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보이지 않는 약탈자, 고환율

양현모 2011. 2. 15. 21:53

보이지 않는 약탈자, 고환율
한겨레 

    범광의생각>생쥐 주머니를 털어서 

                     호랑이 배를 채워주는 고환율정책

이명박 정부의 저금리, 고환율 정책은 한마디로 서민들을 희생시켜 대기업과 부자들의 부를 축적시켜주는 정책이다. 날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지만, 한국은행 금융통화 위원회는 이번 달 금리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물가를 잡는 대신 환율을 선택한 것이다. 정부의 이런 고환율 정책은 수출을 통해서 달러를 벌어드리고 있는 대기업들의 이윤을 극대화 시켜주는 효과는 있지만, 달러가치가 오르면서 수입품가격인상으로 그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국민들에게 떠넘겨진다. 그리고 내수시장에 의존한 중소기업들의 고통으로 연결된다. 소비를 진작 시켜서 내수시장을 활성화 시켜 고용을 창출한 다는 기본적인 경제 운용정책이 정부의 고환율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은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인상의 요구는  거세질수 밖에 없음을 정부는 각성해야 한다!

 

정남기 기자기자블로그
 

 

» 정남기 논설위원
인플레이션이 단순한 물가상승에 그치지 않고 부의 이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입증한 사람은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그는 저서 <화폐개혁론>에서 노동자와 저축자들을 희생시켜 실물자산을 가진 기업에 막대한 이득을 안겨주는 인플레이션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실제로 인플레는 민간에서 정부로, 채권자에게서 채무자로, 노동자에게서 기업으로 부를 이전시킨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초인플레였다. 초인플레로 독일 중산층은 완전히 붕괴했고, 이는 나치 등장의 밑거름이 됐다.

 

인플레이션만이 아니다. 환율도 부의 이전 효과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출 촉진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다. 국가경제 전체적으로는 고환율의 득실을 따지기 어렵다. 그러나 경제주체별로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적정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인위적으로 이를 1100원으로 끌어올리면 수출 대기업들은 앉아서 10%의 추가 이익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 달러 가치가 오르니 수입품 값이 오르고 그 부담은 일반 국민과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에 떠넘겨진다.

 

수입 원자재를 쓰기 때문에 수출을 해도 남는 게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수출입 명세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총수입액 4252억달러 가운데 60%인 2550억달러가 내수용이다. 수출용은 40%인 1702억달러에 그친다. 이는 총수출액 4664억달러의 36.5%에 불과하다. 환율 상승으로 원자재 수입 비용이 늘어도 수출을 통해 세배의 이익을 본다는 얘기다.

 

당장 곡물에서부터 휘발유에 이르기까지 내수시장의 태반이 수입품으로 채워져 있다. 생활필수품 시장도 중국 제품이 장악한 지 오래다. 따라서 높은 환율은 소비자물가에 바로 반영돼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고환율은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보이지 않는 약탈자다. 물론 그 돈은 복잡한 경로를 거쳐 수출 대기업의 금고에 쌓이게 된다.

 

국내 경제가 크게 호전되고 있음에도 정작 국민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고환율 정책의 영향이 적지 않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282억달러, 1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959억달러에 이른다. 1월 수출액은 44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무려 46%나 증가했다. 그런데도 원-달러 환율은 2008년 초 936.9원에서 20% 이상 오른 1120원대에 머물러 있다.

 

원화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저평가돼 있는지는 나라별로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2008년 초를 기준으로 한 지난 11일의 달러 대비 환율은 일본 엔이 24.06%, 스위스 프랑이 13.37%, 중국 위안이 9.69%, 인도네시아 루피아가 4.82% 하락했다. 그만큼 자국 통화 가치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얄과 스웨덴 크로나는 가치 변화가 거의 없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와 파운드만 통화 가치가 각각 7.68%, 18.8%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말대로 국내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면 원화 가치도 그에 걸맞게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유독 원화 환율만 거꾸로 가고 있다. 누가 봐도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그러나 정부의 경제운용 방식은 1970년대식 저금리·고환율 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국민의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이다. 이 때문에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60.3%에서 2009년 53%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런 방식으론 내수가 성장할 수 없고, 서비스업도 발전할 수 없다. 고용 창출도 불가능하다. 나아가 복지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무의미하다. 정부가 공공연하게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대기업 배를 채워주고 있는 현실에서 아무리 친서민과 복지를 외쳐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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