대량 해고가 진행됐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으로 올랐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외로운 싸움이 지속됐고, 투쟁이 길어지면서 한진중공업지회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했다.
그 힘든 상황을 투쟁 국면으로 전환시킨 것은 바로 ‘희망 버스’라는 연대의 힘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연대세력들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문제를 전국적으로 알리고, 자발적인 행동에 나섰다. ‘희망버스’라는 연대를 통해 이용대 조합원이 진짜 ‘희망’을 보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 투쟁이 고립돼 있었어요. 행정대집행이 끝나고, 조합원들은 용역들한테 맞고 사람취급도 못 받았죠. 정말 이대로 투쟁이 끝나나, 이대로 죽게 되나 이런 위기감이 팽배했어요. 그 때 1차 희망의 버스가 조직이 됐고, 그들이 모여서 한진중공업 담장을 넘었어요. 그 때 느낀 감정은 ‘아, 이제야 살았구나’예요. 신선한 충격과 함께 안도감이 밀려왔죠.
그 충격과 안도감, 희망의 버스가 몰고 온 힘이 우리 투쟁을 다시 점화시켰어요. 연대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죠. 그래서 강정에 왔어요. 투쟁이 장기화 되고, 그러면서 침체되는 시기를 겪지만, 그럴수록 연대의 힘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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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 조합원은 지금까지 그가 받았던 연대의 힘을 다른 투쟁 현장에도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전해주고 싶은 힘은, 투쟁하는 이들과 좀 더 밀착되고, 빈 공간을 채워 주는 식의 끈기 있는 연대다.
“희망버스를 마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두려움을 느꼈어요. 구사대와 용역들의 침탈이 이어질 텐데, 라는 걱정과 용역의 보복성 행동이 두려웠죠. 희망버스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듯해 공허해졌어요.
그래서 강정마을 주민들과는 약속을 했어요. 지난 9월 2일, 강정마을에 도착해서 11시 미사 때 마이크를 잡았거든요. 그 때 ‘희망버스가 끝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공허함을 느꼈다. 이곳에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주민과 활동가와 부대끼겠다.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다시 오게 된 거고요.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정말 사람들과 부대끼며 열심히 투쟁하고 싶어요.”
“강정마을과 한진중공업, 자본과 정권의 폭력”
이용대 조합원의 뒤를 이어, 30일 오전 6시 15분 비행기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강정마을에 도착한다. 5명이 될지, 10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연대세력은 투쟁현장에 큰 힘이 된다. 특히 가장 힘들고 어려운 투쟁을 하고 있는 두 현장이 만나 연대를 나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제가 강정마을에 와서 투쟁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어요. 일부 해고자들은 ‘형이 여기 있을 때가 아니다. 흩어지는 조합원들을 보듬어 안고, 조합원들의 의견 충돌을 조율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맞는 지적이고, 고마운 지적이죠. 하지만 우리가 가장 외롭고 힘들 때 연대세력들의 도움이 있었잖아요. 우리 투쟁이 아직도 외롭고 힘들다고 도움만 받을 수는 없죠. 이제 그들이 외로울 때 우리가 도와야 해요. 그래야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한진중공업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투쟁 현장은 큰 이슈를 일으키며, 한국사회의 가장 큰 숙제로 남았다. 중요한 것은, 두 곳의 투쟁 모두 ‘일방적인’ 모습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에 대한 분노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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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균동 감독이 진행하는 라디오21 생방송에 출연한 이용대 조합원. |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도, 단지 주민들이나 제주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에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 역시 한진중공업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어떻게든 영향을 받게 돼요.
또한 두 곳 모두 정부나 자본이 일방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거예요. 아무리 정리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쳐도,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우울증에 걸려도, 자본은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정부는 이를 도와요. 강정마을도 해군기지가 건설로 자연이 파괴되고, 주민들의 생활이 악화된다고 해도 정부는 이를 밀어붙이잖아요.”
더 큰 투쟁, 더 큰 연대를 위해
비슷한 억압을 겪고, 비슷한 싸움을 해 나가고 있는 이용대 조합원에게 현재 강정마을 투쟁의 모습과, 보완해야할 점을 물었다. 그는 그가 겪어왔던 경험을 토대로, 작은 연대를 모으는 것부터 대정부 투쟁까지의 노하우를 풀어놓았다.
“제주도에 있는 대학생들과의 연대를 고민해야 해요. 제주 지역 대학의 총학생회와 연계해서 학생들의 활발한 선전전, 투쟁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지금 싸우고 있는 마을 주민들은 5대부분 50대에서 80대예요. 그 분들과 몇몇 활동가들한테만 투쟁을 맡길 수는 없잖아요. 대학생들의 활동력과 좋은 아이디어 등으로 같이 싸울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정치적 압박을 위해 조를 짜서 도의회나 시의회, 당사, 국회의원 사무실 등에서 매일 피켓팅과 선전전 등을 진행하며 지속적으로 싸워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제주도 지역 시민들에게도 아직 해군기지문제가 적극적으로 홍보되지 않았는데, 이들에게도 좀 더 해군기지 문제점을 알려나가야 합니다. 제주지역의 모든 시민사회가 이곳으로 집중해 조직적인 싸움을 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전 지역적인 싸움, 전국적인 싸움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여론전 역시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장기투쟁 현장의 경우, 투쟁 동력을 유지하기가 가장 힘들다. 그럴수록 대중 조직이나 단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때문에 이용대 조합원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꼭 이 말은 넣어 달라’는 그의 말은 무엇일까.
“민주노총은 전 국민을 상대하는 조직이잖아요. 노동자들은 서울에도 있고 제주도에도 있고, 강정에도 있습니다. 강정의 아이들은 노동자들의 아이들이고요. 근데 민주노총은 강정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성명서 하나 발표하기도 힘든 것 같아요.
한진중공업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진중공업 문제가 이렇게 올 때까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총파업 한 번 한 적이 있습니까? 투쟁도 안하고, 연대도 안하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채길용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금속노조에 ‘금속노조가 한 일이 뭐가 있나’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채 지회장은 잘못된 결정을 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 말 만큼은 정말 동감합니다. 이제라도 민주노총이 강정문제와 한진중공업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미디어충청, 참세상 합동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