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한줌의 권력에 ‘진보의 영혼’을 팔았나

양현모 2012. 5. 4. 20:02

한줌의 권력에 ‘진보의 영혼’을 팔았나

[기자칼럼] 보수언론 비웃음 자초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적당한 봉합은 진보정치의 뿌리까지 말라붙게 해 고사시키는 방법이다. 그런 눈속임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당 대표가 사퇴하는 것으로 일부 비례대표가 사퇴하는 정도로 이번 사안이 정리될 것으로 보는가. 그런 선택은 기본이다. 기본의 행위에서 감동이 배어나오지는 않는다.

 

"한줌의 권력을 위해서 진보의 양심과 가치를 팔아서야 되겠는가? 진보정치가 살려면 보수 기득권층보다 더 두터운 계파이기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진정한 진보정치는 특정 계파의 패권주의가 아니라 도덕성을 생명같이 생각하면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서민의 정당으로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한다! 진보정치 최대의 위기=>수습보다는 계파의 갈등양상이 두렵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했는가?"-범광-

 

골방에 앉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세상에 대한 얘기로 밤을 지새운 시절이 있었다. 곰팡이 냄새 배어 있는 작은 방은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맛이 간 김치 한 접시만 있어도 소주잔을 나누다보면 마음만은 배가 불렀던 그런 시절이다. 그들에게 힘의 원동력은 더 좋은 세상에 대한 열망과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 그리고 자신감이었다.

 

보수성향의 지역주의 정당이 장악한 한국정치에서 그들은 진보정치의 깃발을, 진보정당의 깃발을 내걸었다. “당신들 빨갱이 아니냐”라는 색안경도 없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진보는 노동은 통일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눈초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정말로 인고의 세월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심지어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계량주의’ 운운하며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진보정치가, 진보정당이 왜 필요한지, 꼭 있어야 하는지 역설했다.

 

공장으로 지역으로 학교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한 사연이 있는 곳에 적극적으로 찾아가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하고자 했고, 그들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힘을 쏟았다.
 

 

 

 
©CBS노컷뉴스
 

진보정치는 척박한 땅에 작은 씨앗을 틔우겠다는 심정으로, 그런 자세로 땀과 눈물을 모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역에서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애를 썼는지는 다 기록하기도 어렵다. 이름 없는 그들의 땀과 눈물이 지금의 ‘진보정치’를 만들어낸 밑거름이다.

 

대단한 명망가도 아니고 무슨 탁월한 실력을 지닌 이들도 아니었지만, 이 땅에 진보정치가 왜 필요한지,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절망에 갇힌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전해줄 존재가 돼 줄 수 있는지 그들은 몸과 마음의 실천으로 증명했다.

 

진보정치는 특정 개인의,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보정치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 섣불리 샴페인을 터뜨려서도 안 되고 또 다른 기득권의 권력에 취해 뒷걸음질을 할 때도 아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진정성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이 척박한 한국정치의 토양도 조금씩 진보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19대 총선에서 219만 8082명이 진보정치의 맏형인 통합진보당에 ‘미래’를 맡겼다. 돈 없고 배경 없는 이들만 서럽게 하는 이놈의 정치를 속 시원하게 바꿔주길 기대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CBS노컷뉴스
 

어마어마한 규모다. 217만 4778인 경상북도 전체 유권자보다 많은 숫자다. 220만 8014명인 인천광역시 전체 유권자 숫자와 비슷한 규모다. 대한민국에서 통합진보당에 ‘정당 투표’를 한 인원이 인천광역시와 경상북도 유권자 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진보정치를 위해 삶을 바쳤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기득권 정치의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의 씨앗으로 이어진 것 아닐까. 진보정치인들은 뿌듯해하기 전에 겸손해져야 한다. 두려워해야 한다. 자신들을 선택한 유권자가 인천광역시 전체 유권자 수준으로 많다는 현실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지지자이자 감시자이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의 맏형, 통합진보당이 느껴야 할 책임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실은 어떤가. 통합진보당의 현주소는 어떤가.

 

그날, 진보당의 민주주의는 죽었다”

누구의 주장인가. 조선일보 5월 3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보수언론이 또 진보정당 흠집 내기에 나선 것인가. 조선일보 이날 사설 제목은 <진보당, 북한식 투표 흉내 내려면 ‘진보’ 간판 내려라>로 뽑혔다. 문제는 보수언론의 비웃음을 자초한 주체가 바로 통합진보당이라는 점이다. 참담한 상황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조준호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 진상조사위원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사무총국의 당원관리(입·탈당 및 당권 인정여부) 부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관리 능력 부재로 인해 총체적 부실·부정선거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은 동일 IP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투표행위에서는 대리투표 등 부정투표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으며, 현장투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수의 투표소에서 다양한 형태의 부실·부정행위 등 선거관련 당규위반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투표마감시간 이후에 온라인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적지 않은 수의 현장투표가 집계되어 투표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수권정당’의 꿈을 이어가는 정당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당 진상조사위원장이 ‘총제적 부실·부정선거’로 규정했다는 것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 과정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면 그만’이라는 오만의 독버섯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 내부의 ‘기득권 정치’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얘기다. 선거는 형식이고 어떻게 해서든 이기면 된다는 위험천만한 인식으로 정말 국민에게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얘기를 해온 것인가.

 

참담한 상황 아닌가. 보수언론에게 조롱의 대상이 돼도 항변조차 못하는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통합진보당에 미래를 맡겼던 219만 8082명이 느낄 이 참담함을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그들에게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참담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반성은커녕 ‘변명의 돌림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있다. 진보정치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자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의 노력을 한순간에 시궁창에 던져버려 놓고 지금 그렇게 한가한 변명을 하고 있을 때인가. 세상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았나. 그런 정신 자세로 나라를 다스를 기회를 달라고 말해왔던 것인가.

 

한줌의 권력이다. 한줌의 권력이 ‘진보의 영혼’을 팔았다. 그 한줌의 권력이 누구인지는 당사자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진보정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수십 년 간 색깔론의 색안경 속에서도 묵묵히 꾸준히 진보정치의 씨앗을 뿌리고자 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노력을 짓밟아버렸다.

 

철저히 처절하게 파헤쳐야 한다. 검찰이 수사의 칼날을 번뜩이며 정당의 뿌리를 샅샅이 훑기 전에 정당 내부에서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문제의 근원부터 해결방안까지 찾아야 한다. 비례대표가 사퇴할 경우 몇 번이 승계해야 하는지는 어쩌면 지엽적인 부분이다. 그런 모습만 강조되면 또 다른 정파대결로 비칠 수 있다. 국민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승자 독식의 사회를 개선하겠다는 정당이 어떻게 ‘승리 지상주의’ 결과물을 내놓고 뻔뻔하게 아무 일도 없었냐는 듯 표정관리를 해왔는지,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과 민주주의는 헌신짝처럼 버리게 됐는지, 그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 아니겠는가.

 

적당한 봉합은 진보정치의 뿌리까지 말라붙게 해 고사시키는 방법이다. 그런 눈속임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당 대표가 사퇴하는 것으로 일부 비례대표가 사퇴하는 정도로 이번 사안이 정리될 것으로 보는가. 그런 선택은 기본이다. 기본의 행위에서 감동이 배어나오지는 않는다.

 

그런 것도 안하려고 했느냐는 질책만 이어질 뿐이다.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은 원칙과 상식에 맞게 당연하게 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이 정당에 나라를 맡겨도 되는지 믿음을 줄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진보정치는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무너지는 게 무엇이겠는가. 국민의 버림을 받는 것 아니겠는가.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정당으로 머무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 다른 직무유기다.

한국정치는 여전히 보수 일변도의 토양이다. 그런 토양에서 한국의 튼실한 미래라는 열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면 된다. 철저하고 처절하게 반성하며 다시 태어나야 한다. 특히 ‘승리 지상주의’에 오염돼 초심을 잃은 이들은 진보정치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한줌의 권력을 위해 진보의 영혼을 판 주인공으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