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퀸즈랜드대 교수
무상교육·기한없는 실업수당…
노동자 우대 제도 저변에 깔려
“교육이 바뀌려면 전반적인 사회구조, 특히 임금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전 계층의 소득이 향상되어야 시민의식도 성숙해지고, 신분상승 욕구도 사라집니다.”
정재훈(53·사진) 퀸즐랜드대 교수(언어 및 비교문화학)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1년 동안 후학을 가르쳤다. 그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대학 서열에 따라 ‘명문대 보내기’에 열을 올리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이를 바꾸기 위해 무엇보다 노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취업을 할 때, 구직자들이 책 한 권 분량에 이르는 생애 이력서를 냅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 현장학습 등을 경험하고, 일종의 활동증명서라 할 수 있는 ‘생큐 카드’라는 것을 받습니다. 이를 증빙자료 삼아 자신이 왜 이 직장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설명하는 거죠. 한국의 입학사정관제가 이를 따라올 수 없는 건, 한국 학생들에겐 이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오스트레일리아는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 많은 편이다. 1년 평균 소득이 오스트레일리아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에 해당하는 6만오스트레일리아달러(한화 7200만원) 정도 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세율이 25% 정도라고 한다. “이 세금으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실업수당 등을 받는 거죠. 실업수당은 기한 없이 나옵니다. 이 때문에 더 많이 벌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일에 대한 즐거움이나 성취감 때문에 직업을 정합니다.”
그에게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정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자원경제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관광과 교육, 서비스업이 활성화되어 있고, 이 바탕에 노동자들을 우대하는 환경이 깔려 있습니다. 지하자원으로만 먹고사는 나라라는 건 오해예요.”
한국 아이들 부러워할’ 호주의 선진교육 현장 | |
이재훈 기자 | |
서열없는 대학…스트레스·학교폭력 ‘훌훌’“별로 다르지 않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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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랜드주 골드코스트에 있는 마이애미 하이스쿨에서 9학년(한국의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사가 요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 42개 대학 중 39개가 국공립 오스트레일리아에는 42개의 대학이 있다. 39개는 국공립이고, 3개는 카톨릭계 사립대다. 대학 서열은 없다. 전공별로 유명한 대학이 있을 뿐이다. 고든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인 캔 페리(16)는 사진가가 꿈이다. 그는 수학 ‘하’반 수업을 듣고, 영어도 대학 진학반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수업만 듣는다. 그는 내년부터 사진가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도제식 직업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돈을 모아서 카메라를 샀어요. 카메라를 잡고 한 컷 찍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전문지식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죠.”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들은 60%가량이 대학에 진학한다. 40%는 바로 직업교육을 받거나 취업을 한다. 대학진학률이 한국(2010년 기준 79%)보다 낮은 까닭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이 많은 블루칼라 계층이 화이트칼라 계층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환경 때문이다.
■ 법정최저임금, 한국 4.7배 오스트레일리아의 올해 시간당 법정최저임금은 17.9오스트레일리아달러(한화 2만1480원)다. 한국(4580원)의 4.7배다. 법정최저임금에 연금과 수당이 더해져 오스트레일리아 노동자들은 보통 시간당 20오스트레일리아달러(한화 2만4000원)를 받는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 발표 자료를 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6만6984미국달러로 한국(2만3749달러)의 2.8배다. 경제력에 견줘도 한국의 최저임금이 오스트레일리아의 60%가량에 불과한 셈이다.
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에겐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240만~250만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한다. 짐 베이커 마이애미 하이스쿨 교장은 “최근 수학과 과학 교사들이 부족한데, 그쪽 전공자들이 교사보다는 기술자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라며 “나도 가능하다면 광부가 되어서 1년에 30만오스트레일리아달러(3억6000만원)를 벌고 싶다”고 말했다.
차별 교육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수월성교육이나 영재교육은 하지 않는다. 퀸즈랜드주 브리즈번시 홀랜드 파크 프라이머리스쿨의 케빈 올리브 교사는 “수월성교육이나 영재교육은 명백한 차별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다만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습부진아는 일주일에 2~3차례 하루 30~40분 정도 따로 보충수업을 해준다”고 말했다.
■ “학교폭력 조장하는 권력관계가 없다” 서열이 없고, 유명 대학에 가려고 아등바등하지 않는 교육환경에서 학교폭력은 드문 일이다. 5년 전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족과 함께 이민 온 김주환(18)군은 한국에 살 때 ‘집단 따돌림’을 겪으면서 ‘일진’들에게 매를 맞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는 ‘나만 잘 살면 되지, 친구가 뭐 중요하냐’고 생각하다보니 어느덧 따돌림을 당했어요.” 하지만 그는 빅토리아주 멜버른의 맥키넌 세컨더리 칼리지(한국 학제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학교폭력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국에선 학생들 사이의 관계나 학생과 교사 사이의 관계나 모든 게 서열로 구분되죠. 하지만 여기는 모두 수평적으로 삽니다. 남에게 군림하는 걸 배우지 않죠. 게다가 학업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남에게 풀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한국의 학업 스트레스가 100이면, 여기는 10~20 정도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