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소식

희망버스대오 한 달 새 열배 늘었다

양현모 2011. 7. 11. 19:02

희망버스대오 한 달 새

   열배 늘었다

9일 1만 명 부산역→영도 행진…“정리해고 철회” 한목소리
영도조선소 1킬로 앞두고 경찰저지…최루액 살수 폭력연행
2011년 07월 10일 (일) 편집국 edit@ilabor.org

한 달 만에 열배도 넘게 늘었다. 지난 달 11일 부산 한진중공업에 모인 ‘1차 희망버스’ 행사 참가자는 1천 여 명이었으나, 이번에는 1만 여 명으로 늘었다.

 

 

 
▲ 김진숙 지도위원이 185일차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9일 저녁 '2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온 1만여명의 시민들이 부산역 광장에 모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지켜보고 있다. 이명익 기자 <노동과 세계>

9일 서울에서 출발한 대형버스 61대와 각 지역에서 출발한 대형버스 83대, 그리고 전국에서 몰려든 승합차 50여 대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자전거를 타고 온 이들까지. 이날 부산에 운집한 ‘2차 희망버스’ 참가자는 1만 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 1킬로미터 앞에서 밤새 ‘정리해고 철회’, ‘조남호 처벌’, ‘이명박 퇴진’ 등을 외쳤다. 이날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85호 크레인에 오른 지 1백 85일 째 되는 날이었다.

1만 여 명으로 늘어난 희망버스 대오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와 시민들은 이날 오후 7시 부산역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굵은 빗방울 속에서도 역광장에서 ‘사과가 사과탄이 되기 전에, 바나나가 곤봉이 되기 전에’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펼쳤다. 문화제 때 웨이크업, 3호선버터플라이, 노래를찾는사람들 등의 노래공연이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9일 동안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부산까지 걸어온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기획실장이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실장은 “쌍용차에서 노동자와 그 가족 열 다섯 명이 죽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노조간부로서, 열 여섯 번 째 죽음이 이곳일까봐 두려워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전했다.

   
▲ 9일 '2차 희망의 버스'탑승객들이 부산역에서 열린 결의대회를 마치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행진을 하던 도중 경찰차량에 막혀 있다. 이명익 기자 <노동과 세계>

부산역 콘서트를 마친 노동사-시민 1만 여 명은 밤 9시 20분 경 한진중공업이 있는 영도를 향해 평화롭게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경찰병력의 방해를 뚫고 부산 시내 중앙대로로 당당히 걸었다. 장대비가 몰아치는 부산도심을 행진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행진 내내 "정리해고 철회하라", "조남호를 처벌하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을 외쳤다.

9일 저녁 7시 부산역 문화제 뒤 행진

행진 시작 1시간 40분이 지난 밤 11시. 행진대오는 영도 봉래교차로 대교초등학교 앞에서 경찰 차벽 앞에 막혔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불과 1킬로미터 정도 남겨둔 지점이었다. 경찰병력은 전경버스와 살수차, 강화 프라스틱으로 만든 4~5m 높이 차단벽을 세워놓고 있었다. 경찰은 그 뒤에 승합차 30대를 추가로 배치해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쪽으로 접근하는 것도 막았다. 양옆 인도에는 중무장한 경찰병력이 수십 줄로 겹겹이 막아섰다.

   
▲ 경찰이 쏜 최루액이 눈에 들어간 한 스님이 물로 눈을 닦아내고 있다. 이명익 기자 <노동과 세계>

밤 11시 20분 경. 희망버스 행진대오는 무장한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고, 대오는 경찰이 친 차벽 바로 앞까지 진출했다. 맨 앞에는 노동자들이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절망을 넘어 승리로", "85 크레인에 희망을" 등의 피켓을 들고 경찰의 차벽에 맞섰다. 차벽에는 "강제진압 중단하라", "정리해고 박살내자" 등의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었다. 그리고 희망버스 참가대오들은 경찰 바리케이트를 뚫기 위한 몸싸움을 계속 벌였다. 이들은 오로지 맨 몸으로 무장한 경찰과 맞섰다. 하지만 경찰은 길을 내어주지 않은 채 최루액만 난사했다.

중앙대로 행진, 조선소 1킬로 앞두고 막히다

희망버스 참가대오들의 몸싸움과 차벽 넘기 시도는 다음날인 10일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계속됐다. 새벽 2시 20분 경 몇몇 시민과 노동자들이 도로 주변의 벽돌과 모래주머니를 들고와 경찰이 친 차벽을 넘기 위해 계단을 쌓기 시작했다. 여전히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액을 뿌려대며 방해했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난 새벽 2시 30분 경찰은 단 한 차례 경고방송만 마치고 곧바로 최루액 난사와 함께 물포 살수를 시작했다. 경찰살수차 두 대에서는 푸른빛 색소를 섞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최루액이 발사됐다.

   
▲ 경찰이 한진중공업을 향해 평화행진을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최루액이 섞인 파란색소 물대포를 뿌리고 있다. 이명익 기자 <노동과 세계>

2차 희망버스 참가자에는 노약자와 어린이, 그리고 장애인도 많았다. 하지만 경찰은 행진대오의 정면을 겨냥해 수 분 동안 계속 살수했다. 이어 경찰은 새벽 2시 45분 물포 살수와 함께 참가대오를 향해 치고 들어왔다. 경찰병력은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희망버스 행사측 방송차까지 치고들어온 경찰은 방송차 안의 두 명을 연행했고 방송차 케이블을 모두 끊어 방송마저 중단시켰다.

   
▲ 경찰이 부산역을 출발 한진중공업을 향해 평화행진을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뿌린 최루액이 파란색 물감과 섞여 비처럼 내리고 있다. 이명익 기자 <노동과 세계>

새벽 2시 30분 폭력경찰의 침탈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의 고 1짜리 딸도 이 자리에서 연행됐다. 딸의 연행에 항의하는 엄마도 함께 연행됐다. 심상정 진보신당 고문과 이광석 전농 의장도 현장에서 연행됐다. 이 때 경찰에 폭력적으로 연행된 사람만 모두 50명에 달했다. 이에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애초 있던 곳에서 1백미터 뒤로 빠져 그대로 차도에 앉고 누운 채 농성을 벌였다. 그러자 오전 4시20분께 경찰들은 차벽으로 물러섰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그 뒤 그곳에서 연좌하며 몸짓공연과 난장을 동이 틀 때까지 이어갔다.

그렇게 날을 새운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아침 7시 15분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는 대오 맨 앞에서 경찰폭력과 불법연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는 절망의 원인이 뭔지 다시 알게 됐고, 희망의 시작을 확인했다”면서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 경찰이 부산역을 출발 한진중공업을 향해 평화행진을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방패를 들고 위협하고 있다. 이명익 기자 <노동과 세계>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퇴출해야 할 사람은 조남호 회장”이라면서 “국회에서 끝까지 조남호 회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위해 이렇게 연대해주시는 것에 대해 금속노조를 대표해 감사드린다”고 인사하고 “금속노조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안전하게 내려오게 하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철회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밤새 연좌농성과 난장 이어가

이어 김선동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허영구 새로운노동자정당추진위원회 대표, 안효상 사회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조희주 노동전선 대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 박래군 인권재단 상임이사,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장, 이동호 시사만화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활동가 등도 차례로 나서 경찰폭력을 규탄했다.

   
▲ 2차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간 노동자시민 1만 명은 결국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했다. 사진은 10일 오전 7시 경 봉래동 삼거리 경찰 차벽을 등지고 긴급히 개최한 기자회견 장면. 정택용 기자<진보정치>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각 단체 대표들은 평화적인 행진을 폭력으로 대응한 경찰의 폭력과 초과 이윤을 달성하고도 노동자를 해고한 한진중공업의 이기적인 행동 등을 비판하며 이에 맞선 3차, 4차 희망버스도 조직할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결의했다.

이 기자회견 때 희망버스 기획단 집행책임자인 송경동 시인은 모든 연행자가 석방되지 않으면 희망버스를 단 한 대도 출발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어 희망버스 참가대오들은 연이어 “연행자를 석방하라”, “평화행진 보장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경찰은 연행자 중에서 장애인 한 명과 미성년자 한 명만을 석방했다. 2차 희망버스 참가자 1만 여 명은 10일 낮 3시 정리집회를 마친 뒤 타고 온 버스로 타고 돌아갔다.

"세금 썩었는가베...경찰, 와 저래 많노"
 외부세력? 영도 주민은 '희망버스' 반겼다
[取중眞담] "시끄러버도 할 일은 해야지, 욕 봤심더"
홍현진 (hong698) 기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아저씨, 이 다리 원래 빨간색 아니었어요?"

 

그러고 보니 10년도 훨씬 넘었다. 이 부산대교를 건넌 지. 빛바랜 빨간 다리를 건너 영도 외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설레곤 했다.

 

외할머니의 손녀 사랑은 지극했다. 엄마에게는 '무뚝뚝하고 엄격한 엄마'였다는 할머니는 손녀가 영도 집을 방문할 때면 "아이고, 우리 진이 왔나"하며 한달음에 달려 나와 두 팔을 벌렸다. 짧은 방문이 끝날 때면 눈물을 글썽이며, "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 되나"라고 묻고 또 물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면 이내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애정표현에 서툰 부모님 때문이었을까. 어릴 때는 '이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사는 영도는 늘 가고 싶은 곳이었고, 빨간 다리는 할머니 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10일 오후, 오랜만에 찾은 부산대교는 하얀색으로 변해있었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대답했다.

 

"맞아예, 이 원래 빨간색이었는데 빨간색이 바다랑 뭐가 잘 안 맞다 그래가, 하얀색으로 새로 싹 칠했다 아인교. 이래 칠할 때도 한동안 되게 불편했어예. 근데 아가씨, 한진중공업 갔다왔는교?"

 

"이 뭐꼬!" 소리 지르며 실랑이... 부산 민심 안 좋아지는 거 아냐?

 

  
경찰이 '2차 희방버스'의 거리행진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릴 집회를 불허한 가운데, 9일 오후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희망과 연대의 콘서트'를 마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영도조선소 앞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희망버스

부산 영도 85호 크레인 위에 '그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과 한진중 해고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영도는 할머니의 마음처럼 넉넉한 곳이었으니까. 그곳에서 이미 세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노동자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희망버스 취재하러 부산에 간다'고 전화로 말했을 때 엄마는 대뜸 "조심하라"는 이야기부터 했다. "안 그래도 넘의(남의) 회사 일에 외부 사람들이 나선다고 말이 많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9일 오후 9시경, 1만여 명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세찬 빗속을 뚫고 행진을 시작할 때만 해도, 피부로 느껴지는 '부산민심'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다. 시내버스 안에 들어가 인터뷰를 시도했던 강유진 인턴기자는 "욕만 엄청 듣고 쫓겨났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 부산시민은 "안타깝고 동참하고 싶은데, 그래도 집에는 가게 해줘야 할 것 아이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뭐꼬!"하며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참가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시민도 있었다.

 

부산역광장에서 영도대교로 이어지는 중앙대로를 점거하고 대규모 인원이 행진하는 것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처음 있는 일.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고, 특히 교통 불편 때문에 화를 냈다. '2차 희망버스 때문에 한진중 사태에 대한 부산 민심이 안 좋아지는 게 아닐까'라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시끄러버도 할 일은 해야지, 욕 봤심더"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경찰 저지선에 막혀 밤샘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10일 오전 부산 한진중공업 인근 경찰이 설치한 차벽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연행자들의 석방과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희망버스

 

하지만 9일과 10일 집회가 열린 영도구 봉래동 주민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경찰이 한진중 입구를 차벽으로 봉쇄한 탓에, 차벽 너머에 집이 있는 주민들은 바로 앞에 집을 두고도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주거지역에서 밤새 집회가 진행되다 보니 소음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10일 오전 6시경, 봉래동 해동병원 근처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밤새 시끄럽지 않으셨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의외의 답변을 해왔다.

 

"빗속에 길바닥에서 밤 새는 사람들도 있는데 하루 시끄러븐 게 대순교. 시끄러버도 할 일은 해야지. 욕 봤심더. 오히려 동참을 못하는 게 미안하지."

 

할머니는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혹시 가족 분들 중에 한진중 다니는 분이 계시냐"고 묻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한 손에 지팡이를 든 할머니는 "아침운동 나가는 길"이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오전 7시경 '연행자 전원 석방', '김진숙 지도위원과의 만남'을 요구한 기자회견이 열린 이후, 차벽 앞 7차선 도로에서는 한바탕 '난장'이 벌어졌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참가자들은 사물놀이에 맞춰서 한바탕 '춤판'을 벌이기도 하고, 대형 걸개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차벽 앞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 회원들이 휠체어를 타고 연행자 석방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아들과 함께 마트에 가는 길이라는 전아무개(41)씨도 잠시 오토바이를 멈추고 '난장'을 지켜보았다. 전씨는 "경찰이 군데군데 있으니까 애들 보기에 안 좋다"면서 "시민들에게 큰 불편만 없다면, 노동자들 때문에 (집회) 하기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도에서 돈을 벌었으모, 여서 일하는 사람들 믹이 살리야지"

 

  
10일 오후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막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에 접근하지 못한 채 1박 2일 일정을 마무리하게된 가운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
ⓒ 권우성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이 동네에서만 30~40년을 살았다"는 50~60대 아주머니들도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아(애)들 배가 얼마나 고프겠나 싶어가, 내 애가 터진다 고마. 이래 있어도…. 아침에 밥을 좀 해올라켔드만 워낙 인간들이 많아가. 서울에서 왔지, 어디서 왔지, 부산 사람들은 마 집에 가뿌믄 되는데, 서울사람들은 워낙에 멀리서 와가. 저 아(애)들을 우야겐노."

 

"갱찰들은 전부 다 도시락 묵드만. 여(여기)만 이래 못묵는기라."  

 

"내도 밤새도록 맻 바퀴를 돌았다 아이가. 돌아댕기면서 아(애)들한테 '니 어디서 왔노' 이라니까 '강남에서 왔어요', 또 어디서 왔어요. 다 다르더라꼬. 아가씨는 어데서 왔노?"

 

'서울에서 취재왔다'고 하자, 대뜸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외부세력들이 남의 회사 일에 간섭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고 묻자, 한 아주머니가 손가락으로 차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애)들이 부산에 뭐가 해당이 있어가 저래 앉아가꼬 있겐노. 도와줄라꼬 온거지. 아이고, 옷도 저 다 배맀뿐네. 아까 <부산일보>에서도 물어보드만, 나는 열 번을 물어도 (한진중공업이) 여(이곳에) 있어야 된다예요. 저 사람들 정리해고 한 게 필리핀 갈라꼬 그런거라 카대예. 요새 등록금도 비싼데 나(나이) 들어가 정리해고 당하면 머 먹고 살라꼬."

 

기자와 인터뷰 한 십여 명의 봉래동 주민들은 '한진중의 정리해고 문제'를 '조선소 이전'과 함께 생각하고 있었다. 오후 3시경 '2차 희망버스'가 '3차 희망버스'를 약속하며 떠나자, 경찰들도 그 견고하던 차벽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정준호(60)씨가 말했다.

 

"저 갱찰들 보소. 아(애)들 아인교. 불쌍하지. 갱찰들이야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거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합니까. 결론은 뭡니까. 돈 많은 사람들(한진중)이 받아줘야지. 누가 말해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이때까지 여서(한국에서) 얼마나 벌었는데. 돈을 벌었으모 여(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믹이(먹여) 살리야지. 필리핀에다 조선소를 차맀다 아입니까. 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야지. 나(나이) 많은 사람들 정리해고 시키면은, 한창 애들 키워야 하는데. 없는 사람들만 불쌍한기라."

 

조선업에 종사했다는 정씨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한진중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정씨는 "아가씨, 김진숙이가 뭘로 시작했는지 압니까, 여서 용접공을 했어요"라며 "또 노조위원장도 죽었다 아입니까, 박(박창수) 누고, 맻명 죽었어요, 문제있는 회사라니까"라고 고개를 저었다.

 

"세금이 썩었는가베, 갱찰이 와 저래 많이 왔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10일 오후 경찰 병력들이 공장 주위를 지나고 있다. 경찰은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7천여명의 경찰을 한진중공업 주위에 배치했다.
ⓒ 권우성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경찰 차량이 빠져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양아무개(64)씨 역시 한진중이 부산을 떠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양씨는 "내가 팽생을 영도에서 살았는데 한진중이 수백 억을 벌었어요, 그래놓고 공장 옮기뿌면 여(여기) 사람들 다 죽어요"라면서 "저 사람들(희망버스 참가자) 저래 와가 싸우는 거 가꼬 뭐라 하는 사람들은 뭘 모르거나 '있는'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 대신해서 싸워주는 거니까 오히려 고맙지예"라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다른 주민은 끊임없이 나가는 경찰차량을 보면서 "세금이 썩었는가베, 와 저래 많이 왔노, 갱찰이, 와 저래 과잉대응을 하노"라며 혀를 찼다.

 

양씨는 '전날 밤 연행당한 학생이 잃어버리고 간 가방을 주웠다'면서 기자에게 전해줬다. 그러고는 "갱찰한테 넘기면 안 됩니다"라고 몇 번이고 확답을 받았다. 가방 안에는 몇 만 원이 들어있는 통장과 도장이 들어있었다. 추후 확인결과 가방의 주인은 서울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으로 밝혀졌다.

 

희망버스에 경찰버스까지 더해져, 한진중을 떠나 부산 집으로 가는 택시는 정체를 거듭했다. '3차 희망버스가 온다'고 하자, 택시 기사 아저씨는 "한 번 더 와? 또 있어요?"라면서 "개인들이 공권력한테 이길 수 있는교, 저거는 이길 수 없다고 봐야제"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전국에서 저(저기) 온 사람들이 만 명이 넘는다 카던데, 전부 다 노조인교?"라는 아저씨의 질문에 내가 "대부분이 가족, 연인, 친구들"이라고 답하자, 아저씨는 조금 놀라는 듯했다. 

 

'2차 희망버스 승객'들이 끝내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던 10일 오후, 김 지도위원은 정리집회를 통해 "우리가 만든 일은 기적이다, 어제 오늘은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 고향 부산, 영도에서는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얀 다리 아래로 할머니 마음처럼 넓어 보이는 파란 부산 바다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