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그녀가 아직도 거기 있다 | |
도종환 시인 | |
|
|
엊그제는 밤새 가을비가 내렸다.
팽나무 잎 몇 개가 비에 젖어 벌써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옷장에서 조금 두꺼운 옷을 꺼내 몸에 걸치다 거기 아직도 그녀가 있다는 생각이 이마를 때린다. 김진숙 그녀가 아직도 거기 있다. 가을이 왔다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어린 손을 흔드는 코스모스를 예뻐하며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거기 허공에 있다. 비가 오면 비에 젖으며 거기 있다. 번개와 돌풍이 지나가면 그걸 그대로 견디며 크레인 위에 있다. 오늘도 거기 있고 내일도 거기 있을 것이다. 꽃이 지는 날도 거기 있었고, 폭염과 폭우가 몰아칠 때도 거기 있었다. 눈보라 몰아치는 날도 거기 있을 것인가? 발가락이 얼어 살이 문드러지는 날까지 거기 있게 두어야 할 것인가? 김진숙이 저 차가운 허공에 걸려 있는 동안 나는 가짜다. 김진숙이 하늘 한가운데 매달려 있는 동안 나는 사기꾼이다. 내 시 내 언어는 거짓이다. 김진숙이 가을비에 젖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위선자가 아닐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뉘우쳐야 한다. 김진숙이 밤의 냉기에 덜덜덜 떨고 있는데 나는 따뜻한 국물이 그리웠다. 나는 하루하루 속물이다. 그대 생각을 하면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잘못했다. 잘못 살았다. 비겁하게 살았다. 내려오라, 김진숙. 희망은 없다. 이 더러운 땅 어디에 희망이 있는가. 희망 같은 건 없다. 차별은 깊어지고,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지며, 내일은 오늘보다 살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발랄해야 할 10대의 일그러진 얼굴 어디에 희망이 있는가? 방황하는 20대 저 가난한 나이 어디에 희망이 있는가?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30대 어디에 희망이 있는가? 쉬지 않고 일했으나 해고의 불안에 시달리고 몸 구석구석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40대 누구에게 희망이 있단 말인가? 벌써부터 노후가 걱정인 50대, 존재감을 잃어가는 60대,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노인들 어느 누구에게 희망을 말할 수 있는가? 앞으로도 희망은 없다. 이 ×같은 세상 어디에 희망이 있단 말인가. 우리가 몸부림치는 동안만 희망이다. 우리가 쓰러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순간만이 희망이다. 우리가 서로를 부축하며 가고 있는 동안만 희망이다. 거기까지만 가면 희망이라고 믿었던 날들은 갔다. 이 고개만 넘으면 산 너머에서 희망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우리가 함께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동안만 희망이다.
그대 내려오라. 우리 곁으로 내려오라. 우리와 함께 희망으로 있자. 그대 생각을 할 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아프니, 그대는 얼마나 더 아프겠는가? 세상을 향한 그대 사랑을 이 땅이 알고 저 하늘이 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차별받는 이들, 희망이 없는 이들,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정규직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한 채 오늘 하루를 모질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대를 안다. 그대의 뜨거움, 그대의 연민, 그대의 사랑을 안다. 그러니 살아서 내려오라 김진숙!
희망버스지지 한국영화인 276인 선언 기자회견이 4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들머리에서 열렸다. 이날 회견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내 5차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하는 것 관련해 영화인들도 함께 하자는 여균동 감독의 제안과 그에 동참하는 영화인들의 뜻으로 마련됐다. 5차희망버스가 부산에 내려가는 10월8일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오른 지 276일째가 된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영화인 276명을 모으기로 했다. 회견 전날인 3일 밤까지 총 1,543명의 영화인들이 지지의사를 밝혔다. 여균동 감독 사회로 마련된 이날 회견에서 김조광수 영화제작자(청년필름 대표)는 경과보고에서 “2주 전 여균동 감독의 제안으로 트윗과 문자, 전화통화, 이메일 등을 통해 희망버스에 동참하는 영화인들을 모았다”면서 “세계 3대영화제라 칭하는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 깐영화제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영화제에서 정치적 사안과 국민 관심사를 이야기해온 만큼 우리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진중공업 철회투쟁에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준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은 “악랄한 한진자본에 의해 인간존엄성과 기본권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이 시각 85호 크레인 위에서 4명의 노동자가 300일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말하고 “5차 희망버스에 더 많은 노동자서민이 함께 해 그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 사회 희망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영화를 전공한다는 대학생 손상훈 씨는 “전국 지역 영화전공학생 수천 명이 영화를 보러, 또 희망버스에 동참하기 위해 부산에 간다”면서 “영화전공학생들은 우리 사회 어떤 모습을 영화에 담을 것인지, 영화에 담아야 할 정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또 김진숙 지도위원이 영화 ‘도가니’를 보고 싶다고 말한 것 관련해 크레인 위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창조적 프로젝트를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한결PD는 “이 문제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문제이며 이 시대를 사는 모두 함께 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수정 감독은 “한진중공업과 85호크레인 농성을 지지응원하는 깔깔깔 희망버스처럼 더 감동적인 영화는 없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다큐를 찍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전 세계인을 감동시킬 이 다큐멘터리에 많은 관심 바란다”고 주문했다.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의 눈물과 투쟁은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라면서 “이 선언은 의례적일 수 있지만 많은 시민이 연대하고 주변의 문화예술인들도 지지해 힘을 모은다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배우 권병길 씨는 “우리 영화는 100여 년 동안 여성의 아픔과 슬픔, 이 땅에서 겪는 괴로움을 담아왔다”면서 “김진숙이라는 여성이 크레인 위에 올라 반 년 이상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 영화인들이 희망버스를 함께 타고 가서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자”고 제안했다. 박성미 영화감독은 “전 세계 영화들이 약자 편에 서서 약자들의 아픔과 삶을 말해 왔으며, 아름다움과 감동은 권력과 착취에 있지 않다”고 전하고 “영화보다 더한 이 현실 속에서 연대하고 행동함으로써 현실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은 “영화인들은 영화 속에 온갖 삶의 문제들을 담아왔지만 이제 기록물을 만들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함으로써 변화하는 과정에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우 맹봉학 씨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버스 연대의 자리인 오늘을 계기로 문화예술인들이 사회 문제에 동참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수정 감독은 영화인들 연대 메시지를 낭독에 이어 여균동 감독이 영화인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영화인들은 해운대에 ‘희망터’ 부스를 설치해 한진중공업 사태와 희망버스를 소재로 한 관련 영화, 다큐 등을 상영할 계획이다. 또 오는 9일 저녁 7시 ‘강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가을밤’ 행사로 부산 한진과 제주 강정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파티를 연다. ‘김진숙과 희망버스’ 홍보 브로셔를 5개국어로 제작해 배포한다. 또 국내외 영화인들은 8일 오후 5시 85호 크레인을 지지방문하고 5차 희망버스에 연대참가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도 다채로운 내용의 85캠페인, 85프로젝트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지연 사무국장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와 희망버스를 향하는 영화인 276인의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10월8일, 9일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한다”면서 “오늘 한국의 영화인 276인은 김진숙, 그녀에게 첫사랑을 고백하는 부끄러움으로 영화에 동행하자는 초대장을 보내며 그녀를 가로막는 세상의 벽들을 향해 엄중한 경고장을 보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에서 희망을 찾아 모여드는 모든 희망시민들을 우리 영화인들은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하며 한진 85호 크레인의 아픈 풍경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최고의 영화임을 감히 선언한다”고 말하고 “전세계 영화인들도 살아있는 영화를 바라보게 될 것이며, 가슴 한가득 희망의 영화를 담고 자국으로 돌아가 희망을 전하게 될 것이고, 1년이 지나 희망에 찬 영화를 들고 다시 부산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영화인들은 “지금 부산국제영화제와 희망의 버스를 기다리는 영화인 276인은 김진숙, 그녀를 만나러 간다”면서 “함께 부산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 국내외 영화인들의 연대 메시지 “우리는 김진숙님을 익스트림 로우앵글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녀를 땅 위에서 eye-level로 보고 싶습니다.” “그녀가 환희 웃으며 계단을 내려와 땅을 내딛는 해피엔딩 스토리가 그 어떤 영화보다도 기다려집니다.”_임순례 감독 “김진숙 씨와 함께 땅에서 걷고 싶습니다.”_조창호 감독 “희망버스는 영화제를 확장하는 거대한 극장. 부산시와 행정당국은 오히려 희망버스 집회를 보호하고 안전한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국격을 높이는 것이다. 제발 불법시위니, 사회불안이니 하는 시대착오적 얘기는 하지 않기를. … 당돌하고 발랄한 꿈을 꾸는 모든 분들에게 이 거대한 극장으로 입장을 권한다. 영화제를 보러 왔다가 영도를 방문해도 좋고 희망버스를 타고 와서 영화를 봐도 좋을 것이다. 하나의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듯 최소한 평생 잊기 힘든 날카로운 각인이 되어 여러분의 삶 한쪽에 새겨질 것이다.”_박정우 감독 “영화를 만들며 김진숙을 생각합니다. 늦은 밤 촬영장에 올려진 크레인을 보며, 늦은 밤 귀가하는 촬영버스 안에서 당신의 안부를 궁금해 하며 기도했습니다. ‘깜깜절벽, 절해고도 세상은 깊은 바다 속이다.’ 언젠가 당신이 뱉은 이 말을 늘 생각합니다. 날씨가 추워집니다. 아프지 마세요”_강소영 씨네2000 기획팀장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책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소금꽃의 의미는 노동자의 피와 눈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금꽃이 노동자의 활력, 웃음 등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버스 파이팅”_홍형숙 감독 “희망버스와 여러분의 용기있는 행동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후세에게 희망버스는 참으로 용기있는 일이었다고 기억될 것입니다. 늘 즐겁게 웃으면서 잘 해내시길 바랍니다.”_강형철 감독 “한진조합원 여러분께 늘 안타깝고 항상 미안한 감정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시길 바랍니다. 늘 여러분과 함께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_김동원 감독 “영화보다 현실은 훨씬 과격하고 참혹하고 더 폭력적입니다.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김진숙의 이야기입니다. 어서 빨리 내려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힘내십시오.”_김태용 감독 |
'한겨레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공농성 300일 맞은 김진숙 “미안해 말아요” (0) | 2011.11.01 |
---|---|
99%대1%=>여의도를 점령하라! (0) | 2011.10.15 |
‘노동자는 하나’ 현대차 전주공장 연대의 힘 (0) | 2011.09.22 |
“현대차가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 (0) | 2011.09.16 |
한진중 김진숙씨와 ‘그들’이 산다 (0) | 2011.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