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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노동운동가이신 이일재 선생이 지난 24일 밤 11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
ⓒ 조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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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절부터 평생을 노동운동에 몸을 바쳤던 이일재 선생이 지난 24일 저녁 향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빈소는 대구의료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다.
고 이일재 선생은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나 1942년부터 제화공장, 화학공장 등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46년 해방 후 대구지역 공장자주관리 운동에 참여하고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경상북도 평의회 간사로 활동했다.
이 선생은 1946년 9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대구 9·23 총파업, 10월 항쟁 당시 주도적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대구 팔공산 빨치산 활동, 경북지역 빨치산 정치위원으로 활동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이 선생은 또 전쟁 후인 1958년 한국노총 경상북도 조사통계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68년 7월 '남조선 해방전략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1988년 8월 14일 가석방됐다.
이후에도 1997년 민주노총 2기 지도위원과 2002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 지도위원을 지내며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지난 2010년에는 고법에서 '남조선 해방전략당'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검찰의 항고로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다.
대구총파업·10월항쟁 주도... 27일 대구시민회관 앞 노제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오랜 옥살이로 인한 후유증과 노환을 견지지 못하고 병석에 누워 서울, 대구를 오가며 입원과 외래치료를 반복해왔다. 지난 2009년부터 성주에 있는 노인전문병원에서 요양치료 중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 선생이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난 2009년에는 해복투 회원들을 중심으로 '이일재 동지 후원회'를 만들어 치료비를 마련하는 노력을 해왔으며 선생의 짤막한 회고록과 다양한 정치이론·정세분석 문건들을 모아 <노동자평의회와 공산주의 길>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선생의 아들인 이정건(52)씨는 "마음씨 좋은 노인이셨다"며 "아버지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긴 했지만 항상 엄하고 바르신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해복투의 이영덕씨는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해오신 분"이라며 "선생님이라 부르기보다는 동지라 부르는 게 더 친근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해복투는 앞으로 이일재 선생의 평전을 발간할 예정이다.
장례는 전국노동자장으로 진행하고 대구의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는 26일 저녁 대구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추모제를 연다. 또한 발인일인 27일에는 (구)전평 사무실이 있었던 대구시민회관 근처에서 노제를 지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