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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부자 동네인 강남·서초구 등의 투표율이 가난한 구보다 높다. 한겨레 자료 |
생업 자유로운 고소득층 투표율 높아… 평일 재·보궐 선거에선 투표율 차이 뚜렷
생업에 매인 저소득층은 평일이든 휴일이든 투표하러 가기 위한 시간을 내기 어렵다. 회사에서 나가는 게 아예 불가능하거나, 나갈 수 있더라도 고용주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고소득층은 자영업을 하든 직장에 다니든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1인1표의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지난 5월22일 나라별로 '당신의 더 나은 삶 지수'(Your Better Life Index)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36개국 중 24위였다. 주거·소득 등 삶의 질과 관련한 11개 항목으로 평가했는데, 이 중에는 시민 참여 부분도 포함돼 있다. 투표율로 대변되는 시민 참여와 관련해서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2007년 대선 투표율로 다른 나라와 비교했는데, 당시 투표율 63%는 OECD 평균(73%)에 비해 낮다는 점이 지적됐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소득수준에 따른 투표율 차이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득 상위 20%는 투표율이 91%로 높은 반면 하위 20%는 59%에 그쳐 두 계층 사이에 무려 32%포인트의 격차가 났다. 다른 OECD 국가들의 평균 격차는 7%포인트에 불과했다.
어떤 방법론을 통해 작성한 것인지 밝히지 않고 있으나 다른 나라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했을 것임을 감안하면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서민과 빈곤층의 투표권 행사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 참여가 제약되면 이들의 정치적 의사 표출 역시 제한되고, 이는 정치권에 이들에 대한 반응성을 떨어뜨려 결국 이들의 요구·필요 사항들의 개선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서민·빈곤층의 정치효능감은 나아지지 못하고 투표 불참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2007년 대선 직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저소득층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음이 확인된다(표1 참조). 월소득 200만원 미만과 200만~299만원 등 상대적 저소득층에서 '투표하지 않았다'는 응답률이 각각 30.2%, 31.4%로 전체 평균(28.6%)보다 높았다. 하지만 비교적 고소득층이라고 할 수 있는 300만~399만원, 400만원 이상 계층에서는 투표 불참 응답률이 25.8%, 26.5%로 높지 않았다. 선거 이후 여론조사 방식으로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투표율과 차이가 있지만 소득수준에 따라 투표율에 차이가 있음은 충분히 보여준다.
강남 3구의 투표율 최상위권
실제 선거 결과를 놓고 지역의 소득수준과 해당 지역의 투표율을 살펴보아도 이런 사실이 어느 정도 확인된다. 특히 재·보궐 선거는 소득수준에 따른 투표율 차이 현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재·보궐 선거는 휴일이 아닌 평일에 실시되기 때문에 소득수준 요인에 따른 투표율 변화를 파악하는 데 용이한 측면이 있다. 즉, 일을 해야 하는 평일의 재·보궐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 사이에 투표할 만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힘든 육체노동을 하거나 저녁 8시 이후까지 일해야 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 투표 시간을 배려받거나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다. 반면 부유층은 퇴근 시간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고 있거나, 가족 구성원 중 가장을 제외하고는 평일이더라도 투표할 여건이 비교적 양호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평일인 2011년 10월26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자치구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수준에 따른 투표율 차이가 상당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울시가 2년마다 자치구별 월평균 소득 자료를 정리해 내놓는데, 2008년을 기준으로 할 때 1위는 서초구로 480만원에 이른다. 강남구가 뒤를 이어 454만원이며, 송파구는 376만원으로 3위다. 당시 전체 투표율은 48.6%였는데 서초구가 53.1%로 가장 높았다. 강남구와 송파구도 각각 49.7%와 50.2%로 상위를 차지했다.
반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낮은 금천구(44.3%), 중랑구(44.4%), 강북구(45.2%) 등은 투표율 역시 최하위권이었다. 금천구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242만원으로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낮다. 중랑구는 264만원이고 강북구는 279만원으로 가장 아래에서 순위를 다툰다.
역시 평일인 2011년 8월24일 실시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당시 주민투표에서는 야권에서 투표 불참 전략을 사용했기 때문에 당연히 강북 등 야권 강세 지역의 투표율이 낮은 면이 있지만 보수 정치세력도 지역별로 기본 지지층이 있는 상황에서 투표 참여 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소득수준과 투표율 관계를 비교해볼 수 있다. 당시 평균 투표율이 25.7%였는데 서초구가 36.2%로 가장 높았고 강남구 35.4%, 송파구 30.6%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금천구·관악구·강북구·중랑구 등은 각각 20.2%·20.3%·21.7%·23.1% 등으로 역시 최하위를 기록했다.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곳에서도 투표율이 낮게 나타났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의 저자 손낙구는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 두 차례 선거를 세밀하게 살펴 투표를 평균 이상으로 많이 한 동네에서는 1인 가구 비율이 16~17%로 높지 않은 반면, 투표를 평균 미만으로 적게 한 동네에서는 24%로 높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1인 가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월세 비율이 높다는 것이고, 가구 소득도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1인 가구의 75.6%는 월소득이 200만원 미만이고, 이 중 절반이 100만원 미만이다. 소득도 낮고 주거 환경도 열악한 것이다. 이 역시 소득수준이 투표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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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파견 등 비정규직은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워 투표 불참률이 특히 높은 것으로 나왔다. 한겨레 자료 |
비정규직은 투표 참여 불가능
이런 흐름에서 최근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표참여율에 관한 연구다(표2 참조). 가상준 등(2011)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의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표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줬다. 2008년 4월9일 실시된 제18대 총선과 관련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이 중 '투표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들에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응답이 64.1%로 아주 높았다. 반면 '참여할 수 있었지만 참여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35.9%였다. 내적 요인이 아니라 외적 요인에 의해 참여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월등히 많았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계약제·기간제 노동자는 '투표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비교적 적은 편인데 일용직·임시직, 그리고 파견·용역·도급직 노동자는 전체 평균보다 더 높았다. 즉 비정규직 내에서도 노동강도가 세고, 노동환경이 열악하며,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고용 형태에 처한 경우 투표 참여에 대한 어려움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투표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도 물었다. '고용계약상 근무시간 중 외출이 불가능해서'라는 응답이 42.7%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임금이 (전액 혹은 일부) 감액되기 때문에' 26.8%, '개인적인 일로 참여가 불가능해서' 14.6%, '고용주나 상사의 눈치 때문에' 9.8% 등이었다. 근무와 관련한 이유로 참여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80% 가까이 된다. 2010년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도 물었는데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소득수준과 고용 형태에 따라 투표 참여가 제약받는다면, 이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가 정치 참여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자유로운 선거 참여가 보장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과연 이런 상황을 놓고 1인1표의 민주주의가 온전히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경제민주화도 가야 할 길이겠지만 '정치민주화'의 여정도 끝난 것이 아님을 정치권은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