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주장

장기투쟁 사업장 해결과 과제

양현모 2010. 11. 3. 21:36

 장기투쟁 사업장 해결과 과제

G20 정상회의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정부의 압력인가?

 

구미 KEC 김준일 지회장의 분신 사태로 촉발 된 정국은 정치권의 중재노력과 금속노조의 총파업 선언으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투쟁 사업장인 기륭전자와 동희오토바이 가 5년여의 장기투쟁을 정리하고 노사간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구미 KEC 사태도 노사 간 대화국면으로 돌입하면서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진행하고 있던 조합원들이 해산하는 등 해결 조짐을 보이고 있다.

KEC 김준일 지회장의 분신 정국이 노정 간의 전면전 형태로 이어지고 정치권이 개입된 상황에서 자칫하면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 노동계를 달래기위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장기투쟁 사업장 사측에 압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구미 KEC 김준일 지회장 분신사태

 

 

KEC 사측은 지난 6월30일 새벽 공장에 용역깡패 수백 명을 투입해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에 앞서 KEC 구미지회는 지난6월21일부터 임단협 완전쟁취를 위한 전면파업에 돌입한 상태이다. 하지만 회사는 타임오프시행 등을 요구하며 교섭자체를 거부해왔다. 또한, 사측은 지난 7월부터 9월사이 조합원 8명을 해고하고 80여명에 대해서 권고사직 등의 중징계를 일방적으로 통보 하는 등 노조탄압의 만행을 저질러왔다. 이에 지회는 지난 10월21부터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1공장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10월29일 회사대표가 전면파업 1백36일만에 직접대화에 나섰고, 노사대표 간의 면담은 30일 오후 3시로 정해졌다. 하지만, 회사는 교섭을 저녁 7시로 연기하자고 통보해왔고, 노사대표는 밤늦게까지 수차례 정회를 해가면서 교섭을 진행 했지만 의견접근에 실패했다. 이에 김 지회장은 정회시간을 틈타서 화장실에 가게 되고, 화장실에서 잠복해 있던 사복경찰이 폭력연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분신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김지부장이 분신을 시도한 그시각 KEC 공장 일대에는 수천명에 달하는 경찰이 추가배치 되었으며, 사측과 교섭이 진행 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1895일 만에 기륭전자 타결

 

 

기륭전자 문제는 2005년 사측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고하면서 시작되었다. 파업과 징계, 고소고발, 농성, 직장폐쇄, 단식농성 등으로 이어진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끈질기고 처절한 투쟁이었다. 장기투쟁의 상징으로 불리면서 노사 간 평행선을 달리며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륭전자 투쟁이 극적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노조가 2005년 8월24일 100여명의 조합원으로 전면파업에 나선지 1895일만에 10여명의 조합원만 남은 채, 사측으로부터 전원고용약속을 받아냄으로서 지난 11월1일 합의서를 작성하고 마무리했다.


동희오토바이 전원복직

 

 

충남 서산시에 위치한 동희오토바이는 ‘모닝’을 기아차로부터 외주 위탁받아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다, 동희오토는 생산직 9백명 전원이 사내하청 노동자다. 2005년 사내하청지회가 설립되자 사측은 곧바로 업체폐업, 개별계약해지 등을 통해서 조합원 1백명을 해고 시켰다. 이에 지회는 5년간 해고자 복직과 금속노조 인정을 촉구하며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실사용자인 정몽구회장과의 직접교섭을 요구하며 장기투쟁을 전개해왔다. 이에 지회는 지난2일 복직대기자, 고용유지 승계, 금속노조인정, 고소고발취하 등에 합의하고 기나긴 투쟁과 농성을 풀었다.


전태일열사 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40년 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암울했던 70년대 군사정권시절 젊음을 불사르면 죽음으로 항거했다. 그 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위해서 온 몸을 던졌던가? 악랄한 정권과 자본가 앞에 젊은 꽃을 바쳤던가? 노동착취를 통해서 기업의 이윤만을 생각하는 자본가 앞에 노동자들은 쇳덩어리 기계 부속품이요, 소모품에 불과하다. 날로 높아만 가는 생산성향상의 재물로 죽고, 다치고, 병들어 쓰러져간다!  문민정부에서도, 국민의 정부에서도, 참여정부에서도 노동자들의 죽음은 열사라는 이름으로 계속되었다. 누가 노동자들을 이토록 처절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드는가? 비정규 악법으로 수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이 땅의 비정규직은 정규직노동자들로부터 차별받고, 해고의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내 자식 세대들이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투쟁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이 아니다! 이명박정권의 타임오프 도입으로부터 노동3권을 위협받고 있는 노동조합들이 편법으로 자신들의 임금을 해결하고도 문제되지 않는다. 임금을 못 받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 투쟁하지 않는다. 자본의 노림수 앞에서 각성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열사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들을 애써 감추고 있다. 노동조합이 이렇게 허약하면 우리는 전태일 열사를 포함해서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과 외침을 지킬 수가 없다!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처럼, 동희오토바이 노동자들의 투쟁처럼, KEC 노동자들의 투쟁처럼 물러서지 않은 끈질긴 투쟁으로 살아있는 우리들이 더 이상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도 안 되고, 더 이상 열사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셔야지요
[편지] 구미 KEC 분신항거 노동자 김준일 동지에게
2010년 11월 03일 (수) 이종래(한국노동운동연구소) edit@ilabor.org

김준일 지부장님. 저는 한국노동운동연구소의 이종래입니다. 몇 달 전에 구미지부 교육하러 갔을 때 서로 눈인사만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지부장님의 눈매는 여전히 눈에 밟힙니다. 제가 워낙 숫기가 부족한 인간이어서 그런지, 다정하게 말을 붙이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웬 뜬금없이 이렇게 편지를 쓰는지는 말 안 듣더라도 지부장님은 잘 아시겠지요. 속내를 잘 말하지 못하는 인간이 편지로나마 마음을 표현해야 될 것 같은 답답함 때문에, 결례를 무릅쓰고 깜깜한 밤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그냥 몇 자 적어봅니다.

 

노동운동의 과거와 현재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지 40주년째입니다. 전태일 열사는 40년 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외침을 남기면서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셨지만, 그의 의로운 행동은 우리 노동운동과 영원히 함께하는 가치지향으로 승화하였습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노동자들을 구하려던 전태일 열사의 몸부림은 우리 노동운동에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활동가라면 당연히 요구되는 덕목이자 규범으로 여겨졌고, 이런 가치지향은 한국 노동운동에서는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재의 노동운동에서 과거처럼 엄격하게 자기 수양하듯이 개인적인 욕심을 자제할 줄 아는 활동가가 과연 있기나 하냐는 사회적 비난과 조롱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대개 노동운동은 고사하고 노사관계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불쑥 튀어 나와 한 번씩 내지르는 헛소리라고 해야 맞겠지요. 왜냐구요? 40년 전의 전태일은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끝내려면 노사가 한 발씩 양보하는 게 도리 아니냐며 성인군자인 척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지만, 이들은 노동현실에 대해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 동안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얼마나 많은 양보를 했는지는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노사평화가 가장 좋은 가치라는 주문만 되뇌이는 이들은 정신적 금치산자와 다를 바가 없지요.

 

우리의 노동현실은 기업경영진이 금속노조 탈퇴를 실질적 명분으로 하면서 교섭에 나오지 않더라도 그들을 부당노동행위로 잡아가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사용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억지와 트집을 일삼더라도, 노조가 할 수 있는 행동이란 엄청난 희생을 각오한 파업밖에 없는 게 또 다른 현실입니다. 그래서 파업을 하면 이젠 노조는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문제아’라는 식의 딱지붙이기에 열중하지요. 게다가 노동자들 중에서 누군가 ‘우리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던 말든 너네가 뭔데 지랄하고 간섭하냐’고 고함이라도 치면,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 있다가 나중에 핑계를 잡아 해고통지서로 응답하는 저들의 비겁함에 우리는 이미 익숙할 뿐입니다.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한 몸부림

김준일 지부장님. 지부장님에게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냐고 묻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굳이 눈으로 보지는 못했어도, 다른 노동자들의 가슴엔 이미 깊숙하게 파고드는 현실이 슬플 뿐입니다.

내전상황을 방불케 하는 우리의 노사관계에서 저들이 요구하는 금속노조 탈퇴는 궁극적으론 무(無)노조로 이어지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젠 울타리라곤 하나 없는 허허벌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운명이 안타까웠겠지요. 하나를 양보하면 나중엔 전부를 내놓으라는 호랑이 우화가 우리 노동자에겐 한낱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실이라는 그 자체가 싫었겠지요. 어쩌면 노조 득을 볼 땐 무리 지워 몰려왔다가, 자기 배만 불리면 떠나버리는 몇몇 조합원들의 하이에나와 같은 행태가 지긋지긋하였겠지요. 노조간부 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와중에, 노조를 무시하는 현장 동료들을 바라보면 말로 하기 어려운 환멸과 모욕감도 느꼈겠지요. 노조 일 때문에 가족에겐 항상 부족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밖에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애써 보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미안함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그 짠한 마음은 말 안 해도 모두에게 전해지고도 남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건 힘없는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이 아니라, 노동자를 토끼몰이 하듯이 마구잡이로 몰아 부치는 공권력과 사용자들의 무모함이라는 사실에 기가 막힐 뿐입니다. 죽을 테면 죽어보라는 식으로 공갈을 치는 조폭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저들은 버젓이 저질러 놓고도 노동자들이 생떼를 쓴다고 또 말하겠지요.

김준일 지부장님. 당신의 행동은 노동현실에 대한 고발이자, 미래를 위한 몸부림입니다. 전쟁을 치루 듯이 해야 조금이라도 진전되는 단체교섭마저도 이젠 원천적으로 없애려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소귀에 경 읽는 소리일 겁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민주주의는 아무도 이르지 못했기에 소중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만드는 희망의 수단입니다. 노조활동마저 못하도록 만드는 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당신은 미래라는 곳을 손을 들어 가리켜 주었습니다.

김준일 지부장님, 이제는 훌훌 털고 일어나셔야지요. 노동운동의 미래를 만드는데 같이 힘을 모으고, 함께 하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같이 해온 구미의 동지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KEC 안팎에서 고생하는 동료들을 생각해서라도 당신은 반드시 하루빨리 일어나셔야 합니다.

2010년 11월 2일 한밤중에 이종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