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한진중공업 노-사, 첫 밤샘 교섭...타결 짓나?

양현모 2011. 6. 26. 12:40

쌍용차 은서, 한진중 은서의 손을 잡다
노동자 가족들에 웃음 건넨 ‘희망열차 85호’
쌍용차·유성 가족 80여명 한진중 가족 위로 부산행…크레인 로봇티 입고 활짝
한겨레 박현정 기자기자블로그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중인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들을 위로하러 ‘희망열차 85호’를 타고 부산에 온 쌍용자동차·유성기업 노동자 가족들이 26일 오후 부산 중구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에서 한진중 노동자 가족들과 함께 강강술래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부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요일인 26일, 경기도 평택에 사는 네살배기 은서는 이른 아침인 7시에 눈을 떴다. 온 가족과 함께 난생처음 기차를 타는 날이기 때문이다. 은서네가 탄 기차는 서울에서 평택 등을 거쳐 부산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1205호, 이름하여 ‘희망열차 85호’다. 은서 외에도 30여명의 꼬맹이들이 엄마·아빠 손을 잡고 모처럼 나들이에 나섰다. 부산까지 향하는 네 시간 동안 꼬맹이들은 통째로 빌린 열차 한량에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뛰어놀았다. 강철 크레인 팔을 지닌 로봇이 그려진 하얀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은 이동수 화백이 그려준 자신들의 얼굴 그림을 들고 신나게 웃었다. 은서가 기차에 탈 무렵, 부산에 사는 아홉살 은서도 잠에서 깼다. 전날 밤 엄마는 은서에게 멀리서 친구들이 오니 함께 놀자고 일러주었다. 아빠에게 생긴 일을 모를 것만 같았던 은서는 이렇게 물었다. “그 친구들이 우리 위로해주러 오는 거예요?”

두 은서의 공통점은 ‘아빠에게 생긴 일’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였던 네살배기 은서 아빠는 2년 전 동료들과 함께 정리해고를 반대하다 해고를 당한 뒤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부산에 사는 은서 아빠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방침을 막겠다며 6개월째 영도조선소에서 점거시위를 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 가족 70여명은 자신들이 이미 경험했던 고통을 겪고 있을 한진중 노동자 가족을 위로하겠다며 부산행 열차를 탔다. 천안역에선 파업중인 유성기업 노동자의 아내와 아이들 10명이 같은 기차에 올라탔다.

정오가 지나, 한진중 노동자 아내와 아이들 30여명은 ‘♥ 희망열차 친구야 반가워’라는 문구를 들고 부산역으로 쌍용차 가족들을 마중 나왔다. ‘희망열차 85호’ 승객처럼 이들은 크레인 로봇이 그려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날 외출을 한 한진중 아이들 중에는 다리에 교정기를 심은 채 휠체어를 탄 아홉살 현서도 있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다. 엄마가 2003년 한진중 정리해고·가압류 반대투쟁에 나서는 바람에 현서는 생후 6개월부터 엄마 등에 업혀 있어야 했다. 엄마는 현서가 키가 130㎝밖에 자라지 않는 희귀성 난치병인 척추골간단 이형성증을 앓게 된 것이 그 때문은 아닌가 싶어 가슴이 미어진다.

성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른 두 은서는 이날 오후 부산 영주동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에서 손을 마주 잡았다. ‘누가 더 예쁘냐’는 우문에 큰 은서는 ‘둘 다 예쁘다’는 현답을 했다. 휠체어에 앉은 현서는 오카리나로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연주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리자 평택에서 온 열살짜리 준규가 슬며시 다가왔다. 오후 3시, 빗줄기를 피해 기념관 내 소극장에서 단체 가위바위보를 시작으로 놀이마당이 펼쳐졌다. 사물놀이패가 치는 꽹과리 소리를 따라 현서도 박수를 쳤다. 강강수월래 놀이가 시작되자 크게 세 무리로 흩어져 앉아 있던 한진중-쌍용차-유성기업 아이들이 일어나 한데 섞였다. 어른들은 마주 서서 서로 손을 맞잡고 아이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놓칠세라 손을 꽉 잡은 채 그 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해맑은 웃음소리가 극장 안을 가득 메웠다. 부산/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한진중공업 노-사, 첫 밤샘 교섭...타결 짓나?

24일 오후부터 교섭...

국회 환노위 청문회 등 여론에 '압박'

윤성효 (cjnews) 기자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오랫동안 갈등을 빚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사가 파업사태 이후 처음으로 밤샘 마라톤협상을 벌여,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진중공업 노-사 대표들은 24일 오후 4시부터 밤샘 교섭을 벌였다. 노-사 대표는 25일 새벽 5시경 정회한 뒤, 이날 오전 10시 다시 만나 교섭을 벌이기로 했다.

 

이번 교섭에는 노-사 대표가 각 5명씩 참여했다. 사측에서는 이재용 사장(조선부문)과 박승종·양민석·원광영 상무, 박찬윤 부장이 참여하고, 노측에서는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상지부 한진중공업지회 채길용 지회장과 최우영 사무장, 김창봉 부지회장, 박동엽 노안부장, 오길평 교선부장이 나섰다.

 

 

 

  
한진중공업 노-사 대표들은 24일 오후부터 밤샘 교섭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방문해 노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을 때 모습.
ⓒ 유장현
한진중공업

 

 

이들은 24일 오후 4시부터 교섭을 벌인 뒤, 이날 오후 8시경 협상대표를 각 3명씩으로 줄여 집중교섭을 벌였고, 25일 새벽 1시간 정도 정회했다가 다시 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교섭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앞서 노조 지회는 사측이 구조조정 방침을 밝히자 2010년 12월 25일부터 총파업에 돌입, 지금까지 파업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문제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 타결 짓지 못하고 있는 임단협 문제, 파업 사태 이후 발생한 각종 민형사상 문제 등 풀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또 35m 높이 85호 크레인에서 171일(25일 기준)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문제도 있다.

 

한편, 지금까지 대화를 거부했던 한진중공업 사측이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 관심을 모은다.사측은 앞서 지난 11~12일 한진중공업 조합원과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원·격려하기 위해 전국에서 왔던 '희망버스' 이후 폭력사건 등을 이유로 협상 거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희망버스' 이후 채길용 노조 지회장 등 지도부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렇듯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한진중공업 노사가 적극 대화에 나서게 된 이유에는 정치권을 비롯한 바깥의 여론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조남호 회장 출국, 도피성 아니냐"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2일로 158일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크레인 아래에 모여 있다.
ⓒ 윤성효
한진중공업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29일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국회 환노위는 지난 22일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출석을 요청했으나 조 회장은 17일 출국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 한진중공업은 "(조남호 회장은)7월2일까지 일본·홍콩·유럽 출장이 있어 국회에 나올 수 없다"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은 조 회장이 '도피성 출국'을 한 것이라 보고 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이런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지역구로 하고 있는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전 국회의장)은 24일 성명과 CBS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기업 총수가 장막 뒤에 숨어만 있다, 조남호 회장에 대해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국회의장을 지낸 그 지역 정치인인 내가 면담이나 통화 요청을 해도 거부하기를 벌써 십수 번이다, 나한테도 이 정도니 노동자들에게는 오죽했겠는가"라며 "이래서야 누가 회사 측의 진정성을 믿겠는가, 선대 회장이라면 이럴 때 어떤 모습을 보였을지 조 회장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형오 의원은 "명백한 도피성 출국이고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우롱했다"면서 "집단해고와 경영구조 변화에 대해 해명하고 국회 질의에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조 회장밖에 없으니 즉시 귀국해 청문회에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조남호 회장이 29일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고발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청문회 이전에 노-사 협상을 벌여 타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허남식 부산시장도 중재 나서... 3년째 임단협 문제도 풀어야

 

허남식 부산광역시장의 중재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허 시장은 지난 23일 이재용 사장과 채길용 지회장을 면담하고 대화를 촉구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관계자는 "허남식 시장이 경찰 등 관계기관을 대표해서 입장을 전달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권고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파업 사태 이후 밤샘 교섭을 한 적이 없었다, 회사가 부담을 많이 갖는 모양이다, 교섭 내용이 일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며 "2009년부터 3년째 타결 짓지 못하고 있는 임단협 문제도 있는데, 온갖 문제를 다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 시장은 "법원은 조합원 출입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고,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노조측에서 냈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린 상태다"라며 "회사로서는 그동안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여론에서 밀리고 있어 이번에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사측 관계자는 "노-사 양측 모두 부담을 가지고 있다, 한진중공업 문제가 사회나 정치권에서 이슈가 되고 있어 부담"이라며 "노-사 양측은 교섭을 계속 한다는 입장이다, 서로 대화로 풀어보자는 의지가 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