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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버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의원(맨 앞)이 31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다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광주 찾은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떨리고 두근거려 눈물이 나려해”
미얀마의 8월, 광주 5월과 닮아
‘2004년 광주인권상’ 뒤늦게 수상
“몇 살이었어요?”
31일 아침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미얀마(버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68) 의원은 ‘오월의 신부’ 묘지 앞에 멈춰선 채 고인의 나이를 물었다. 1980년 5월 전남대 부근 집에서 계엄군의 총을 맞고 숨진 최미애씨는 임신 8개월째인 23살 신부였다. 이어 수치 의원은 80년 5월 ‘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으로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윤상원(1950~80)씨의 묘를 참배하면서도 그의 나이를 물었다. 회색 상의에 보라색 긴 머플러를 한 수치 의원은 치자꽃 모양의 머리핀을 꽂은 채 단정한 모습으로 경건하게 묘지를 둘러봤다.
수치 의원의 광주 방문은 1980년 5월과 미얀마의 1988년 8월 항쟁의 만남을 상징한다. 지난 28일 한국에 와 30일 밤 광주를 방문한 수치 의원은 한국에 망명한 버마 민주화운동 활동가 조모아(41)씨에게 “마음이 떨리고 몸이 두근거려 눈물이 나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평창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 초청을 받아들인 뒤, 버마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이 한국으로 망명해 꾸린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에 곧바로 연락해 “광주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수치 의원의 광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군부에 항거했던 공통의 현대사 때문으로 보인다. 버마 독립전쟁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서, 1988년 8월8일 아침 8시 발생한 이른바 ‘8888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80년 5월 광주에서처럼, 당시 미얀마 대학생, 승려, 시민 수천명이 군부에 무참하게 희생당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후에도 민중항쟁을 번번이 무력으로 진압했다. 1989년부터 가택연금을 당했던 그는 21년 만인 2010년 석방됐고 지난해 4월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하지만 미얀마는 여전히 군부 대표가 의석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수치 의원은 5·18묘지 방문 기념으로 끈질긴 생명력과 사계절 푸른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심었다. 미얀마 출신 결혼이주여성 산산위(48·전남 나주시)씨는 “대학원생 때 수도 랑군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멀리서 본 적이 있다. 그는 버마 민주화의 상징이자 희망”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수치 의원은 5·18기념재단으로부터 2004년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던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세력에 광주가 보냈던 연대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버마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가 받아 보관하고 있던 이 메달은 9년 만에 그의 손에 건네졌다. 수치 의원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와 같은 어려움을 겪은 시민들이 보여준 우정이라 더 소중하다. 광주와 버마 민주화운동의 끈이 강하게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시청 1층 로비의 방명록에 “용감한 시민들의 도시에 온 것과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적었다. 광주광역시는 수치 의원에게 명예시민증을 전달했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오는 5월16~18일 광주시가 주최하는 세계인권포럼과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평화를 설파하는 지도자로 광주에서 기조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