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네 집은 하늘 위에 있다. 35m 높이의 1평 남짓한 크레인 조종실, 사람 하나만 누워도 뒤척일 여유조차 없는 공간에서 그녀는 벌써 6달째 살고 있다. 그녀의 집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은 한때 그 남자 김주익이 살았던 곳이다. 회사는 그녀가 그곳을 무단으로 점거했다 하고, 법원은 회사 말이 맞다며 하루에 백만 원씩 벌금을 내라 한다. 1평도 안 되는 공간이 하루에 백만 원이란다.
그곳에서 크레인을 조종하는 노동자가 받았던 임금은 얼마일까? 노동의 대가에는 인색하고, 인간에 대한 대접은 가혹한 그곳 85호 크레인. 거기가 한진중공업의 처녀 용접사, 소금꽃나무의 그녀, 김진숙의 집이다.
85호 크레인, 그 여자네 집에 가다
6월 11일 살풋 해가 지려는 늦은 오후, 시청 광장 귀퉁이 재능교육노조의 농성장 앞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발 부산행 '희망버스'이자, 재능노조발 한진중공업행 '연대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는 1박2일 여정으로 그 여자네 집에 놀러간다.
지난 1월 6일, 한겨울 매서운 새벽바람 속에 그녀는 그곳에 올랐다. 쇠톱으로 3시간 동안 자물쇠를 자르고, 올라간 후엔 크레인의 입구를 용접해서 막아버렸다. 조합원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익씨가 끝내 못 이뤘던 '내 발로 이곳에서 살아 내려가는 꿈'을 꼭 이루겠다"며 외려 조합원들을 다독이고 있다.
그런 김진숙을 응원하고, 김진숙이 그토록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이유인, 정리해고 당한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휴일을 반납하고 이곳에 왔다. 조직된 투쟁에 선뜻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희망버스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제안했다. 희망이란 단어에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버스에 오르자고 했다. 불과 며칠 만에 희망버스 11대가 채워졌다.
버스가 들어오자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희망버스에 올랐다. 내가 탄 8호차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다큐멘터리 감독, 작은책 독자, 산악회 회원, 교사, 대학생, 주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탔다. 무엇보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해 유명해진 '날라리 외부세력'이 타게 되어 즐거웠다.
이들은 김진숙 '언니'와 트위터를 하면서 어제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반드시 그녀의 흥을 돋우고 올 작정이란다. 이들은 버스 안에서부터 흥겨운 여흥시간을 한판 벌였다. 함께한다는 반가움이 처음 만나는 어색함을 금방 넘어선다.
어디 가든 즐겁게 놀고, 내키면 하고, 하고 싶은 만큼만 하는 이들의 연대 방식이 아직은 낯설지만, 서로의 진심을 잇지 못했던 사람들을 소통시키는 첫 걸음을 '희망버스'가 뗀 것이다.
한판 놀고 난 후, 이런 저런 싸움 과정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다. 쌍용자동차, 재능, 동희오토 그리고 한진중공업 투쟁들이 담긴 내용이다. 쌍용자동차가 옥쇄파업을 벌이고 있을 때, 그녀 김진숙이 연설하는 모습도 보인다.
"배를 만드는 것도, 차를 만드는 것도, 그걸 움직이는 것도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왜 노동자가 구조조정 되어야 합니까…."
그녀의 그 특별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벌써 심장이 아프다. 그녀의 목소리만 들으면 나는 2003년 김주익과 곽재규의 장례식 때 읽은 추도사가 떠오른다. 너무나 가슴 아팠던 추도사.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 동지가, 김주익 동지가, 그 천금같은,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 올 수만 있다면, 그 억센 어깨를, 그 순박하던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장례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그녀의 절규. 그 장례식 후 그녀는 이가 몽땅 빠지는 것 같은 심한 몸 앓이를 했다고 한다.
화면에 저 멀리 어두운 공장 안에서 아내들의 응원 소리에 불빛으로 답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보인다. 가슴이 뭉클하다. 어쩌다 어제까지 일했던 공장 안에 가시철망이 놓이고, 어제까지 함께 잠을 잤던 남편들이 저 곳에 갇혀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단 말인가. 정리해고를 두 번 당한 남편의 아내는, 볼트자국 투성이인 남편의 몸뚱이를 보고 그만 울어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쫓겨난 아저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느 거리를 떠돌다 찬 소주를 들이붓고, 잠든 아이의 이마를 내려다보며 한숨 짓고 있을까. 왜, 노동자들만 이렇게 고통스런 삶을 견뎌야 할까. 우리는 왜, 왜냐고 묻지 않을까?
그저 재밌게 한판 놀다가려는 것을, 왜
새벽 1시가 다 되어 한진중공업 근처에 도착했다. 희망버스가 온다는 소리에 예민해진 회사가 조합원들을 공격했다. 용역깡패들과 벌써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인 트위터로 "제발 때리지 마라"는 외침을 애타게 타전하고 있다.
얼마나 속이 탈 것인가. 우린 그저 즐겁게 놀다 가려는 것뿐인데, 이 진지한 살수차와 무장 경찰들은 다 뭐란 말인가. 반복되는 경찰의 해산명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손에는 촛불을 들고, 목에는 분홍 손수건을 매고, 가슴에는 희망을 담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향해,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그녀를 향해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한진중공업의 정문은 용역깡패와 경찰들로 막혀있었다. 대형 콘테이너 박스를 옮겨 용접까지 해버린 정문 앞에서 가족대책위의 젊은 아내들이 눈물바람으로 희망버스를 맞아준다. 반가워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웃다가도 울고. 우리는 내 한 몸만 달랑 오면 됐지만, 이들은 며칠을 꼬박 희망버스 맞이할 준비로 바빴다고 한다.
여느 가족대책위(이하 가대위)보다 젊은 아내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2003년도에 김주익과 곽재규가 죽은 후 그들의 목숨 값으로 입사한 젊은 조합원의 아내들이란다. 공장 맞은 편 불 꺼진 아파트가 주로 가대위의 아내들이 사는 아파트다.
투쟁이 시작된 후 아내들의 일상도 엉망이 됐다. 아직 아이가 없는 아내들이 젖먹이들을 돌보다가, 젖 먹일 시간이면 다시 교대하고 나오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정리해고 명단에는 젊은 조합원들이 많아, 아이들도 젖먹이부터 서너살, 예닐곱살 졸망졸망하다. 그 아이들의 미래가 눈에 밟혀 엄마도, 아빠들도 이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
자랑스러웠던 대기업의 정규직 남편, 풍요롭진 않았어도 안정됐던 생활, 왜 갑자기 열심히 일한 남편이 해고가 되고, 내 아이들의 미래가 암담해져야 하는지, 왜, 죄 없는 이들이 당해야 하고, 용역깡패에게 두드려 맞아야 하는지, 그녀들은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다.
남의 일만 같았던 노조, 투쟁, 해고, 이런 단어들이 내 인생에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계속 고립되어 싸우던 남편들에게 그래도 희망버스를 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 주어서 너무나 고맙다고 그녀들은 계속 울고만 있다.
"희망버스 타고 온 동지들은 모두 인도로 올라서세요" 하는 소리를 듣고 담장 밑 인도에서 촛불집회를 하려나 보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담 안쪽에서 노동자들이 사다리를 건넸고, 이를 타고 넘는 사람들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담을 타고 넘어간 사람들이 용역들을 쫓아내고 정문 옆 유리문을 열어주었다.
순천과 전주 등지에서 온 희망버스까지 모두 합하면 800명 정도가 왔고, 부산과 인근 지역에서 온 사람들까지 천 명 정도가 모였다. 한진중공업 싸움 시작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조직된 노동자 아닌 시민들이 모인 일은 처음이다.
꽉 막힌 공장의 담을 넘어, 용역깡패들을 순식간에 몰아내고 희망버스는 드디어 한진중공업에 도착했다! 저 크레인 위의 그녀도 비로소 가슴이 벅차다!
"희망버스, 하루천하가 될까 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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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호 크레인, '해고는 살인이다' |
ⓒ 이선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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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안쪽 마당에서 바로 도착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창수 열사의 아버지, 백기완 선생, 문정현 신부가 정문 위 담장에 올라섰다. 열사를 자식으로 두었거나, 시대의 열사들을 가슴에 묻은 팔순의 어른들이 담장 위에 올라 열변을 토한다. 길 위의 신부는 담장 위의 신부가 됐고, 길 위의 투사들은 담장 위의 투사가 됐다.
집회 대열 끄트머리에 낯익은 얼굴이 앉아있다. 쌍용자동차의 계영휘 조합원이다. 77일 동안 공장 안에서 옥쇄파업을 벌였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지금 한진중공업의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는 희망버스를 보니 가슴이 벅차면서도 벌써부터 떠날 일이 걱정이라고 했다. 남겨진 자들의 처절한 고립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감동과 걱정이 교차하는 얼굴로 77일간 벌였던 자신들의 옥쇄투쟁을 다시 떠올린 그는, 이기는 길은 연대뿐임을 거듭 거듭 강조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지요. 우리는 절망이었는데 여기는 희망이 보이니까. 한진은 그래도 김진숙 동지가 구심점이 되니까 다행이에요. 행복한 데죠. 우리 때도 전국서 버스가 왔을 때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벅찼어요. 이게 연대구나! 우리가 이 투쟁 이기고 현장으로 돌아가면 꼭 연대를 실천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우리는 졌지만 신과 의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마음으로 되새기고 되새기고 했어요.
그런데 이 희망버스가 하루천하가 될까 걱정이에요. 계속 연대해줘야 하는데, 안 건드린 것만 못하게 될까봐. 그 끈을 놓으면 이 사람들 다 죽어요. 정치인들이야 입지 세우고 가면 그만이지만, 떠나고 나면 남은 사람들이 걱정이죠."
조업을 멈춘 널따란 조선소 안에는 조립을 기다리는 자재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회사는 수주 물량을 필리핀 공장으로 빼돌리고, 흑자 공장인 영도조선소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김주익과 곽재규가 죽었을 때 약속했던 회사다.
170억이 넘는 배당금으로 경영진은 돈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허깨비 같은 주식놀음, 그들의 금고에 천문학적인 숫자로 쌓여가는 돈을 위해, 심장이 뛰고 살갗이 만져지는 실제 인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들은, 인간의 탈을 쓴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긴 50대 가장을 한 대에 200만 원씩 주고 매로 '다스리는' 존재들이니, 그 눈에 노동자들이 사람으로 보일 리 없다.
"1570일을 견뎌서라도 꼭 이기겠다"는 그 여자
집회를 마치고 드디어 그 여자네 집으로 간다. 정문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85호 크레인, 그녀의 집이다. 천천히 걸어 집 아래에 도착했다. "사랑해요 김진숙"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저 멀리 하늘 위에서 그녀가 쌍용자동차의 남편들처럼, 한 점 불빛으로 화답해준다.
그녀는 희망버스를 타고 온 우리를 하늘 위에서 뜨겁게 안아 주었다. 몇날 며칠 동안 가슴 설레며 우리를 기다렸다고 한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왔다"고, 그녀는 예의 그 투박한 목소리로 가슴 절절한 환영사를 낭독했다.
그녀의 인사말은 한 글자도 버릴 게 없다. 피멍 든 가슴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입사동기 박창수의 죽음을, 소 같이 우직했던 김주익의 죽음을, 늘 같은 자리에서 자신을 지켜주던 곽재규의 죽음을,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그 천금 같은 동지들의 죽음을, 신열처럼 달고 사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2003년 11월 16일, 나는 김주익과 곽재규의 장례식 현장에 있었다. 85호 크레인 아래를 가득 메운 조합원들이 목 놓아 울지도 못하고 꺼억꺼억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던 그 현장에서, 김진숙이 말했던 누더기 같은 작업복을 입은 초라한 아저씨들의 고통스런 의식을 지켜보았다.
129일 동안, 한 사람만 곁에 있었더라면 그렇게 김주익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진작 이렇게 모였더라면 곽재규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뒤늦은 후회와 자책으로, 가슴 대신 땅바닥을 치며 시멘트 바닥에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소금꽃나무들을 보았다.
김주익과 곽재규의 목숨 값으로 그들은 복직이 되었고, '남한 최고의 단체협약'을 따냈다. 박창수가 죽어 민주노조를 지켰고, 김주익과 곽재규가 죽어 정리해고를 막았다. 비루한 목숨들은 살아남아 평생 죄인이 되었다.
오늘 환영사도 역시나 그 남자, 김주익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8년 전 한 달 넘게 봉쇄된 공장이 마침내 뚫려 사람들이 이 85호 크레인 밑에 모이던 날, 감격으로 울었던 그 소 같은 사람을 끝내 지키지 못한" 회한을 먼저 꺼냈다.
"귀때기 새파란 용역들한테 짓밟히는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외롭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기를 쓰고 버텨온 가여운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말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 목숨 던져 지켜낸 바로 그 사람들, 저들은 나를 버린다 해도 나는 저들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 사람들을 함께 지켜달라"고 했다.
누군들 눈물 없이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으랴. 그저 소박하고 단란했던 그들의 일상을 다시 돌려주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이 담에 죽어 박창수와 김주익과 곽재규를 만날 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고픈 그녀의 마음을. 157일 아닌 1570일을 견뎌서라도 꼭 이기겠다고,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그녀의 다짐을, 누군들 모른 척 외면할 수 있으랴.
김주익 죽고 8년,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으로 질기게 싸운 그들 덕에 그녀는 오늘 '박종철 인권상'을 받는다. 새벽 4시, 줄에 묶여 올라간 트로피를 받아든 그녀는 하늘 위에서 "상 받으니까 좋다!!"며 함박 웃고, 날라리들은 그녀의 집 아래에서 한판 난장을 벌이기 시작했다. 공장 안은 해방구가 됐다. 밤새 신나게 노는 우리를 저 위에서 지켜보며 그녀가 웃는다.
우리가 2차 희망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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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그녀도 함께 손 흔들며 놀았다 |
ⓒ 이선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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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라리 외부세력과 춤 추는 박성호 |
ⓒ 이선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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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지어 앉은 곳마다 그녀에게 손 한 번 흔들어달라고 애타는 구애가 이어진다. 그녀의 손놀림 지점이 분명치 않을 때는 서로 침을 튀겨가며 "나에게 흔든 것"이라 주장한다. 놀다가 먹다가 올려다보면 손 흔들며 거기 그녀가 있다. 하얗게 날이 새도록 줄곧 서 있다.
몸빼 바지를 입고 천연덕스럽게 뽕짝을 부르는 날라리들 사이에서 파란 작업복을 입은 한진중공업의 노동자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놀고 있다.
박창수와 김주익, 곽재규의 장례를 차례로 치르고, 15년 만에 복직된 한진의 해고자. 너무 많은 장례를 치러 관이라면 이골이 나고, 몸서리가 처지는 한진중공업의 '장의사' 박성호. 김주익과 곽재규에게 죄인이 되어 묵묵히 김진숙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때론 내부 상황 때문에 속앓이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정리해고를 막고, 이 싸움을 이기기 위해 썩어 문드러진 가슴을 안고 그렇게 버티고 있는 사람. 한 겨울에 시작해 벌써 두 계절이 지나는 그녀의 농성기간 동안, 까만 얼굴은 그의 속처럼 더 까맣게 탔고, 자르지 못한 수염은 덥수룩하게 얼굴을 덮었다.
날라리들과 함께 뽕짝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그 모습이 나는 왜 그리 아프던지….
그녀도 위에서 박성호를 보고 있었다.
"박창수 위원장 시절 상집 간부를 했고, 해고 됐고, 징역 3번 갔고, 김주익 목숨 값으로 15년 만에 복직됐다가 이번에 다시 해고된 박성호가 춤추는 모습을 보며 벅찼고, 손뼉을 치면서도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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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해고 반대, '사람이 꽃이다' 손도장 |
ⓒ 이선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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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울고 웃고 놀다, 환한 아침을 맞은 다음날 아침.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 조선소 안으로 후끈 더위가 밀려들었다. 가대위 아내들이 손님들이 먹을 아침과, 선물까지 마련해서 공장에 돌아왔다. 찡얼대는 아이를 어르면서, 한 손으론 정성스레 포장한 양말을 행여 하나라도 빠트릴 새라 정신없다. 뭐 했다고 밥 얻어먹고, 선물까지 받아 가는지 참, 염치없어진다.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오자 그 여자네 집 아래서는 대형 걸개에 비정규직 없는 세상, 해고 없는 세상을 꿈꾸는 손도장들이 찍혔다. 희망의 꽃바람개비도 만들어 한 손 한 손 건네 그녀의 크레인에 달아주었다.
그녀가 우리에게 송별사를 읽는다. 밤새 우리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잠시 사라졌던 시간, 그녀는 날이 새면 떠날 우리에게 희망과 다짐의 송별사를 쓰고 있었다.
하룻밤 새 환영의 말과 배웅의 말을 적어야 하는 그 여자는, "제 손으로 걸어 잠근 문을 열고, 158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한 대로 제 발로 저 계단을 내려가겠다"고 한다. "주익씨가 끝내 이루고 싶었던 소원을 꼭 이루겠다고"고도 한다.
그녀가 '주익씨'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슬픔이 잘근잘근 입술에 씹힌다. 김주익 위원장, 김주익 열사도 아닌 '주익씨'라는 단어의 느낌이, 너무 애잔하고 슬퍼서다. 그녀가 '주익씨'라고 부를 때마다 김주익의 장례식이 생각나고, 솥발산 김주익의 무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던 그녀가 생각나고, 보름달이 되어가는 밤하늘을 보며 유서를 썼던 김주익이 생각난다. 아픔 없이 부를 수 없는 이름. 그녀는 그를 위해서라도 꼭 살아 내려가겠다고 한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며, "사랑한다"고 "힘내시라"고 모두 한 곳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저 위의 그녀도 "힘내겠다"고 "고맙다"고 "또 오라"고 손을 흔들고, 주먹도 쥐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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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인 위의 그녀에게 손 흔들며 떠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 |
ⓒ 이선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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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지어 서서 배웅해주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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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보이던 크레인이 점점 멀어지면서 몸을 돌려야 보이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우리를 따라 반대 쪽 난간으로 옮긴 그녀가 말없이 우리를 보고 있다.
돌아가는 길 양 쪽으로 한진중공업 아저씨들이 줄을 지어 서서 박수를 쳐준다. 다 짊어져야 할 사람들을 두고 가는 우리가 박수 받을 자격이 있을까. 떠나고 나면 이들만 또 덩그러니 남겨질 텐데… 하룻밤 부질없는 사랑인 것만 같아 애달프다.
마지막 한 사람이 떠날 때까지,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복면에 가렸어도 보인다. 무얼 말하고 싶은지, 지금 어떤 마음인지. 그래서 모두 울었다. 모두 눈물 바람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다시 올지언정, 떠나고 남는 이 순간은… 그저 슬프다.
떠나고 나면 또 어떡하느냐는 소리에 박성호가 담담하게 말한다. "현실인데요 뭐" 아내와 함께 우리를 배웅해 주는데, 꼭 잡은 부부의 그 손이 어찌나 애틋하던지…. 가대위의 아내들은 "여러분이 가고 난 후 우리 아빠들이 더 걱정이 된다"고, "돌아가서도 계속 관심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가 본 사람은 안다. 왜 다시 거기에 가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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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떠날 때 까지 크레인 위에서 바라보는 그녀 |
ⓒ 이선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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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머물다 돌아온 85호 크레인... 그 여자네 집
어느 해 129일 동안 그 남자네 집이었고, 지금은 그 여자네 집이 되어 한국서 제일 비싼 방세를 내고 있는 집. 박창수와 김주익, 곽재규를 가슴에 묻고, 해고된 조합원들을 어깨에 짊어진, 그녀, 김진숙이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는 집.
비록 몸 하나 뉠 곳 없이 좁지만 수천 명을 너끈히 품고도 남을 넉넉한 집. 흙 한 줌 없는 파란 하늘 한 가운데서도 치커리와 방울토마토가 자라는 생명의 집. 흔들려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집, 아니 무너진 만큼 다시 일어나는 집. 그래서 우리가 다시 가야 할, 꼭 지켜줘야 할 그 여자네 집. 아니 희망을 지닌 우리 모두의 집.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여자네 집에 가야 한다. 2차 희망버스는 7월 9일 출발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한진중공업에는 공권력이 투입됐고, 회사는 그 여자네 집의 전기를 끊었다. "그들은 나를 버려도, 나는 그들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백 가지가 넘는" 조합원들이 제 몸보다 먼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
좁고 가파른 크레인 계단에는 조합원 수십 명이 서로의 몸과 크레인 난간을 밧줄로 꽁꽁 묶은 채 저항하고 있다.
하늘 위의 그녀는 8년 전의 김주익처럼 밧줄로 서로를 묶는 상처 받은 짐승들의 몸짓과, 정리해고로 무너지고 용역깡패에게 짓밟힌 이들의 마지막 몸부림을, 그럼에도 자신을 먼저 지키겠다고 달려온 그들의 소 같이 우직한 몸뚱이를, 그저 고스란히, 고통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