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복지 체제 확립과 함께 올해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 재벌의 경제력이 너무 비대하여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된 요인이 된 탓일 터이다. 이에 따라 경제민주화는 곧 재벌개혁으로 인식되고 있다. 각 당 대선 후보들도 다양한 재벌개혁-경제민주화 공약안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 제한, 출자총액제 부활 반대, 제2금융 금산분리 규제 반대 등을 내세웠다. 재벌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하고, 재벌의 독과점적인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서 일정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출자총액제 재도입 및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지주회사 규제 강화 등 재벌지배구조 전면 개혁을 공약안으로 제시했다.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차원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대폭 강화와 편법 상속행위 엄단 등도 내세웠다. 골목상권 보호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 제정,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이익공유제 도입 등을 내놓았다.
경제민주화로서 재벌개혁의 내용에는 계열회사 출자의 도움으로 소수의 소유지분으로도 그룹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총수의 제왕적 경영체제를 타파하는 당연한 과제와 함께, 기업경영의 의사결정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되어야 할 노동기본권 문제이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즈주의 복지국가가 확립되었다. 대공황에 대처하는 루즈벨트 대통령 뉴딜정책의 핵심은 자본 규제 강화와 노동 보호 강화다. 노동자 보호는 먼저 노동시장에서 지본가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대공황 이전에 강도귀족이라 불리던 재벌자본가들은 파업파괴자, 킬러까지 고용하여 노조 활동을 탄압했다. 뉴딜은 자본가 기업의 노조 탄압활동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하고 위반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조합을 보호했다. 뉴딜은 또한 사회보장체제를 확립하여 실업자 빈곤층과 노동자를 보호했다.
그러나 한국은 1980년대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에 휩쓸리고 1997년 외환위기를 IMF 구제금융으로 해결하면서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를 생략한 채 신자유주의국가로 바로 전환했다. 그래서 지금 뒤늦게나마 사회보장 체제 확립이 시대적 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선진국에서 경제민주주의는 1960년대 이후 경제의 사회화를 우회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산업민주주의, 경제민주화보다 선행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바로 노동기본권의 보장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표면적으로는 노동기본권이 확장된 듯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교사, 공무원은 노조가 허용되었지만 단체행동권과 정치참여권 등 노동권 행사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복수노조가 허용되어 어용노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지만 실제로는 타임오프와 교섭창구 단일화로 노동조합 활동이 축소되고 어용노조가 늘어가는 추세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경우도 필수업무 유지조항으로 단체행동권 행사가 제한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은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 불인정, 원청의 사용자성 불인정, 집단해고 등으로 사실상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컨택터스 사례는 노조 파업농성 진압을 경비보안업체에 돈을 주고 맡겨, 노동기본권 유린 행위도 상품화되는 기막힌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조합의 힘이 약해지니 경영에 대한 노조의 개입력은 갈수록 약화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 쪽에서 노동기본권 보장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동자 경영참가 등을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고 투쟁해야 마땅하지만 워낙 거세진 시장경쟁의 명령에 부응하느라 노동자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 비율이 과거 20%에서 현재 10%로 크게 떨어진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선에 임해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이 노동기본권 허구화 문제의 해결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 양대 노총을 비롯하여 노동자들도 대선을 계기로 노동기본권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후보들에게 요구하고 여론화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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