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세상

희망의 버스 역사를 쓴다!

양현모 2011. 7. 17. 15:00

환영식 한번 대단하다. 무려 만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 병력 7000명에 용역 3000명이 웬 말인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럴 시간에 민생치안에 신경 쓰는 게 나을 텐데.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 만 여명은 그저 190일 가까이 타워 크레인 위에서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를 지키고 있는 노조원들에게 인사 한번 하고 싶었을 뿐이다. 노조원을 비롯한 많은 해고자 가족들에게 힘을 주는 말 한마디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었어도 괜찮다. 아니다. 조남호를 물러가라고 하니 가만히 둘 수 없었을 게다.

 

 

폭력의 밤

폭우 속을 걸어서 영도에 도착했을 때 목적지에서 불과 1km를 앞두고 우리는 멈춰야 했다. 수고스럽게도 산성을 쌓고 완전무장을 한 경찰이 우리의 행진을 막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들은 ‘폭력’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제발, 제발, 한 대만 좀 쳐주라고 기도라도 하는 걸까. 그러면 졸지에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서 마음껏 두드려 패라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짜릿할까. 아무도 때리고 싶지 않고 아무도 맞고 싶지 않지만 높은 경찰 차벽 위에서 유유히 지켜보는 호래자식들은 경기 관람하듯 폭력을 유도하려 애쓰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시민들을 향해 그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를 리가 없다.  

경찰 차벽 바로 앞에서 무장한 경찰과 대치중인 시민들이 대단한 조직력을 갖추고 힘 꽤나 쓰는 건장한 남자들로 구성된 것도 아니다. 해고자 가족들, 나 같은 평범한 아가씨, “아줌마도 왔다!”라며 옆사람과 팔짱 꼭꼭 끼고 쏟아지는 물대포 속에서도 끄떡없던 대한민국의 아줌마들, 대학생들, 아버지의 입장으로, 노동자의 동료로 참여한 수많은 아저씨들, 그냥 말 그대로 돈 3만원 내고 버스에 오른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더구나 어느 미친 부모가 자기 자식 데리고 참여해서 위험한 짓을 하겠는가. 평화로운 행진을 원하는 시민들을 갑자기 폭도 취급하는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행진을 막기 위해 산성을 세워놓고는 갑자기 우리에게 ‘불법점거’를 했다고 하니 기가 찬다. 누가 점거하도록 만들었나. 그냥 지나가게 두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난다.

“학생들이 앞장선다!”라며 남학생들이 결국 줄줄이 달려 나와 앞줄에 서겠다고 나서는데 진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누가 저 학생들을 물리적 힘의 희생자로 만들었을까. 또한 투명한 헬멧 속으로 보이는 어리디 어린 전투경찰이 왜 우리를 향해 폭력을 쓰도록 만들었을까. 그들도 복무기간이 끝나면 다시 학생이 될지도 모른다. 용역으로 온 3000명 중에도 그 곳에 설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젊은이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실 어느 누구도 적이 아니다. 적이 될 필요도 없는데 이렇게 다른 처지에서 서로 희생되고 있다.

카메라를 앞세우고 유유히 ‘산성’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자들. 이 잔인한 현장을 그저 관찰하듯 보고 있는 그들이 얄미워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희망버스 안에서 틀어줬던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거대한 포크레인에 뛰어 올라 카메라를 주먹으로 박살내던 주인공 제이크.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모락모락 상상한다. 갑자기 내 팔이 가제트 팔처럼 길게 뻗어져서 그 뱀 대가리 같이 고개를 삐죽이 들고 우리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다 부숴버릴 수 있다면. 비열함이 무엇인지 모른 채 “지금 다 촬영하고 있습니다.”라는 방송을 뻔뻔하게 한다. 우스워라. 어처구니 없게도 앵무새처럼 미리 준비해 온 대본을 읽는 듯 토시 하나 다르지 않은 방송이 반복된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찰들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더 이상 여러분의 불법 행위를 묵인하지 않겠습니다…….” 아, 웃기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폭력을 쓰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는 걸까. 뻔뻔한 쇼를 한다.

물대포도 모자라서 잠시 후 푸른색 물이 쏟아진다. 화려한 물쇼다. 세금 걷어서 저런 거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매캐하다. 얼굴에 바로 맞아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뒤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물병이 전달된다. 마시려고 가져온 물이 최루액 씻어내는데 동원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 정도 진압은 애교에 불과했다. 경찰에서는 불법이 아니며 문제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분명히 문제가 있는 최루액이 10일 02시 30분경에 잔인하게 퍼부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를 결국 100m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상해를 입히는 것이 명백한 그 최루액이 정말 불법이 아닐까. 만약 그것이 불법이 아니라면, 그 법이 문제다. 국가를 고발하고 싶다.

긴 팔에 긴 바지, 양말에 단화, 비옷, 우산, 손수건으로 반쯤은 가린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뒤집어쓴 최루액 때문에 순식간에 입 주위를 시작으로 얼굴이 따가워지기 시작했고 우산을 들고 있던 손이 따갑고 화끈거리다가 붉게 변했다. 폭우로 바닥에 물이 많았고, 아무리 비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워낙 비가 퍼부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옷이 젖어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쏟아진 최루액이 발에 질컥거리며 결국 발이 따갑고 물에 젖은 옷에 쉽게 스며들며 살에 감겨 화상의 범위를 늘려갔다. 세제를 풀어놓은 듯 밀도 있는 흰 액체가 바닥에 질퍽하게 깔려 있었다. 나중에 신발을 닦고 다시 신어도 발이 화끈거릴 정도로 최루액의 농도는 짙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과 발에 가벼운 화상은 기본적으로 입어야 했다. 그러니 순간적으로 안면에 그대로 맞은 사람들은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일까.

심하게 구토가 일어나서 혼비백산한 채 꽥꽥거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바로 뒤에서 붉은 빛이 춤을 춘다. 시민들이 정신을 잃고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서 어느새 차벽 뒤에 있던 경찰들이 구름처럼 우르르 몰려나와 화려하게 곤봉을 휘두른다. 바닥을 내리치는 방패, 비명소리. “때리지 말아요!!!” 소리치는데 그 순간에도 버스 옆자리에 나와 함께 앉았던 분이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짧은 순간 아비규환이다. 정신을 차리고 내 꼴을 보니 비옷은 더 이상 비옷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뜯겨져 있고 신발 한쪽이 앞이 다 찢어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신발 한짝, 핸드폰, 지갑, 무릎 담요 등이 주인을 잃고 굴러다닌다. 나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버스를 타고 왔는데 지옥 정류장에 내린 걸까.

많은 사람들이 최루액과 경찰의 구타로 인해 응급실로 가거나 현장에서 간단히 약을 받아서 우선 아픈 것을 넘겨야 했다. 나는 가벼운 정도라서 근처 병원에서 손과 발을 씻고 의료단에게 간단히 약을 받은 정도였음에도 하루 가까이 지나야 쓰라림이 가라앉았고 아직도 손등에 붉은 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가 뭘 한 걸까. 1km앞에 있는 김진숙을 만나러 가겠다는 게 이토록 눈물 콧물 쏙 빠지게 고문을 당하고 두드려 맞을 일인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게다가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희망버스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참여한 가족들도 꽤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생수와 라면을 전달하기 위해 용돈을 모아서 참여한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전동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혹은 목발을 짚은 채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들도 있었다. 그런데 무차별적으로 최루액이 분사된다. 도대체 이것이 불법이 아니면 무엇이 불법일까. 최루액에 화상을 입고 급히 응급실에 갔던 어린 아이들. 희망의 소리를 들으려 했지만 공권력의 잔인함을 목도하고 그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과연 그런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희망버스는 지금 분명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투쟁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전화로만 시민들을 만날 수 밖에 없었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전해온 말 “희망버스는 희망혁명이다.” 그렇다. 지금 희망버스는 혁명의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단지 한진중공업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뻔뻔한 매체에서는 노사가 다 합의 보았는데 ‘외부세력’이 관여를 한다고 알린다. 졸지에 ‘외부세력’이 되었다. 그것은 착각이다. 누구도 외부세력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정리해고, 이 화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 지극히 소수다. 나도 당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민은 지금 자본의 독재에 반기를 들고 주권 행사 중이다. 이 땅의 생산물에 대해 국민에게는 주권 행사를 할 자격이 있다. 또한 이 땅의 소외 받는 자들이 모여서 발언하는 것도 우리의 주권 행사다. 그래서 모였다. 장애인, 성소수자, 미친 등록금에 반대하는 대학생들, 학부모들, 수많은 노동자들, 예술가들이 모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제 더 이상 ‘그들의 투쟁’이 아닌 ‘우리의 투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희망버스의 최고 미덕이다.

노자 사상의 핵심 중의 하나인 ‘유약柔弱의 덕’. 희망버스는 바로 그 덕을 실천하고 있다. 진실로 강한 자는 힘을 앞세울 필요가 없다. 이보다는 잇몸이 오래간다는 세상의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두려운 개가 으르렁거리듯, 민중의 희망이 두려운 권력자들은 폭력을 앞세운다. 그러나 독한 최루액으로 우리를 100m 후퇴를 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희망을 도망치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욱 불타오르도록 자극할 뿐이다.

피 흘리지 않는 진보의 가능성, 물론 회의적이다. 어떤 변화의 순간에도 피의 제전은 있었다. 그러나 희망버스가 보여주는 작은, 혹은 아주 커다란 희망은 바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비규환의 밤을 보내고 난 다음에도 막힌 장벽 앞에서 신나게 한판 놀았다. 우리는 그들을 웃게 만들어야 한다. 웃음으로, 예술로, 사랑을 이끄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투쟁 방식이 되어야 한다. 물끄러미 사물놀이패를 내려다보는 경찰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gala

쌍용차 관련 글 : <해고가 살인일 수 밖에>  http://blog.daum.net/jayuin666/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