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85호 크레인 위에서 보냅니다!

양현모 2011. 2. 15. 21:15

[시론] 85호 크레인 위에서 보냅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한겨레 

      범광의 생각>김진숙 지도위원의 건투를 바란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시절부터 노동조합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등  해고자의 힘든 세월을 감당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은 항상 자본의 모진 탄압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자의 몸으로 어렵고 힘들다는 조선소 용접공으로 노동하면서 뜨거운 여름 날  땀으로 범벅이 된 노동자들의 작업복에 피어 난 소금꽃을 보면서  조선소 노동자들을 "소금꽃 노동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녀는 지금 김주익 열사가 100일이 넘는 고통과 번민의 세월을 보내며 마지막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자리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다!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 없이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글을 남기고 추운 겨울 새벽공기를 뚫고 홀연히 크레인에 올랐다! 그리고 190명의 조합원에게 해고를 통보한 잔인한 한진 자본에 맞서서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문철상 지부장과 한진중공업 지회 채길용지회장이 또 다른 크레인에 올랐다. 해고자의 설움을 잘 알기에 노동자들의 해고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김진숙 지도위원은 50살이 넘은 여자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진 악덕자본에 맞서서 40일이 넘도록 고공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소금꽃 노동자 김진숙 지도위원의 무사귀환을 소망하며 그의 아름다운 모습이 투쟁의 승리로 이어지길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 김진숙
14일은 한진중공업이 최종 정리해고 대상 노동자의 명단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날입니다. 한진중공업은 2003년에도 65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노사가 2년을 싸워 구조조정 철회에 합의했지만, 그 합의를 회사 쪽이 일방적으로 번복했습니다. 그날 김주익 전국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은 홀로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129일을 버티다 끝내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습니다. 129일을 처절히 고립돼 있었던 그를 저승길마저 혼자 보낼 수 없었던 죽음의 도반이었을까요. 곽재규 조합원마저 목숨을 던지고 나서야 2년 넘는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이후 7년 동안 불안한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한진 자본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지난해 다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빼 들었습니다. 한진 자본은 정리해고 발표와 노조의 파업, 노사 합의, 회사의 일방적 합의 번복 등 2003년과 똑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3000명 넘게 잘려나갔습니다. 저는 이 공장에서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잘려야 이 싸움이 끝날 것인가를 스스로 되물으며 수많은 밤을 지새웠습니다. 나의 20년 지기 친구 주익씨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수백번도 더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달 6일 김주익 지회장이 8년 전에 올랐던 85호 크레인에 올라왔습니다. 문철상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과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은 14일 또다른 크레인에 올랐습니다.

제가 이 크레인에 오른 지 40일째 되는 날인 14일은 밸런타인데이였습니다. 세상과 아득히 단절된 이곳 85호 크레인에도 초콜릿 두 봉지가 밧줄에 매달려 올라왔습니다. 하나는 희망퇴직 신청을 하지 않아 정리해고가 확정될 예정인 조합원의 여중생 딸내미가 손수 만들어 온 초콜릿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청 노동자의 6학년짜리 딸내미가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평소 가슴 설레던 남자친구에게 작은 손 조몰락거려 만든 초콜릿을 떨리는 가슴으로 건네는 날. 이날이 26년 동안 일해온 아빠가 공장에서 해고되는 날이라는 것을 그 여중생 아이는 알았을까요? 하청 노동자의 6학년 딸내미도 정규직 노동자가 잘리면 비정규직인 자기 아빠가 일감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보따리 인생 물량조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하청 노동자의 6학년짜리 딸내미가 보내온 초콜릿에는 ‘고기를 사드릴 테니 빨리 내려오시라’는 편지가 함께 부쳐져 있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본 적도 없는 아이가 써보낸 편지에도 이다지 목이 메는데 ‘아빠 내가 일자리 구해줄게. 그 일 그만하면 안 돼요?’라는 아홉살짜리 딸내미의 편지를 받았던 김주익 지회장은 얼마나 울었을까요. 내려가면 휠리스 운동화를 사주마 약속했던 세 아이와의 약속을 끝내 지킬 수 없었던 그의 마지막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세상은 그에게 두 가지 약속 중 하나를 버릴 것을 강요했습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가 택한 건 조합원과의 약속이었습니다. 한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한 가지 약속을 버려야 하는 것. 이것이 자본가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이었습니다.

지난달 6일 새벽 3시15분. 85호 크레인 위로 오르던 저는 직각으로 이어지는 계단 하나를 탁 잡았습니다.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심장을 쓱 베며 지나갔습니다. 세상을 향해 처절히 절규했으나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이 단절의 공간에서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노동자의 대표였던 김주익 지회장이 그 무거운 짐을 비로소 내려놓았던 그 자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8년 만에 예감으로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지금 주익씨가 앉았던 자리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보고 간 세상의 풍경을 봅니다. 무심히 지나다니는 행인들과 분주히 오가는 차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스물여섯살에 해고된 뒤 동료 곁에 돌아오겠다는 꿈 하나를 붙잡고 27년을 견뎌온 여성 노동자가 그 동료를 지키겠다며 다시 이 크레인에 매달려 세상을 향해 간절히 흔드는 손을 저들 중 몇 명이나 보고 있을까요. 2월1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 크레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