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고공농성 300일 맞은 김진숙 “미안해 말아요”

양현모 2011. 11. 1. 20:24

고공농성 300일 맞은 김진숙 “미안해 말아요”
하니Only 

 

» 지난 6월30일 김진숙 위원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힘들다”는 말 뒤의 표정은 여전히 천진하다. 한겨레21 박승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해고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여온지 1일로 300일째를 맞았다. 각계에서 김 지도위원에 대한 격려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김 지도위원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주어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김 지도위원은 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시민들이 300일동안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준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오랫동안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300일 농성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김 지도위원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온다고 김 지도위원은 밝혔다. 김 지도위원은 이에 대해 “자꾸 그러면 내가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지니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 지도위원은 여전히 노사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과 관련해 답답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지난 8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국회 권고안을 수용한 뒤 한진중공업 노사는 몇 차례 협상을 벌였다. 노조는 해고자들의 근속연수 인정 등 불이익이 없도록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반면 사쪽은 국회 권고안 수용여부만 밝힐 것을 요구해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김 지도위원은 “조남호 회장이 국회와의 약속에서 ‘재고용시 불이익 없게 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이재용 사장이 협상장에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하더라. 어떻게 회장이 말한 것을 두고 사장이 들이받는 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2일 다시 만나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희망버스 기획단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갈월동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6차 희망버스가 26일 출발한다고 밝혔다. 기획단은 “26일과 27일 치러지는 2차 전국노동자 대회가 열리는 부산에서 희망버스가 함께 한다 ”고 말했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1일 저녁 7시 서울과 부산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동시에 연대문화제를 개최하고 김진숙 응원 라디오 생방송을 1일 정오부터 3일 저녁 7시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라디오 생방송은 갈월동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 설치된 라디오 부스에서 송경동, 김규항, 김여진, 변영주, 정혜신, 김조광수 등 사회 각계 인사가 참여해 돌아가며 진행을 맡을 예정이다. (방송듣기 http://afree.ca/cultcho) 또 5일 저녁 7시 부산 한진중공업 조선소 85호 크레인 앞에서는 ‘300일, 말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위로와 연대의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도 열린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사설]

김진숙에게 크레인에서

      또 겨울을 맞게 할 건가

한겨레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의 85호 타워크레인에 오른 건 올해 1월6일 새벽이었다. 높이 35m의 아찔한 타워크레인 위에서 그는 혼신을 다해 ‘한진중공업의 부당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외쳤다. 유난히 혹독했던 지난겨울과 봄, 여름, 가을을 맨몸으로 버텼고 어제 고공농성 300일째가 지났다. 이제 그 앞에는 다시 모진 겨울의 칼바람이 불어닥치려 하고 있다.

김진숙의 300일은 우리 사회의 천민자본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이땅에서 노동이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는지, 정부와 기업, 보수언론이 얼마나 강고한 이익동맹체인지 보여주는 징표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는 회사 쪽이 주장하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는 거리가 먼 폭력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런 탓에 지난달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여야 만장일치로 권고안을 마련했고,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권고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달 11일 이후 진행된 몇 차례의 노사교섭에서 회사 쪽은 노조가 요구한 ‘해고기간 근속연수 인정, 퇴직금 재산정 및 학자금 지급’ 등의 요구를 거부하고, 되레 김 지도위원의 사과문을 요구하는 등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한때 한진중공업 사태에 열을 올렸던 주류 정치권의 관심도, 조 회장에 대한 보수언론의 질타도 슬그머니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지만 김진숙의 300일은 인간과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려면 어떤 투쟁과 연대가 필요한지 가르쳐주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지난 6월부터 모두 다섯 차례 출발한 ‘희망버스’는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 부당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향한 연대와 희망의 힘을 생생하게 확인시켜줬다. 그것은 1%의 탐욕에 대한 99%의 정당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아직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오는 26일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부산으로 6차 희망버스는 시동을 걸 수밖에 없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법은 자명하다. 권고안을 수용한 조 회장이 실질적 책임을 지고 노조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중앙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도 국회 권고안의 취지가 관철되도록 협상을 적극 중재해야 하며 노조 역시 타협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제는 김진숙이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하자. 김진숙이 그곳에서 겨울을 두 번 나게 하는 것은 인간과 노동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