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한진중 김진숙씨와 ‘그들’이 산다

양현모 2011. 9. 14. 10:43

한진중 김진숙씨와 ‘그들’이 산다
금속노조 간부 등 4명 15m 고공서 79일째
“노동운동 함께 했던 김진숙씨 지키겠다”
추석 차례도 농성장서
한겨레 

 

김광수 기자기자블로그
 

 

» (왼쪽부터) 박성호 박영제 신동순 정홍형씨.
“추석 때 조상님 묘를 찾지 못해 면목이 없습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박성호(49)·박영제(53)·신동순(51)씨와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본부 조직부장 정홍형(48)씨는 추석인 지난 12일 공중에서 차례를 지냈다. 박성호씨는 1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진숙(5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50여일째 농성중인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안 선박크레인 중간에서 해고자 가족들이 선박크레인 아래쪽에 마련한 차례상을 보며 절을 올렸다”고 말했다.

박씨 등은 6월27일 법원의 집행관이 용역을 동원해 농성중이던 정리해고자들에 대한 강제해산에 나서자, “김 지도위원을 보호하겠다”며 김 지도위원이 농성중인 높이(35m)의 중간(15m)까지 올라갔다. 당시 크레인에 오른 사람은 30여명이지만, 79일째인 현재 박씨 등 4명만이 남았다.

이들이 김 지도위원을 지키는 ‘독수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지난 세 차례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1991년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주검이 경기도 안양병원에서 발견된 데 이어, 2003년 김주익 노조위원장과 곽재규 조합원이 13일 간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지켜본 이들은 김 지도위원이 1월6일 선박크레인에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김 지도위원과의 인연은 이들이 장기농성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박영제씨는 1986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김 지도위원에 뒤이어 해고된 뒤 부산의 노동단체에서 함께 활동했다. 2006년 20년 만에 복직했던 박씨는 “18명의 해고자 가운데 김 지도위원만 끝내 복직하지 못했다”며 “당시 미안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고 말했다.

박성호씨도 1991년 해고를 당한 뒤 1996~98년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김 지도위원과 함께 일했다. 2003년 12월 복직을 했으나 2월에 정리해고자 명단에 다시 포함됐다.

부산대 운동권 출신인 정씨는 1989년 노동운동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김 지도위원을 만났다고 한다. 정씨는 “당시 김 지도위원이 부산노동자연합 의장을, 나는 조직부장을 맡았다”며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지만 김 지도위원이 내려올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4명 중 유일하게 김 지도위원과 개인적 인연이 없지만 “다시는 김주익 열사와 같은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지난달 15일부터 단식까지 이어오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네분이 아래에 있어 든든하지만 비바람과 뜨거운 햇볕 아래 고생하시는 것을 위에서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무겁다”고 말했다.

한편 한진중공업 노사는 추석 전 타결을 위해 지난 6~7일 협상을 벌였으나,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정리해고자 94명을 6개월 뒤 복직시키자는 노조와 24개월 뒤에 복직시키자는 회사의 의견이 맞서 결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