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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를 마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에서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해결 등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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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부모가 공무원인 딸의 친구는 자매가 모두 사립대학을 졸업했다. 입학할 땐 명문대라 주변의 축하를 받았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대학에 그치지 않고 한 명은 대학원에 진학했고 다른 한 명은 준비중이다. 하지만 부모는 졸업 후 대출받은 등록금을 갚느라 생활에 여유가 없다. 20평대의 주공아파트에 살면서 집 넓히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단다.
#사례2. 친구 역시 아이가 둘인데 딸은 지난해에 졸업을 했고 아들은 대학에 다니다가 지금 휴학하고 군대갈 날을 받아놓고 있다. 딸은 아직 취업이 되지 않아 친구의 월급에서 매달 70여 만 원에 가까운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부담이 크다고 했다. 친구는 그래도 아들이 군대에 가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지 않겠냐고 말한다.
반값 등록금 시위가 요즘 낮 최고기온 만큼이나 뜨겁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1년 등록금이 1000만 원인 시대, 일반 서민의 수입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그동안 등록금과 관련해 얘기도 많이 나오고 토론도 있었지만 이슈화되지 못하고 사그라지곤 했다.
하지만 근래의 움직임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광화문 반값 등록금 시위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아직 그리 많진 않지만 시민들도 이에 동참하고 생각을 같이 하는 연예인들의 지원까지 가세하면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날라리 선배부대'와 인터넷 카페 등지에서 통닭 500마리, 햄버거 100개, 생수 등을 지원했고 김제동씨, 오연호 대표, 정재승 교수 등은 마음의 양식도 살찌우라며 학생들에게 책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학생들을 응원하는 '주먹밥 부대'도 출현했다. 3년 전 촛불을 들었던 고등학생들까지 참여해 시위는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이것이 불씨가 되어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거리로 나서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번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에 매우 공감하고 있다.
아르바이트하며 점심값 아끼겠다고 '도시락' 싸가는 대학생 딸
우리 집 큰 아이는 지방에 있는 국립대에 다니고 있다. 국립대 사회계열인지라 등록금은 서울에 있는 사립대의 절반 정도다. 그러나 지방에 내려가 있으려면 내는 방세와 한 달에 40여만 원 정도인 생활비, 매주 집에 왔다갈 때 들어가는 교통비 등을 합하면 서울에 있는 사립대와 비슷한 수준의 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지방에선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어렵다. 딸은 어렵사리 과외 2개를 구했다. 처음엔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뻐했지만 세상에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있으랴. 자기 공부하면서 수업 끝나고 주중에 4일 과외를 하지만 수업을 받는 학생 집안 형편이 어렵다며 보수를 낮춰 줘 거의 자원봉사 수준이다.
올해는 교류학생으로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서 9학점을 듣고 6학점은 원래의 학교에서 듣느라 서울에 있는 집에 머물며 일주일에 2번 지방으로 내려간다. 교재 준비한다고 새벽까지 공부하고 일주일에 2번은 새벽에 부스스한 얼굴로 지방에 있는 학교에 간다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측은하다. 나름대로 부모에게, 동생에게 당당하고 자립심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며 씩씩하게 지내던 큰 딸. 하지만 얼마전 스트레스성으로 다리 전체에 좁쌀만한 두드러기가 일어 가렵다고 하더니 곧 뭉쳐서 커지고 흉해져 외출하기가 힘들 정도가 됐다. 딸아이가 부모한테 기대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치고 악착같이 생활했기에 저렇게까지 됐을까 싶었다. 강하게 크길 바랐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제 몸을 저렇게 혹사시켜가면서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나 싶어 그만 두라고 했다.
딸아이는 책읽고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사람에 관심이 많고 심리학을 좋아해서 고등학교때부터 진로를 정하고 자기가 스스로 선택해서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고, 부모의 부담을 덜어 주겠다고, 자기 용돈은 스스로 벌어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어렵게 구한 것이다. 요즘엔 물가도 살인적인지라 점심값도 아끼겠다며 도시락을 싸간다. 이렇듯 딸이 바쁘다 보니 네식구 모여 밥이라도 한 끼 먹으려면 한참 전에 시간조정을 해야 한다. 한참 예쁠 20대 중반에 얼굴이 노래진 딸을 볼 때마다 속이 쓰리다.
둘째는 아직 입학도 안 했지만 벌써부터 걱정이다. '반값등록금'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대로 등록금이 마냥 오르기만 한다면 두 아이의 등록금 대출 때문에 퇴직 후에 타는 연금으로 노후 생활은커녕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거덜날 지경이기 때문이다. 바로 취업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부모로서 아이에게 미룰 수도 없는 일이고. 부모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아이는 부모에게 죄스러운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딸들아, 아들들아 힘내라! 세상을 바꿀 너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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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오늘은 아부지가 왔다. 내일은 니가가라 광화문!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며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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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하니 아이들과 부모들이 거리로 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동안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를 지켜보던 나는 지난 6일 광화문에 나갔다. 자식같은 학생들이 삭발을 하고 길거리에 나서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들이 점점 모여들었으나 시민들을 둘러싼 경찰의 수가 더 많았다.
학생 입장에서 비싼 등록금을 비싸다고 외치는 일이 부당한 건지 비양심적인 대학과 일 잘 못하는 국회의원더러 유권자가 일을 잘하라고 하는 것이 잘못인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라는 진부한 얘기를 이 자리에서 또 한번 외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광화문에서 자리를 함께한 학생, 시민들과 구호를 같이 소리높여 외쳤고, 성금을 걷을 때 많진 않지만 마음을 조금 보탰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으면 같이 동참이라도 하고 싶었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 것 같았다. 더불어 그것이 어른의 도리이자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젠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은 내려놓고 그들을 지지할 것이다.
딸들아, 아들들아, 힘내라! 어른들 믿지 말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거라. 이 시대의 어른들이 할 일을 제대로 못해서 그대들이 이렇게 되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잖니? 비싼 등록금을 챙기면서도 학습환경이나 교육의 질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대학 당국에, 보편적 복지나 국민의 기본권에는 관심이 없고 일부 계층에게만 특혜를 주는 정부에 분노하고 당당히 너희의 권리를 요구하거라.
다가오는 6·10항쟁 24돌에 학생들은 하루 동맹휴업을 하고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더 크고 밝게 촛불을 밝힐 계획이라고 한다. 나 역시 주말에 대학생인 큰애와 예비대학생인 둘째까지 데리고 광화문에 나가서 학생들에게 치킨 몇 마리라도 사주면서 격려해줘야 겠다. 혼자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모두가 힘을 합치면 변화는 시작된다. 대학생들의 정당한 요구가 결실을 맺길 두 아이의 엄마로서 온 마음 다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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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 서울파이낸셜센터 앞 계단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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