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원롱이는 항상 슬펐다!
08년부터 09년 10월까지 중국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젊은 노동자들이 수차에 걸쳐서 현장에 배치되어 함께 일했다!
우리 반에도 쭈원롱이라는 중국 산둥성에서 온 친구가 배치되어 함께 일했다. 나이는 23세 이며 혈기 왕성한 중국청년이었다.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온 젊은 노동자들이 도장, 용접, 심출, 취부 등 현장 곳곳에 배치되어 노동하는 모습을 보고 당시에 나는 중국정부가 한국의 조선 선진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중국정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한국조선소에 연수시킨 것으로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중국에 블록공장을 신축하여 값싼 중국의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면서 한국의 조선 기술력을 전수하는 것도 부족해서 중국의 많은 젊은 노동자들을 한국의 조선소에 데려와서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에 나는 상당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나의 문제의식은 중국의 조선기술력이 우리나라 조선 기술력을 추격하는 속도에 따라서 한국의 경쟁력이 상실되고 세계 조선왕국의 위치를 중국에 빼앗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노조 정책기획실장으로 있을 때, 일본 조선소와 같이 언젠가는 한국의 조선소도 구조조정의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정부와 조선공업협회와 함께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 우리나라 조선소끼리 경쟁하고 해외에서 다투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중국, 필리핀, 인도 등 해외에 생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경쟁력과 노동력을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중장기적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소는 특성상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조선소는 많은 노동인력 확보가 필수이며 조선자본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값싼 노동력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비정규인력이 늘어나고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채용한 다국적 이주노동자들이 부족한 조선인력을 채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최저임금도 적용받지 못한 채, 연수비 명목으로 55만원 정도 받으면서 현장 노동자들과 똑같이 노동을 하면서 임금착취 노동착취를 당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선기술경쟁력확보차원에서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자본의 이윤극대화 논리와 정책에 지나친 걱정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정직한 염려가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발상이었는지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다.
나는 일 년 동안 함께 일했던 쭈원롱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원롱이는 중국 산둥성 안의촌의 농촌마을에서 농사짓는 아버지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다가 친구들과 함께 대우조선에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고향을 떠나 거제도에 오게 된다.
나는 원롱이에게 “한국에 기술 배우러 왔으니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었으며, 많은 것을 가르칠려고 했다. 그리고 “열심히 배워서 중국의 조선소에 취직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틈틈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먹고 싶은 음식도 사주기도 했으며, 거제도 구경도 시켜주기도 했다.
이런 원롱이가 석달 쯤 지나자 한달에 타는 월급이 너무 적다고 불평하기 시작했고, 힘들다면서 처음에 잘하던 일들을 게을리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원롱이에게“너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빨리 배워서 가는 것이 목적이니 너무 돈을 밝히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등을 두둘겨 주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동문 기숙사에 함께 지냈던 친구가 기숙사를 이탈해서 행방불명 된 사건이 터졌다. 이렇게 중국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와서 기숙사생활을 하던 중국노동자들이 한 두명 씩 이탈한 사건이 소문을 통해서 전해지기도 했다.
왜? 원롱이는 불만을 가지게 되고 친구들은 이탈하게 되었는가?
(아래는 한겨레신문(11월15일자)에 난 기사를 보고 인용을 했다!)
원롱이는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 함께 직업소개소를 찾아가게 된다. 소개소에서는 원롱이에게 입국비용으로 6만5천위안(1100만원)을 요구했으며, 가짜로 부동산 담보 증명서를 만드는데 별도로 3만위안(500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한국돈으로 약 1600만원을 건네고 거제도 조선소에 오게 된 원롱이는 자신이 연수생 신분인지도 모른 채, 조선소 현장에 배치되어 관리 감독자들의 지시를 받아 하루 9시간씩 노동을 했으며, 특근과 잔업을 합쳐 하루평균 10시간 이상씩 일을 했다. 하지만, 원롱이가 받은 돈은 잔업수당과 생활비, 이탈방지용 강제적금, 중국부모님 앞으로 보내지는 기본급등을 모두 합쳐 55만원이 전부였다. 원롱이는 같이 일하는 한국의 노동자들로부터 멸시박고 천대받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거리 외출이나 기숙사 밖에 나갈 때도 허락을 받고 나와야 하는 등 기숙사에 감금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 고용노동부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사실로 들어날 경우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서 중국의 젊은 노동자들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지급하면서 노동착취를 일삼은 관련 책임자들은 분명하게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신문에 난 기사를 스크랩하여 홍보만 할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서 회사관련자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원롱이가 항상 불만 가득한 모습으로 슬퍼했던 기억이 이런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끔씩 신문기사에 나왔던 말들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원롱이와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다. 어설픈 영어 단어와 한문을 섞어서 손짓발짓 의사소통을 하면서 나는 원롱이에게 “한국말을 배워가지고 오지! 임마!” 하면 원롱이는 다른 나라말보다 중국말이 좋다며 자존심을 지키려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원롱이와 여행
원롱이가 귀국하기 전 지난 여름휴가 때 나는 원롱이를 데리고 시골 고향집에 같이 가기로 했다. 한국에 와서 거제도외에는 구경하지 못한 원롱이에게 한국의 생활환경과 풍습 등을 보게 하고 싶었고, 세상 밖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
나는 원롱이를 나의 차에 태우고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려서 남원 고향집에 도착했다.
나의 어머님, 아버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다음 날 남원 광한루와 지리산 근처 계곡에 놀러갔다. 원롱이에게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서 보냈다는 생각을 했는데, 원롱이가 귀국한 뒤에 “얼마나 한국을 원망 할까?”를 생각하니 가슴 저 밑에서 분노가 솟구친다!
몹쓸 자본가들이여! 노동착취의 천민자본가 들이여! 노동자들을 더 이상 우롱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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