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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근태 서거 1주기, 그가 남긴 ‘희망’을 기억하라

양현모 2012. 12. 29. 12:06

김근태 서거 1주기, 그가 남긴 ‘희망’을 기억하라

 

최근 1980년대 독재정권의 가면을 벗긴 영화 ‘남영동 1985’가 개봉됐다. 이 영화는 포악한 독재정권의 실체를 까발렸다. 관객들은 한 인간의 존엄성을 뿌리 끝까지 짓밟는 고문 장면에 탄식을 쏟아냈다. ‘믿기지 않게 참혹한 시대였구나.’

아울러 관객들은 이 끔찍한 고문을 실제로 겪은 인물이 김근태라는 사실에 머리를 숙였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김근태는 언제나 웃으며 ‘희망’을 얘기했던 정치인이었기에 이같은 과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역사가, 정치가 ‘기억의 제자리’를 찾는 작업이라면, 이 영화는 한 인간과 국가의 진실한 역사를 알리는데 무궁한 역할을 해냈다.

이제 올해 12월 30일이면 故 김근태의 서거 1주기가 된다. 어두운 시대의 기억을 딛고 우리 곁으로 김근태가 돌아온다. 차기 5년간 국정을 이끌 대통령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가운데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는 서거 직전 마지막으로 ‘2012년을 점령하라’는 글을 남긴 바 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



일생을 ‘민주화’에 헌신했던 김근태의 일생을 조명한 책,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이 출간됐다. 이 책은 그가 자신의 생을 형극의 길이나 다름없는 ‘운동’에 바친 이유를 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이 책을 쭉 읽다보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에 서게 된다는 것, 그리고 죽을 때까지 ‘김근태’라는 이름을 마음속에 남기게 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김근태의 이력에는 두 가지 굵직한 줄기가 있다. 민주화 운동가와 정치인의 이력이다. 1994년 새민주당 부총재로 ‘야당 입당’하며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 전까지, 김근태는 철저한 민주화 운동가였고 그 변화 세력의 선봉장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김근태는 한국전쟁이 터지기 몇 해 전에 태어나 전쟁통에 자랐고, 이어 박정희의 쿠데타를 보았으며 유신 정국에 살았다. 박정희가 죽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신변을 온통 강제하던 긴급조치 9호에서 벗어나지만, 곧바로 전두환의 신군부 일당이 광주를 피로 물들여버린다.

1982년에는 부인 인재근(현 국회의원) 사이에서 둘째가 태어나는데, 바로 다음해에 김근태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고 초대 의장까지 맡는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도 이미 그랬지만, 한시도 자유롭지 못한 ‘구속의 삶’을 이어간다.

1985년, 그 ‘구속의 삶’에 더 큰 비극이 닥친다. 김근태는 남영동에 끌려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 몸은 모조리 망가져버린다. 하지만 청년기 후로 쭉 품어온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진다. 또 잠시, 1986년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에 걸려 2년 10개월간 수감된다.

출옥 후 다시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창설에 참여하며 민주화 운동의 선봉 자리로 돌아오지만, 다음해 또 2년간의 구속이 그를 기다린다.

그가 마지막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하자 세상은 1990년대 중반으로 가고 있었다. 이때 벌써 20년 넘도록 수배와 구속과 고문을 거듭 당해온 김근태였다. 그는 1994년을 기점으로 현실 정치에 입문한다. 김근태는 정치 입문에 계속 신중한 입장이었다.

10여 년 전인 1985년에 김영삼으로부터 총선 출마를 권유받았을 때 김근태는 거절했다. 1991년 김대중으로부터도 신민당 부총재직을 제의받았지만 또 거절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김근태는 스스로 말하길 ‘네루의 길’을 가기로 하고,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다.

간디가 가는 길이 있고 네루가 가는 길이 있습니다. 재야운동은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의 길이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사회운동의 길은 간디의 길이고 정치운동의 길은 네루의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서로 다르지만 지원하고 협력하는 길입니다.
- 김근태의 말 중에서


김근태 자신이 정치 입문의 변을 거창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러한 변화를 결심한 계기는 앞뒤 행적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간디의 길’에서 헌신하던 때부터 끊임없이 ‘민주대연합’을 외쳤다. 야권의 정치적 연대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온 몸으로 아는 이상 외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김근태의 정치인 생활은 정의롭지 못한 기득권에 맞서는 투쟁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품었던 높은 이상을 현실에서 못 다 펼치지 못하고 ‘뜨거운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민주화 투사 김근태’에 이어 ‘정치인 김근태’는, 한결같이 따뜻하고 정직한 ‘인간 김근태’라는 각인을 우리에게 남겼다.

이 책은 김근태가 어느 길을 걷든 어느 노선에 있든 ‘민주주의자 김근태’로서 한결 같았다는 점을 그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에게 증명한다.

이 책은 김근태 사후에 출간되는 첫 평전이다. 저자 김삼웅은 이 원고 집필을 마치고 나서 며칠간 끙끙 앓았다고 한다. 김근태의 평전은 그간 한국사의 굵직한 인물들에 대한 수많은 평전을 작업해온 저자에게도 “어려운 숙제”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