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있다. 그리고 두 개의 장면.


#1. 안철수. 그야말로 단숨에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린 주인공이다. 10월 마지막 날 한겨레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그는 내년 대선 가상대결에서 48.0%의 지지를 얻어 45.9%의 박근혜를 앞설 것으로 관측됐다. 그의 등장은 박근혜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을 노리던 민주당마저 위협하기 시작했다. 한겨레의 같은 조사에 따르면, 800명의 응답자 가운데 39.3%는 ‘안철수·박원순 등 제3세력’을 선호하는 정치세력으로 꼽았다. 이는 박근혜 등 한나라당 세력(40.0%)보다는 근소하게 밀리지만, 손학규·정동영 등 민주당 세력(11.1%)보다는 세 배 이상 높은 수치다. 그렇게 안철수가 여야의 대표주자들을 제치고 단숨에 무대 위 주인공이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단 5일이었다. 9월 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6일 박원순과의 서울시장 단일화 회동까지. 그는 여전히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


#2. 허공 위에서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김진숙. 그는 주인공도 아니고, 대권주자와도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가 무너뜨린 것(처럼 보였던 것)은 이 사회의 ‘상식’이었다. 그는 회사 경영이 어려우면 노동자가 해고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 인식에 작지만 의미 있는 균열을 냈다. 사람들은 다섯 차례의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그를 만나러 갔다. 언론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김진숙과 희망버스가 ‘감정이입’의 대상이 됐다고, 또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정치권도 문제 해결에 나섰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 대한 청문회가 실시됐고, 국회 차원의 권고안도 마련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크레인 위에 있다. 11월 1일, 그는 300번째 아침을 맞았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9월 중순 한겨레 칼럼에 “이제 안철수 현상과 김진숙 현상은 만나야 한다”고 썼다. 안철수가 상징하는 ‘공정한 경쟁’과 김진숙이 가리키는 ‘노동의 힘’이 만나야 우리 사회의 진정한 진보가 시작될 거라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둘은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지난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원장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퇴장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 2장에서 한겨레 기자 이재훈은 “안철수에 대한 환호와 열광은 안철수를 향해서라기보다, 안철수 너머에 있는 성공이라는 신화에 맥락이 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중간계급이 이명박 정권에서 느낀 결핍을 안철수의 ‘정치적 올바름’로 해소하면서도, 자신의 경제적 속물성을 은폐하는 ‘정치적 대리인’으로 안철수를 소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르면 안철수는 ‘착한 이명박’에 불과할 수 있다. ‘엄친아’인 안철수가 구현하고 있는 ‘도덕적 원칙’이 타인을 향하지 않는 나르시시즘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그는 ‘안철수 현상’의 한계를 본다.

1장을 쓴 칼럼니스트 한윤형은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매를 맺었을 뿐”인 안철수에게 사람들이 ‘정치’까지 기대하는 이유는 ‘경험주의’라는 한국사회 보편의 정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유능하고 선량한 안철수가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켜 줄 것이라는 ‘경험적 기대’가 안철수 현상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 “경제 영역 바깥에서(만) 윤리를 말했던” 노무현과 달리 ‘경제윤리’(만) 말하면서도 ‘정치의 핵심’으로 접근하는 안철수가 꼭 ‘착한 이명박’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SNS가 김진숙과 안철수를 만나게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물론 이 책이 ‘안철수와 김진숙이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안철수가 ‘착한 이명박’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3장에서 미디어스 기자 김완은 “나에게 이득이 되느냐 안 되느냐, 혹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거의 유일한 잣대로 사용”하는 ‘조중동’과 한국의 보수 진영의 노골적 선거개입이 안철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그가 담담히 증언하는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을 ‘띄우고’ 각각 이인제와 노무현을 흔들었던 보수 언론의 보도 행태는 새삼 충격을 던져준다. 따라서 그가 여론조사에 지나치게 기대는 선거판과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언론이 만났을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안철수 대통령’에 이르는 아흔아홉 고개>라는 제목이 붙은 4장은 ‘키보드워리어’ 김민하의 사유실험이다. 안철수가 한나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는 경우,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는 경우, 또는 신당을 창당하는 경우 등 각각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간다. 왜 한나라당의 ‘반박(反朴)’진영이 안철수를 반가워하는지, 왜 민주당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10·26 재보선 승리가 곧 ‘민주당의 승리’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는지 평소 궁금했던 독자라면 흥미롭게 쓱쓱 읽어 내려갈 대목이다.

네 명의 저자가 이 책에서 각기 다르게 그려 보이는 것은 결국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에 투영된 우리의 얼굴이다. 더 나아가 ‘안철수 현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고, 또 말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찬찬이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네 명의 ‘젊은 논객’들과 함께 ‘밀어서 잠금해제’된 안철수를 마주하며,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현재와 미래를 그리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안철수는 이미 출발했고, “안철수는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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