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주고싶어요” | |
‘희망버스’ 참여자, 부녀·자매·애인 등 다양한 동행 김진숙 위원 “1만명 모인 걸로 우린 이미 이겼습니다” | |
김혜순(36.회사원)씨는 1차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갔던 날 한진중공업 담을 넘었을 때의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기적처럼 어디선가 사다리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기 시작했다. 김씨는 망설이고 있었다. 밤새 촛불을 들어 지쳐 있기도 했고, 사다리를 타고 넘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얼마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던 그 순간 파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김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씨는 말없이 내밀어진 그 손을 붙잡아 무사히 담을 넘었다.
며칠 뒤 김씨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강제로 끌려나오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맞닥뜨렸다. ‘아, 저 사람이었구나.’ 김씨는 그제서야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던 그 남자가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였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김씨는 “나는 희망버스 한번 타고 다녀오면 그만이었지만 그곳에선 계속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다. 한번 다녀오는 것으로 끝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9일 오후 1시 서울광장 앞을 찾아 ‘2차 희망버스’ 41호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6살, 7살짜리 두 아이들은 남편이 맡아주기로 했다. “우리가 1차 희망버스를 탔던 그날 김진숙 위원이 농성 이후 처음으로 편하게 잤다고 전해들었어요. 오늘도 김진숙님이 편하게 잠드셨으면 좋겠어요” 희망버스 185대가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 전국에서 1만여명의 시민들이 6개월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려고 출발했다. 희망버스 준비팀 김혜진씨는 “누가 조직한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35m 고공 크레인 위에 올라선 노동자 한 명이 전국의 시민들을 움직이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희망버스에 몸을 싣게 했을까. 희망버스를 찾은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있을까.
#예비 노동자의 미소 이소망(24.대학생)씨는 곧 졸업을 하는 대학 4학년생이다. 등록금을 대느라 4년 동안 허덕였던 아픈 기억을 갖고있다. 이제 그는 곧 노동자가 된다.
이씨는 6월11~12일 동안 진행됐던 ‘1차 희망의 버스’에는 10일 열린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석하느라 미처 몸을 싣지 못했다. “매우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함께 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하는 이씨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씨의 남자친구가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고 했지만 이씨가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연인은 부산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고 했다.
#희망버스 부녀 연대 김씨 부녀는 한 희망버스 뒷 자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까만 피부의 아버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뽀얀 피부의 딸이 두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버지 김아무개씨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이는 임소담(영등포여고 2학년) 양이었다. 임양은 “뉴스에서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아버지가 이끌어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임양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고 했다. “아버지하고 2008년 촛불집회도 많이 나갔어요. 경찰 물대포도 몇 번 맞았지요.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임양은 수줍게 웃었다. 임양의 아버지 임아무개(48)씨는 전형적인 386세대이다. 83학번인 그는 “그 시절이 다 그러했듯 이런저런 안해 본 사회운동이 없다”고 했다. 오십줄을 앞둔 임씨는 딸에게 물려줘야 할 세상이 여전히 반노동자적인 것이 속상하다. 그래서 딸의 손을 잡고 부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임씨에게 “딸에게 좋은 교육 시켜주는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그게 아니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옆에 있던 임소당 양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연거푸 말했다. 함께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던 시민들은 ‘희망버스 부녀’에게 김진숙씨의 책 ‘소금꽃 나무’을 선물해주었다.
#희망버스 자매 연대 송은미(33)씨 자매도 나란히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니는 회사원. 자신은 프리랜서라고 소개했다. 경찰이 행진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란 소식을 들어 살짝 겁이 나지만 이들은 함께 부산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못한 송씨의 언니는 “우리는 늘 이렇게 함께 집회에 나간다”고 말했다. “동생이 경찰에 잡혀가면 제가 뒤처리 해야죠.” 이 말을 들은 송은미씨는 “언니랑 함께 가니까 무섭지 않을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이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에 연대하고 싶어했다. “남자들은 잘 모르는 고통이 많을 거에요. 김 지도위원이 부디 좌절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해고 노동자 문제를 꼭 해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송씨 자매의 바람이 희망버스를 타고 85호 크레인으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퀴어버스’도 떴다 성소수자인 이아무개(28.중증 장애인 활동보조 노동자)씨도 김진숙 위원을 응원하려고 희망버스를 탔다. 그런데 그가 탄 버스 이름은 조금 독특하다. ‘희망 퀴어버스’. ‘퀴어’는 ‘유쾌하다’는 뜻의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씨는 주변 동성애자 50여명과 함께 퀴어버스를 탔다. 성소수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다. 이들도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을 응원하려고 퀴어버스를 조직했다. 어느 성 소수자 패션 칼럼니스트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를 돕는 사람을 ‘밥집 아줌마’에 비유하며 폄하했지만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해고의 걱정없이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성소수자들도 평범한 노동자입니다. 우리같은 성소수자들이 해고 노동자의 아픔에 함께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닙니다.” 이씨와 함께 퀴어버스를 탄 성소수자들은 일곱 빛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다양한 색깔들이 사이좋게 한 깃발 안에서 어울리며 웃고 있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역사의 주인공”
유명자 전국학습지 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장은 이날 상기된 목소리로 시민들을 향해 연설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노조를 없애려고 해 1300일 동안 싸워오고 있습니다. 희망버스 참가자 여러분. 주위에 있는 아이들, 학부모들에게 호소해주세요. 재능교육 불매운동에 동참해주세요.” 이날 따라 유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희망버스가 그에게 불어넣은 힘이었다. 크레인 위의 김진숙 위원은 이날 트위터(@JINSUK_85)에 글을 남겨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추켜세웠다. “희망버스는 많은 걸 담을 겁니다. 사랑, 희망, 연대, 이 모든 것을 담은 ‘인간에 대한 예의’. 이 길을 예의롭지 못한 자들이 막아서겠지요. 만명이 모인 걸로도 우린 이미 이겼습니다. 가장 평화로운 승리! 담대하고 즐거운 축제!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들을 설레며 기다리겠습니다.”
희망버스 41호는 저녁 7시 40분께 부산역 광장에 도착했다. 부산역 광장에는 이미 5천여명의 ‘희망인파’가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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