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둘이면서 하나였던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은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다. 역사의 격랑을 헤쳐 스스로 역사가 됐다. 한 사람은 ‘아름다운 바보’로, 한 사람은 독재의 동토를 넘어 민주화의 봄을 연 ‘인동초’로 국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자리를 잡았다.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했던, 치열했던 삶에 대한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과 추모다.
▲(왼쪽)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민’으로 돌아가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며 배웅하는 모습. ▲(오른쪽)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통곡하는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누구보다 가장 아프고 슬프게 받아들였다. 이날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의 속 좁은 반대로 읽지 못한 추도사에서 “노무현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말라”고 안타까워했다.
- 서로에게 형제이자 스승이었던 두 대통령, 그 ‘만남과 동행’의 순간들
두 사람은 둘이면서 하나였다. 때로 서로 다른 자리와 위치에 서기도 했지만 그러나 늘 같은 길에서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비주류로서 격은 고난과 역경,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 분단을 넘어 ‘겨레의 길’을 함께 추구했다.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한 가난의 삶마저 닮았다.
두 사람에게 서로는 어떤 존재였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을 “전생에 형제였던 것 같다”고 추억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곤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며 슬픔과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유일하게 존경하는 지도자’였다.
“나는 YS를 탁월한 정치인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를 지도자로 인정한 일은 없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지도자’로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래전에 역사의 인물이 된 김구 선생을 제외하고는 역대 대통령이나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서 내 마음속 지도자로 생각해 본 사람이 없고 보면 나는 그 분을 특별히 존경하는 셈이다”
김구 선생과 더불어 노 대통령이 특별히 존경했던 김대중 대통령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채워주는 ‘반쪽’이었고, 동반자였다. 다른 당으로 나눠져 있거나 정치적 견해 차이로 갈라져 있었을 때조차 서로를 아끼고 인정하는 동지였다. 첫 만남부터 그랬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민주당 총재로, 노무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초선의원시절 국회 본청 식당에서 있었다. 우연히 국회 본청 식당에서 노무현 의원을 본 김대중 총재는 성큼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잘했어요, 잘했어요”라고 말했다. 5공 청문회에서의 노 의원의 활약에 대한 격려였다.
▲(왼쪽) 93년 6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객원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을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했다. ▲(오른쪽) 97년 대통령선거 하루 전날, 마지막 유세를 함께한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왼쪽) 97년 대선 유세차에서 김대중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오른쪽)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해양수산부 장관 임명장을 수여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를 은퇴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복귀해 97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3김청산’의 입장을 내려놓고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이끌던 국민회의에 입당해 헌신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도왔다. 2002년 본인이 출마했던 대선에서는 선거 승리를 위해 김대중 대통령과 차별화하라는 주변의 끈질긴 요구를 뿌리치고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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