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어머님 부디 영면하소서!
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의 억압과 탄압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인간다움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외치며 산화해가신 전태일 열사! 그 열사의 죽음을 가슴에 안고 험난한 긴 세월을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아오신 이소선 여사께서 81년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연약한 노구의 몸으로 마지막 까지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을 어머니의 포근한 품처럼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셨던 여사께서는 폭악한 정권과 자본의 탄압 앞에서 호통을 치시던 당당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내가 이소선 어머님을 처음 대면 한 것은 1987년 전두환 정권의 6,29 항복 선언으로 거제에서 구로까지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 될 때, 거제 대우조선에서도 노동조합 설립투쟁이 전개되었으며, 당시 김우중 회장의 면담을 요구하며 옥포(현재,에드미럴호텔 앞) 고개에서 백골단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던 옥포조선 노동자들에게 정권의 하수인 경찰특공대 백골단들은 무차별 적으로 최루탄을 발사하였다. 이 때 백골단이 쏜 직격 최루탄을 가슴에 맞고 현장에서 숨 진 이석규 열사의 장례투쟁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소선 어머니는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나는 당시에 고향후배인 이석규열사의 유족담당을 하고 있어서 이소선 어머님을 가까운 곳에서 뵐 수 있었다.
당시 이소선 어머님은 이석규열사의 부모님을 비록한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이석규열사의 장지를 광주 망월동으로 하고 민주노동열사장으로 치룰 것을 협의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담당하셨다. 마지막에 나타난 이석규 열사의 삼촌인 육군소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소선 어머님의 끈질 긴 설득으로 유족들은 광주 망월동으로 가기로 합의하고 장례절차를 당시 집행부와 함께 진행시켰다.
그리고 마침 내 장례 행렬은 광주 망월동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장례행렬을 막아선 경찰특공대 백골단은 고성 삼거리에서 영구차에 타고 있던 지도부와 나를 포함한 유족담당, 장례 1,2호차에 타고 있던 수많은 활동가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연행하면서 이석규열사의 시신을 탈취하여 남원 선산에 안치하였다.
광주 망월동과 남원 선산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소선 어머님의 말씀대로 광주 망월동으로 갔더라면 이석규 열사에 대한 정부차원의 보상과 명예회복을 이뤄낼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원 선산의 조그만 골짜기에 당시 김우중회장이 세운 비석만이 이석규 열사의 넋을 쓸쓸히 위로하고 있다.
이후에 나는 전국노동자대회나 노동자들의 시위현장에서 이소선 어머님이 정권과 자본을 향해서 절규하고 포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서서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면서 정권과 자본을 향해서 호통을 치셨던 어머니!
이제는 그 모습을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평생 노동자들에게 말씀 하셨던 “단결! 투쟁!”의 의미를 가슴에 새깁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없는 세상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어머님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휘몰아치는 폭풍우 앞에서도 민들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텨내렵니다!
이소선 어머님!
부디 노동자들의 고통이 목격되지 않은 편안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편히 쉬십시요!
그리고 평생을 가슴에 묻고 그리워하던 아들 전태일 열사와 만나서 그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나님이 축복하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2011년 9월2일
대우조선 노동자 양현모
[추모 영상] 이소선, 짧은 여행의 기록
민주화 투사, 노동운동가 이소선을 추모하며
2011년 09월 03일
대변인논평]
故 이소선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시여, 민중의 가슴에 살아오소서 !
전태일 노동자의 어머니요, 이 땅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이신 이소선 어머니가 오늘 오전 8시 50분경 향년 81세의 일기로 타계하셨다.
하루하루 생존의 벼랑 끝에서 이명박 정권과 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의 길은 아직도 먼데, 바위처럼 의지해 왔던 이소선 어머니마저 우리 노동자들 곁을 떠나시다니, 비통하고 허전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
故 이소선 어머니는 노동자의 영원한 벗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 이후 40년 동안 살아있는 '전태일'이 되어, 인간답게 살고자 피 흘리며 싸우는 우리 노동자들을 일생동안 위로해주셨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음으로 전태일 열사도 고통 받는 노동자들에게, 싸우는 우리 곁에 언제나 뜨겁게 살아왔다.
반 노동 정권과 거대 자본가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할 때 언제나 대오의 맨 앞에 계시던 어머니를 이제는 뵐 수가 없다니, 이보다 더 큰 상실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억울하고 분해 눈물 흘리는 노동자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는 한, 마지막 단 한사람의 노동자까지 오롯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노동자 세상을 건설할 때까지, 우리는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가 없다.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는 전태일 열사의 자리 곁에 故 이소선 어머니도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바람이자 故 이소선 어머니의 염원인 노동자 민중의 세상을 한시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진보대통합을 완성하고 2012년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매진할 것이다.
노동자의 벗, 민중의 버팀목이셨던 故 이소선 어머니시여, 부디 영면하소서.
2011년 9월 3일
민주노동당 대변인 우위영
'나의주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소 노동자들의 죽음의 종결은 언제인가? (0) | 2011.09.27 |
---|---|
마음이 풍성한 추석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0) | 2011.09.09 |
"고졸 뽑아 전문인력으로" (0) | 2011.08.30 |
희망버스외면하고 매각투쟁 주장말라! (0) | 2011.08.25 |
대우조선매각 -국민주 공모방식에 대한 준비는 되어있는가? (0) | 2011.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