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6월27일 행정대집행 으로 거리로 쫓겨나 크레인 맞은편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된 것은 쌀쌀해진 날씨와 고가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일 뿐, 좀처럼 변화된 것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긴 시간동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사태를 대하는 사측의 태도도 변화되기 마련이건만, 이 조차 전혀 변화하지 않은 모습이다.
▲ 김진숙 지도위원 고공농성 300일차를 맞은 85호 크레인 |
85호 크레인 위에서 좁은 공간이지만 바삐 움직이며, 맞은편에 찾아온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도 그대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동안 85호 크레인에서 용역들이 조합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 경찰들이 영도조선소를 고립시키는 모습, 그리고 조합원들이 노숙하고 시민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들을 먼발치에서 가슴속에 담아둬야 했다.
지난 여름 회사가 85호 크레인을 바닷가 쪽으로 이동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 그는 뜬눈으로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낸 지 11월 1일로 300일째다. 어느 조합원이 이 300일에 대해 ‘참담하다’ 표현 한 그 시간을 김진숙 지도위원이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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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 |
김진숙 지도위원은 주저 없이 ‘희망버스와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 연대의 힘 그리고 한진중 조합원과 가족들’을 꼽았다. 그는 몇 차례 인터뷰에서 누차 ‘이 크레인은 혼자만의 힘으로 온 게 아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희망버스가 바로 이 크레인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을 지켜온 힘이다’고 말했다.
“1차 희망버스가 왔을 때는 고공농성 157일이 되던 날이었죠. 그 전에 한진 상황은 언론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희망버스가 온다는 거예요. 처음에 희망버스라는 게 참 낯설었죠. 그런 형태를 봐온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게 진짜 온 거에요. 정말 놀라웠고. 고마웠죠.”
김진숙 지도위원은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시종일관 차분하면서 경쾌한 목소리로 응답해 주었다.
그는 희망버스가 있었기에 청문회와 국정감사를 통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6차 희망버스가 온다는 소식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희망버스와 시민들 그리고 쉼 없이 부산에 찾아와 연대해 주는 날라리들에게 너무나 고맙다.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연행을 해가도 굽힘없이 연대를 와주시는 모든 시민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시는 분들에게 너무나 고맙고, 이런 힘들이 청문회와 국정감사까지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지속된 희망버스로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비단 희망버스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사태해결을 염원하는 많은 마음들을 ‘힘’이라 되짚었다.
“(희망버스는)연대의 새로운 의미이며, 형식들이죠. 희망버스가 오기 전에는 대단히 두려웠었어요. 하지만 지속된 관심과 희망버스로 인해 공포의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있었던 힘이 되었죠. 이런 마음들이 하나하나 모아져 지금까지 왔다고 봐요. 지금도 서울에서 촛불산책을 하시는 분, 매일 크레인 앞에 와서 100배를 하시는 분. 말없이 왔다 가시는 분들. 이 모든 분들이 있기에 힘이 되고 이들 모두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워요.”
고공농성이 300일을 넘어서려 하지만 회사 측은 교섭에서 요지부동이며, 교섭파행을 유도 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회사의 이런 행보에 ‘정신 차리라’는 충고를 한다.
“회사의 저런 진정성 없는 태도가 악화시켜왔어요. 어떻게 회장과 사장이 말이 다를 수가 있죠. 회사는 노조에 뭐라 하기 전에 경영자간 입부터 맞춰 오시라. 정말 회사의 행보를 보면 능력이 있는지, 제정신을 갖고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무능력한 경영진의 표본을 주여 주고 있다. 정말 능력이 없으면 스스로 반성하며, 주위와 소통하길 권한다. 하지만 그래도 무능력하다면, 정말 이 경영진은 답이 없다”
그는 회사측의 진정성 없는 태도도 문제지만,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한진중 해고자들이 제기한 ‘부당해고’에 대해, 회사 측의 손을 들어 주는 잘못된 판단이 장기화를 부추겼다고 한다. 지난주 중앙노동위가 11월 3~4일 사이 ‘부당해고’ 심판 확정 일을 잡은 것과 관련해 ‘중노위가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진중 정리해고사태는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잘못되어 장기화를 부추겼어요.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노위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내용이 밝혀졌죠. 그동안 회사 측은 정리해고의 이유를 수주가 없어서 했다고 했는데, 수주내용이 밝혀지며 조남호 회장이 ‘위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상황이 이런데 중노위도 ‘부당해고’ 판단에 여지가 없다고 봐요.”
“중노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한진중공업 부당해고를 공정하게 판단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의 글이 900개가 넘게 달렸어요. 이들은 중노위가 객관적으로 봐달라는 거예요. 이미 청문회와 국감에서 밝혀졌는데, 더 이상 객관적인 게 무엇인가. 그럼에도 중노위가 만약 이를 외면하고 부산 지노위처럼 회사 측 손을 들어준다한다면 온 국민을 속이는 행위죠. 중노위는 이번 심판을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염두하고,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해요.”
▲ 고공농성 299일차에서 300일차로 넘어 가던 31일, 노숙농성으로 자리를 지키는 조합원들 |
한진중 정리해고 사태가 기로에 선 고공농성 300일이 된 11월 1일, 한진중공업 해고자 15명은 짐을 싸고, 또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이들은 중노위의 공정한 심판과 조남호 회장이 파행을 겪고 있는 교섭에 나와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며, 쌀쌀해진 날씨에 거리에서 한잠을 청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쉼 없이 상경해 싸우는 조합원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승리하자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추울 텐데 준비 단단히 해서 올라갔으면 해요. 긴 노숙 농성으로 몸들도 많이 상해 있을 텐데 건강히 굽힘없이 뜻을 펼쳤으면 해요. 지금까지 많은 희망버스로 기적 같은 상황이 있어왔죠. 많은 연대하시는 분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제 막바지에 와있는 투쟁. 일관되게 해서 반드시 함께 승리했으면 해요.”
▲ 25일 중노위 앞, 중노위로 들어가려는 한진중 해고자들을 경찰이 막고 있다 |
마치 85호 크레인이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85호 크레인 앞에 와 손을 흔들고 간 수많은 사람들과 비록 크레인 앞에 오지는 못했지만, 희망버스를 타고 온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들이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투영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30년이 넘게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된 노동자에게 ‘김진숙 지도위원 고공농성 300일이 어떻게 다가오세요’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의 첫마디는 ‘참담하지’ 였다. 그리고 그는 조남호 회장과 이재용 사장의 가슴을 찌르는 충고를 했다.
“정리해고 철회가 아니어도 좋으니, 조남호 회장과 이재용 사장이 지금 당장 저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300일 동안 세상과 소통해봐라. 오늘 우리는 얼마나 야만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회장과 이를 비호하는 정부. 저들은 시간이 흐르기만 원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잊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세상에 대한 통찰력 없는 인간들인가. 세상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저들은 벽을 쌓고 외면하고 듣지 않으려 생떼를 쓰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저 고립된 곳에서, 세상과 소통하듯이 조남호 회장과 이재용 사장도 세상과 소통하려고 노력해봐라”
가슴을 찌르는 그의 말은 지금까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제자리걸음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