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 희망버스 출발을 앞두고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주변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참여연대·전국여성연대·국제민주연대·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한진중 공권력 투입을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은 '강제진압이 시작되면 크레인 위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밝히고 있어, 무리한 경찰력 투입이 참사를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사회단체는 어떤 명분으로도 경찰력을 투입해서는 안 되며, 만에 하나 강제진압 과정에서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정부와 경찰의 책임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이번에 한진중공업 사측이 강행하고 있는 정리해고는 부산지역 경제와 조선업의 미래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한진중은 부산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땀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제 지역경제를 버리고 필리핀 수빅으로 공장을 이전하려고 한다"며 한진중을 '먹튀자본'에 비유했다. 박 처장은 "저축은행사태에 한진중까지 겹치면서 부산민심이 심상치 않다고 한다"면서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 텃밭에서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축은행·한진중...한나라당, 텃밭에서 처참하게 패배할 것"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필리핀 수빅에 있는 한진중 수빅조선소의 현실도 들을 수 있었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차장은 "한진중에서 필리핀 노동자들을 부품처럼 취급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했다"면서 "이 때문에 2009년에는 필리핀 상원에서 이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3일, 필리핀 한진중 노동자들은 수빅조선소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알리기 위해서 마닐라에서 수빅까지 '희망버스'를 타고 달렸다. 수빅조선소는 직원 수 2만 명이 넘는 세계 4위 규모의 조선소. 희망버스 시위에 참석한 필리핀 노동자들에 따르면, 수빅조선소에서는 가혹행위는 물론이고 산재도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한다. 나 사무처장은 "한진중은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적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을 강요하면서, 안전대책으로 매일 아침 운동장에 모여 한국노래에 맞춰 체조하는 것을 내놓았다, 군대문화를 통해서 산업안전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한진중"이라고 한 뒤 "해외에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해서 한진중 문제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예견되었다 나는 2008년 8월1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건설목공노련(BWI) 주최 국제청년조직활동가교육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일정에는 특정 지역을 방문하여 ‘세계화가 산업 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마닐라에서 3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한때 미국 해군기지로 사용되기도 한 올롱가포 수비크만에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70만평의 초대형 조선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필리핀 정부는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지법인에 이 시설에 대한 15년 동안의 사용권을 부여했다. 이미 1단계 공사가 마무리돼 아로요 당시 대통령까지 선박명명식에 참석한 가운데 1호 선박을 진수한 상태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자랑스러움은 잠시, 한국 특유의 천민자본주의 행태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뒤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현지 숙소에 있는 수비크조선소 노동자들을 찾아가 “한국말 할 줄 아느냐?”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Pali Pali Sekya!”(빨리 빨리 새끼야)라며 한국 관리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이 말이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었다. 이 말 한마디가 수비크조선소의 노동환경 실태를 그대로 짐작케 했다. 당시에도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현지법인 현장에는 ‘해고자 노동 탄압’ ‘계속되는 산재 죽음’ ‘조선소 주거 주민 강제철거’ ‘다단계 하청 노동착취’ 등 산적한 문제들이 반한 감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2006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수비크조선소는 ‘투자장려법’에 따라 8년 동안 각종 세금이 면제된다. 당시에 조선소 현지 노동자들의 한달 임금이 한화로 18만원 정도였다. 회사에는 당연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의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수비크에 도착하여 첫째로 한 일은 현지 조선소의 해고 노동자들과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해 7월 수비크조선소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결혼을 앞둔 젊은 아들을 잃은 70살 노부부는 자식 잃은 슬픔을 쓸어내리며 “나는 20년 동안 필리핀 공사 현장에서 일했어도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 내 아들은 조선소에 일하러 나간 지 한달 만에 차디찬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며 울분을 토했다. 물론 한진의 금전적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다단계 하청업체의 몫이다.
우리가 수비크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3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필리핀건설연맹(NUBCW)은 이미 그해 3월과 6월 두차례 걸쳐 성명을 내고 산재 사망 사고에 우려를 표했으며, 직업건강안전기준(OHS) 위반 여부를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를 요구하고 있었다.
또 필리핀 노동법에 따르면 채용 뒤 6개월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소속 하청업체가 자주 바뀌었다. 우리가 현지를 방문했을 때도 한진의 푸른색 유니폼 근무복은 모두 똑같은데 왼쪽 가슴의 회사 이름은 각기 모두 달랐다. 노동자들 자신도 모르게 소속이 수시로 바뀐다고 한다. 당시 한진 현지법인의 사쪽은 “노조가 조직화 사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400명을 해고하겠다”고 통보한 상태였다. 이를 위해 계속 일하고 싶으면 ‘충성 맹세’ 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해고자 및 활동가들의 사진을 현장 정문 앞에 부착하고 범죄자처럼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당연히 반한 감정이 극에 달할 수밖에….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법인에서 벌이고 있는 행태를 보면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딱 맞다.
노동자의 무덤’ 한진중 수빅조선소 시위 격화 | ||||||||||||||||||||||||||||||||||||||||||||
20일 빗속 뚫고 시위, 7월3일에는 마닐라~수빅만 차량시위 “부당한 일처리 11건, 불법 해고 63건, 불법 직무유예 23건” 2007년 이후 31명 사망, 2009년 필리핀 상원 특별조사 벌여 | ||||||||||||||||||||||||||||||||||||||||||||
김도형 기자 | ||||||||||||||||||||||||||||||||||||||||||||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사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이 회사의 필리핀 공장에서도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 현지언론 <비지니스 미러>는 지난 20일(현지시각) 필리핀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 앞에서 필리핀 노동단체 회원들과 가톨릭 교회 신자들이 거센 빗발을 뚫고 행진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에게 한진중공업에 노동법 준수와 안전기준 이행을 촉구하도록 요구했다. 이들은 “수빅조선소 안의 열악한 근로조건 때문에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해 2007년 이후 지금까지 31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고 <비즈니스 미러>는 전했다. 조선소를 사실상 필리핀 수빅만으로 옮기기 위해 부산 영도조선소의 노동자 대량해고를 단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현지에서도 노동조건 등을 놓고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또다른 현지 언론인 <인터아크숀>은 다음달 3일 노동단체들이 인간다운 노동조건 이행을 촉구하며 수도 마닐라에서 수빅만까지 차량 시위 행진을 벌인다고 29일 보도했다. 필리핀판 ‘희망버스’인 셈이다. 이 신문은 노동단체 주장을 인용해 “한진중은 한국 감독관의 부당한 일처리 11건, 불법 해고 63건, 불법 직무유예 23건에 관련돼 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의 일부 의원들은 시정 요구사항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정부가 직접 개입할 것으로 촉구하는 등 한진중 수빅 조선소 문제가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필리핀 노동당 사무총장인 주디 앤 마란다는 <인터아크숀>과의 인터뷰에서 “한진중은 국제노동계로부터 노동자 권리의 무덤으로 낙인찍히고 있다”면서 “한국정부는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자국 조선소로 하여금 안전기준과 노동조건을 준수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진중은 지난해 12월 영도조선소의 수주 부진을 이유로 인력감축에 나서 생산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10명을 해고했다. 그러나 한진중 노조쪽은 수빅조선소에 물량을 물아주기 위해 영도조선소를 사실상 버리는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한진중은 2008년 해양경찰청이 발주한 경비정 9척을 마지막으로 국내 수주물량이 한 건도 없는 반면, 수빅조선소는 지난해에만 23척의 물량을 수주했다. 사쪽은 수빅조선소의 경우 3년간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한진중 노조는 “국내 4위의 조선업체가 3년 가까이 수주를 한건도 못했다는 것은 경쟁업체의 호황에 비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철성 한진중 홍보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수빅만 건설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재작년까지 29명이고 지난해와 올해는 사망자가 없으며, 필리핀 상원의 조사도 과거의 일”이라며 “필리핀 현지에서 시위는 있었으나 일부 노동단체에서만 관심 있는 사항이고 필리핀 전체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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