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자!

혁명가적 삶, 민주적 실천가

양현모 2013. 2. 1. 21:55

 

[후광 김대중평전 연재를 마치며] 혁명가적 삶, 민주적 실천가

후광 김대중 평전/후광 김대중평전 연재를 마치며 2010/04/08 08:00 김삼웅

 

▲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지난 해 7월 2일부터 연재한 <후광 김대중 평전>을 280회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연재해주신 우리 시대의 정론지 <오마이뉴스>와 끝까지 읽어주시고 격려ㆍ추천ㆍ댓글까지 올려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극소수이지만 직업적으로 ‘알바’노릇을 하며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분들에게는 “인생을 바르게 살라” 는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저는 8개월 반 동안 200자 원고지 4,200여 매에 달하는 이 평전을 연재하면서 다시 한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큰 인물됨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둔한 붓과 부족한 자료로는 완벽에 가까운 ‘김대중’을 그리기에는 너무 모자라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 통일을 위한 힘찬 걸음.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지난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실제로 김대중은 큰 인물입니다. 거목입니다. 가까이 있는 작은 산이 멀리 있는 큰 산을 가린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현대사의 복합적인 구조와 요인들, 각종 ‘가건물’에 가려지고 ‘붓장난’에 크게 왜곡된 부문이 많지만 그는 정말 큰 인물입니다.

오래지 않아 반드시 진면목이 평가될 것을 믿습니다. 역사는 가장 귀중한 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역사는 진위와 곡직을 가려주고 정화의 작용을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은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정립하고 역사에서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초 김 전 대통령의 평전을 준비하면서 한 차례 면담을 갖고, 궁금하거나 확인해야 할 부문에 대해 몇 차례 더 만나뵙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갑자기, 홀연히 떠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솔직히 입원하시고 중환자실로 옮겼을 때도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 줄로 믿었습니다.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시 일어나서 퇴행하는 민주주의ㆍ서민경제ㆍ남북관계를 풀어주실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적지 않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고 미움도 샀습니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의롭고 양심적으로 살고자 하는 이 땅의 민초들이고,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의 존재로 분단체제의 기득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거나, 굴절된 프리즘으로 바라 본 부류들이었습니다.

후자들은 지금 그가 무덤에 누웠는데도, 그의 정신과 유지가 이어질까 불안하여 틈만 나면 온갖 날조된 언어로 덧칠을 하고, 무리들 중에는 묘역에 방화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여러 달이 지났음에도 국립경찰은 방화범을 안 잡는지 못 잡는지 소식이 없습니다.

또 집권당 국회의원이 100억원 무기명양도성 예금증서(CD)의 비자금을 감추고 있다고 공개하여 고인께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여 검찰이 사채시장의 자금으로 결론, 김대중과 무관함을 밝히고도 서울중앙지검에 해당수사를 이첩한 이후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하루속히 진실을 밝혀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할 것입니다.

 

 

2009년 5월 29일 오전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현대사에서 보기드문 인물입니다.
공간적으로는 남북한ㆍ일본ㆍ미국과 유럽이 활동과 연구 영역이었고, 시간적으로는 1950년대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지금 이명박 정권에 이르는 50여 년에 걸칩니다. 그 사이 파란격동의 한국정치사에서 그는 정치의 중심에 있었고, 적어도 1970년대 이후에는 독재 세력으로부터 가장 증오ㆍ멸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군사독재와 백색독재시대 ‘멸균실’수준의 반공논리와 광기ㆍ맹신이 소용돌이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남북화해협력의 기치를 내걸고 ‘사람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싸웠습니다. 그의 정치활동은 ‘면도날 위에 선’처지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지켰습니다. 그 대가는 납치ㆍ투옥ㆍ사형선고ㆍ망명ㆍ연금ㆍ붉은색칠, 부패혐의를 씌웠지만, 그때마다 악의 사슬을 뚫고 용케 살아나서 민주화, IMF 환난극복, 6.15선언, 노벨평화상 수상 등 큰 일을 해냈습니다.

한국의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상당기간 김 전 대통령만큼 국제무대를 상대로 인권ㆍ평화ㆍ통일운동을 펼 인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존재의 가치가 ‘국격(國格)’이 아닐런지요.

김대중은 특이했다. 일본과의 수교를 주장했지 친일파는 되지 않았다.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했지 ‘빨갱이’가 되지는 않았으며, 유신세력과 대화하며 관용하고자 했지 독재의 편이 되지 않았다. <조선일보>와 타협하려 했지만 그들의 기이한 언설에 미혹당하지는 않았다. (…)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서생들은 상인적 현실감각이 없어서, 상인들은 서생적 문제의식이 없어서 비틀거리며, 외발로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그는 정치인으로서 존경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김욱, '역사의 승리자 김대중', <인물과사상>, 2009년 10월호)

철학자 L.비트겐슈타인은 “자기 자신을 혁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혁명적이 아니겠느냐”(<반철학적 단상>)고 물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자기 자신을 혁명하면서 혁명가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혁명적인 가치를 민주주의 방법으로 이루고자 했던, 대단히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실용주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 덧칠된 과격성이나 왜곡되어 알려진 품성과는 한참 멀다고 하겠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 하나의 수식어만 가능하다면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일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제가 평전을 마치면서 정리한다면 “혁명가적인 삶을 산 민주적 실천가”라 부르겠습니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한반도의 정세가 심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이 추구해온 가치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그의 유지를 잇고 지키는 일이 ‘나라사랑’의 정신일 것입니다.

‘면도날 위에 섰던 사람’김대중은 서거하고, 이제 그는 역사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생전에 모지락스럽게 대했던 세력이나 수구언론도 이제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대접을 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그가 추구해온 가치를 잇겠다는 세력은 빈말이 아니라면 좀더 분발했으면 합니다.

솔직히 말해 <김대중 평전>을 쓰면서 나의 글이 크게 모자람을 느꼈습니다.
자칫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지 않았는가 두렵기도 합니다. 특히 ‘국민의 정부’ 5년에 대한 업적과 평가에 있어서는 많이 부족했음을 인정합니다.

<김대중 평전>은 앞으로 여러 사람이 거듭 새로운 시각과 자료를 통해 써도 될 만큼 그의 광맥은 넓고 깊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제작했을 때 누군가 묻자, “커다란 대리석에서 잡석을 제거하니 다비드가 나오더군요”- 김대중에게 덧씌워진 용공ㆍ선동ㆍ과격ㆍ치부 등 온갖 ‘잡석’을 제거하는 데 일조가 되었다면 지은이로써 보람이겠습니다.

<후광 김대중 평전>은 6.15선언 10주년에 즈음하여 ‘시대의 창’에서 두 권으로 묶여 나올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연재해주신 <오마이뉴스>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