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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서 순회 강연·간담회 연 김 지도위원
309일 동안 크레인 투쟁 이야기 생생하게 들려줘
“고공투쟁·희망버스는 전례없는 노동투쟁” “큰 감동 받았다”
“김진숙씨의 용기에 같은 노동자로서 큰 감동을 받았다.”(독일 지멘스 노동자)
‘309일간의 타워크레인 투쟁’이라는 노동운동의 새 역사를 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지난 2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금속노조본부에서 한진중공업 사태와 희망버스 이야기를 풀어놓자, 50여명의 청중들은 뜨거운 연대의 열기로 화답했다. 독일 노동자들은 특히 “2009년 독일은 노동조합과 기업, 정부가 임금인상 억제에 합의해 큰 충돌이 없었지만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된 적이 있다”며 한국의 정리해고 실태에 큰 관심을 보였다.
김 지도위원은 황이라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과 함께 지난 19일부터 26일까지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베를린에서 독일순회 강연과 간담회를 열었다. 독일은 지난해 크리스티안 불프 당시 대통령이 희망버스 지지서한을 보냈을 정도로 이들과 인연이 깊은 나라다. 24일 베를린금속노조 간담회에는 독일국제자동차평의회를 위해 독일을 방문 중인 쌍용차해고자 김정운씨도 참석해 쌍용차 사태와 해고자의 현실을 알리기도 했다. 김 위원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엄청난 폭력으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연대도 호소했다.
김진숙씨와 독일의 인연은 진보적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에서 시작된다. <타게스차이퉁>의 기사를 통해 한진중공업 사태와 김진숙 위원의 고공투쟁이 독일에 알려지면서, 독일금속노조는 김 위원 초청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번 행사의 조직을 맡은 베를린금속노조 국제교류지부의 한스 쾨브리히(67)는 “동료가 기사를 읽은 뒤 큰 감동을 받고 나에게 얘기해줬다”며 “김 위원의 고공투쟁과 희망버스는 전례 없는 노동투쟁”이라고 의미를 평가했다.
지난 22일 저녁 <타게스차이퉁>이 운영하는 베를린 루디두치케 거리의 타츠카페에서 열린 ‘고공파업’ 강연 역시 김 위원의 농성에 대한 독일의 관심을 반영했다.
김 위원은 객석을 메운 100여명의 청중들에게 “저를 찾아와 주시고 투쟁 중에 마음으로 연대해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반갑고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에 살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라며 감사를 표현했다.
김 위원은 당시 지인들이 휴대폰 배터리를 크레인으로 올리려고 모형헬기를 샀지만 트위터에 올리는 바람에 저지당한 일, 식빵 속에 숨겨 배터리를 올리려다 사수대가 식빵에 바른 본드를 먹게 된 일, 용역 깡패가 올라올 때 배설물을 폭탄으로 사용한 일 등 급박한 상황에서도 ‘웃지 않을 수 없는 해프닝’을 들려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또 외로운 투쟁 중 그에게 유일한 소통의 통로가 되어 주었던 트위터 이야기, 공권력이 들어오면서 김 위원에게 밥을 올려주던 황이라 부장이 겪었던 어려움도 생생하게 전했다.
강연 뒤 질문시간에는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저녁 7시에 시작된 강연은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연장된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독일 청중들은 김 위원의 농성이 이룩한 성과, 특히 희망버스에 주목했다.
김 위원은 “30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면서 희망버스 같은 형식의 연대는 나도 처음 봤다”며 “<버스를 타라>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희망버스가 어떤 의미인지 실감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희망버스를 관료화된 한국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만약 민주노총에서 희망버스를 만들었다면 이름도 희망버스가 아니라 복잡하게 ‘무엇 무엇을 위한 투쟁’ 이라는 긴 제목이었을 것”이라며 “권위적이고 관료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버스가 가능했고, 절절하고 애틋한 게 가능했을 것”이라며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 독일인은 “크레인에 올라간 게 혼자의 결정이었나, 조합원들과 합의로 한 일인가” 묻기도 했다. 김 위원이 “내가 올라가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이 알고 나서 많이 놀랐다”고 답하자 강연장은 일순간 숙연해졌다. 김 위원은 노동운동에 뛰어든 뒤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또 감옥에서 겪은 고초들이 크레인 위에서 자신을 견디게 했다면서 “펜치같이 생긴 연장하나 들고 올라가, 지붕과 화장실 심지어 수도도 만들어 썼다. 그 위에 올라가서 펜트하우스 부럽지 않게 재미있게 보냈다”고 밝혀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독일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 유학생과 교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베를린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하고 있는 김새봄(28)씨는 “죽을 각오를 하고 시너까지 들고 올라갔지만, 텃밭에 딸기와 방울토마토, 치커리를 키우셨다는 에피소드에 울컥했다. 오늘 녹음한 것을 팟캐스트에 올려 더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2001년에 독일로 온 교민 유재현(38)씨도 “309일 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은 분이라서 건장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너무 가냘파서 충격이었다”며 김 위원을 ‘작은 거인’으로 평가했다.
교민과 유학생들은 크레인 농성은 물론 이번 독일 방문 과정에서도 김 위원과 독일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40여년 전 간호사로 독일에 정착한 최영숙(68)씨는 독일금속노조와 김 위원을 연결해줬다. 최씨는 교민들의 5·18 기념행사인 5월 민중제 준비위원으로, 한민족유럽연대에서 활동중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부산 영도의 투쟁 현장을 지지 방문해 김진숙씨와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또 불프 대통령의 희망버스 지지서한도 독일 유학생 정지혜씨가 직접 독일 대통령에게 고공크레인 투쟁을 지지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 노력 끝에 이뤄졌다.
김 위원은 “독일교민, 유학생, 독일대통령까지 저를 도와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그 마음을 전하러왔다”고 이번 방문의 목적을 밝혔다. 김 위원은 26일 독일 교민들의 5월 민중제에서도 뜨거운 호응 속에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