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이 더 이상 욕되어선 안 되리라”
노무현 평전/<노무현 평전> 연재를 마치며 2012/01/30 08:00 김삼웅
우리의 현대사에서 광주와 노무현은 시대를 가르는 아이콘이다.
누구도 광주의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듯이 누구도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 이전과 이후를 확연히 나누는 역사의 분기점이 아닐 수 없다.
500만 애도의 물결이 보여준 것은 한 마디로 ‘회한’이고 ‘각성’이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회한이었고 권력이 얼마나 비정한 것인가를 깨닫고, 좋은 정치란 과연 어떤 것인가를 깨닫는 통절한 ‘각성’이었다. 이곳(노무현 묘소 ㅡ 필자)을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환하는 것이 바로 그 회한과 각성이었다 - 신영복.
‘역사가 된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평전을 쓴 올리비에 뒤물랭은 말한다.
“블로크의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양심의 가책”, “그를 기억하는 것이 곧 덕행이 되었다. 그 분 덕에 양심을 회복했다.” ㅡ ‘블로크’를 ‘노무현’으로 바꾸어도 손색이 없겠다.
“한 가장의 죽음이 흩어져 있던 자식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정체성을 다시 발견하기도 한다. 또 한 국가 지도자의 죽음도 이와 같은 현상을 종종 일으킨다.” - (제임스 에머슨)
우리 시대가 5월 광주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듯이, 모든 새로운 시대는 죽음 위에서 잉태된다.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죽었으니 머지않아 운명의 여신은 그 핏값을 받기 위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이 그에게 적용했던 그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 그 심판을 피하려면 우리 자신이 정화되어야 할 것이니, 역사는 그렇게 쇄신되는 것이다. - 김상봉, <한 시대의 종말을 애도함>.
히틀러에게 쫓겨 유럽 각국을 유랑하면서 반 나치운동을 전개한 저항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고통을 못이겨 자살하면서 다음과 같은 헌사를 남겼다.
나의 모든 친구들이
길고 긴 밤 뒤에 찾아오는
붉은 해를 볼 수 있기를,
그러나 무엇보다
참을성 없는 나는
당신들보다 먼저 간다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인 에릭 홉스본은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서 ‘유의미’한 말을 남겼다. (필자는 3년 전 홉스본의 이 책을 읽다가 노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의 불의에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노무현의 유고 <운명이다>를 정리한 유시민은 절규한다.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이를 지니고 살았던 그는, 반칙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대한민국을 그런 믿음 위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 믿음이 국민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한, 노무현이 대통령일지라도 그 시대는 ‘노무현 시대’일 수 없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마저 이루기 위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시민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그 꿈을 모욕하고 짓밟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는 생명을 버렸다. 그가 생명을 던진 그 자리에,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의 꿈만 혼자 남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그렇게 살아 있는 한, 그를 영영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다. - 유시민, <운명이다 - 에필로그>.
정신분석학적으로 노무현을 연구하는데 탁월한 업적을 남긴 김태영의 분석이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그가 떠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먹는 걱정, 입는 걱정, 집 걱정, 병 걱정, 자식교육 걱정, 노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꿈을 너무 빨리 접었다는 것을. 착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대접 받는 정의로운 세상,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을 너무 일찍 포기했다는 것을.
이제 그가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꿈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습니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가 남긴 많은 말들,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 김태형.
1927년 6월 2일 중국의 저명한 학자 왕국유(王國維)가 악인들에게 몰려 곤명호에 몸을 던지면서 남긴 유서에 “세상의 변고를 겪으면서 의로움이 더 이상 욕되어서는 안되리라”고 식자들에게 충고하고 50년 생애를 접었다. “의로움이 더 이상 욕되지 않는 세상”, 가슴을 무겁게 치는 말이다. 죽는 날까지 최후의 순간까지 의연함과 품위를 잃지 않았던 노무현은 “의로움이 더 이상 욕되지 않는 세상”을 지키고자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봉하마을에 자신의 피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적 역량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악인들이 퇴장하는 날, 부엉이바위에 미국 러쉬모어 마운틴 큰바위 얼굴처럼 노무현의 얼굴을 세우면 어떨까. 혼자서 외로우면 평소 존경했던 김구와 김대중의 얼굴도 함께 세우면 어떨까. 빈 자리 몇 곳은 미래의 민주와 평화. 진보의 지도자를 위해 남겨두고….
아직 젊은 나이에 지리산에서 생을 작별한 고정희 시인의 <지울 수 없는 얼굴>에 필자의 마음을 담아 노무현 대통령의 영전에 바치면서, “깨어 있는 시민들이 연대하라”는 고인의 또 다른 ‘유언’을 첨가하고자 한다. 아울러 고인이 평생 떨치지 못하는 ‘응어리’였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면 비상한다는 변증법의 철학자 헤겔의 격언을 빌어 “부엉이바위 노무현의 선혈은 생자들의 몫” 임을 밝히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바보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정치학자 노무현, 사상가 노무현, 인간 노무현” (오연호)을 그리는 데 모자람이 많았고, 자료도 다 찾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후일을 기약하면서 면책을 받고자 한다.)
<지울 수 없는 얼굴>
냉정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불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읽고 격려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노무현정신’을 기리면서 밝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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