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연대’와 진보정치 파산이 의미하는 것
[참세상 논평] 18대 대선, 신·구 보수연합의 승리
40여년 만에 양자대결이었던 대선. 최종 승리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 돌아갔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승리한다는 일반적인 예측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잠정 투표율은 75.8%로 지난 17대 뿐만 아니라, 16대 대선보다도 높았으나, 결과는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의 기대와는 달랐다.
특히, 50대 보수층의 결집은 눈부실 정도다. 2002년 40대 투표율은 76.3%로 노무현 48.1%, 이회창 47.9%의 지지를 보냈다. 그런 그들이 꼭 10년이 지나 50대가 된 2012년 18대 대선에서 50대 투표율(방송사 출구조사)은 무려 89.9%에 달한다. 그리고 이들은 박근혜 62%, 문제인 37%로 지지를 보냈다. 이 결과만 놓고 본다면 40대에는 투표장에 가지 않았던 보수층들이 10년 후 투표장으로 대거 몰려 나왔고, 이들 중 상당수가 박근혜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대선 결과가 굳어지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이 세대는 40대 내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의 고통을 한 몸에 받았다. 명퇴 후에는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소외받고 자영업자로 힘겨운 10년을 보내야 했던 세대다. 마지막 재산인 집을 지키고 집값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 그러면서도 세금 내는 것이 버거운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이들이 노무현식 정치에 대한 환멸이었든, 박근혜라는 인물에 대한 성장주의의 환상을 가졌든, 이들이 투표장으로 달려나오면서 대선의 판세를 갈랐다.
박근혜 후보는 MB와의 차별화를 통해 ‘반MB’를 희석시키며 신구 보수층을 결집시켰다. 전통적 보수층은 ‘안보’ ‘애국심’ ‘경제위기 극복’의 코드를 갖고 결집했다. ‘아버지를 넘어서겠다’고 함으로써 과거 유신시대의 과오 극복을 얘기했다. 신보수층은 ‘국민대통합’, ‘준비된 여성대통령’, ‘온정적 선택적 복지’, ‘새로운 보수’의 이미지로 총결집했다. IMF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 형성된 이들이다. 경쟁교육, 성공이데올로기, 시장논리 등을 내면화한 신자유주의 경제사회체제가 낳은 계층이다. 이들은 ‘줄푸세’, ‘잘살아보세’라는 성장주의와 결합해 18대 대선에서 결집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의 ‘반MB'는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 새누리당 앞에서 무력했다. FTA, 해군기지, 의료민영화, 노동유연화, 노동탄압 등 MB는 사실상 노무현 정책의 계승자였기 때문이다. 결국 ‘반MB’는 ‘반노무현’을 넘어서지 못했다. 비정규직 양산 등 참여정부의 잘못을 인정했으나 시대의 한계로 이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한계에서 행해진 막판 젊은 층에 대한 투표참여 독려와 각종 폭로는 오히려 ‘신구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문재인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목표 속에 ‘야권연대’를 실현했다. 하지만 ‘야권연대’는 ‘정권교체’ 외에 어떤 가치도 미래의 비전도 정확히 보여주지 못했다. 신자유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재벌중심의 성장주의 프레임을 넘어서지도 못했고, 실체도 불분명한 경제민주화론에 혼란만 가중시켰다. 뒤늦게 안철수와의 단일화로 ‘새정치’와 ‘국민후보’를 내걸었으나, ‘야권연대-정권교체’가 열린 미래로 나아간다는 확신을 심어주진 못했다.
이번 대선에서 국면을 주도한 건 안철수였다. 총선 민주당의 패배 이후 야권과 부동층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안철수 현상’은 양당체제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었던 중간층, 불안한 미래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사는 젊은 층이 주요 기반이었다. ‘새정치’를 키워드로 한 그의 부상은 과거 ‘제3의 세력’으로 등장했던 정주영, 이인제, 정몽준과는 달리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다. 하지만 안철수의 새정치는 문재인 후보로의 단일화를 선언하고 사퇴함으로써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야권연대’에 똑같이 갇혀 버렸다. 또한 선거과정에서 안철수가 보여준 것은 안개화법으로 포장된 준비안된 정책들이었고 오히려 민주당보다 보수적인 정책들이었다. 야권의 대선 패배로 안철수 현상은 더 강화되겠지만, 안철수가 구성할 정치쇄신의 내용은 여전히 안개 속에서 오른쪽 깜빡이의 희미한 불빛만 보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번 18대 대선의 가장 큰 패배는 진보정치, 진보정당에 있다. 자신의 조직적 독자성, 정체성도 지키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채 모든 것을 ‘야권연대’와 ‘정권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에 소위 올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재인 후보의 패배이지만 진보진영은 그 패배마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버렸다. 10년 전과 달리 국민대중이 더 이상 진보정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고 진보정당의 의제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명박 정부 내내 당 내 선거부정 시비와 분열로 바람 잘 날 없었다. 과연 보수정당과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가 노동자정치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쌍용차 정리해고, 현대차 비정규직 등 현장투쟁의 목소리를 함께하고 노동정치의 불씨를 살리려 노력을 했으나 그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이들의 정치가 득표율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출마과정에서의 문제, 노동대중의 힘을 결집시켜 내지 못한 한계 속에서 이후 노동정치의 전망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신구 보수층의 결집으로 다시 정권을 이어가게 된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자에게 놓여진 길이 순탄하진 않을 것이다. 비록 과반수를 넘는 지지를 얻었다 할지라도 그 지지가 후보가 아닌 대통령이란 자리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저성장과 경제위기, 불평등 및 빈곤의 확대, 일본 자민당의 재집권으로 상징되는 우경화와 북의 로켓 발사 등으로 격화되는 동북아 긴장관계 및 남북관계의 고착, 정당 검찰 경찰에 대한 불신 등. 후보시절 내걸었던 정책과 공약으로 해결 가능할 지 의심스러울뿐더러 오히려 더 악화시킬까 우려스럽다. ‘선거의 달인’이 ‘국정운영의 달인’으로 이어질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는 얘기이다.
박근혜로 청와대 문패의 이름표만 바뀌었다고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이번 대선 결과가 한국사회의 앞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진보진영의 입장에서는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시작된 10여년 간 진보정당의 한 시즌이 비극적으로 마감된 셈이다. 정권교체와 야권연대라는 맹목적 구호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다. 무엇보다 노동정치의 새로운 시즌을 열기 위해서는 지금의 비극을 정면으로 맞서고 성찰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