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파업 ‘무죄’와 노동 3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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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 김용국 | |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33조 1항) 학창시절부터 익히 들어왔던 노동 3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법률로 섣불리 제한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헌법상 권리 노동 3권, 현실에선… 사측에 맞서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찾기로 인정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파업은 그 자체로 불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있다. 실제로 파업은 법의 단죄를 받아오고 있다.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파업과 집회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업무방해죄, 도로교통법 등으로 처벌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측이 노조(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과 거액의 가압류가 형사처벌보다 오히려 노동자들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노조의 파업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 무죄를 선고한 한 판결이 눈길을 끈다. 지난 1월 28일 대전지방법원(김동현 판사)의 판결이 그렇다. A4 용지 50장에 달하는 이 판결에는 기존의 판례와는 달리 헌법적 권리인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원이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이 기소한 이들은 22명의 철도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다. 2009년 철도노조는 철도공사측의 불성실 단체교섭 등을 규탄하며 준법투쟁(열차의 제한속도를 유지하는 등 안전과 관련된 규칙을 준수하여 열차운행을 지연시키는 방식)에 이어, 경고파업, 전면 파업 순으로 수위를 높여나갔다. 검찰은 이를 업무방해죄로 본 것이다. (실제로 대전지법을 제외한 대부분의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 철도노조 조합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해왔다.) 검찰의 논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2009년 당시 철도노조의 준법투쟁과 파업은 불법이다. 노조는 명분상 단체교섭 성실 촉구를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공기업 선진화‘ 반대, 해고자 복직, 손해배상 소송 철회, 연봉제 도입 반대 등 근로조건과 무관한 정치적인 사안을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있었다. 이러한 사항은 경영권에 속하는 것이므로 노조의 쟁의행위는 목적에서 정당성이 없으므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
대전지법, 노조 파업의 정당성 폭넓게 인정 “무죄”선고 대전지법은 쟁의행위의 정당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목적에 정당성이 있다면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되어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쟁위행의가 정당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선 다음 4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1. 행위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로 될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2.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3. 사용자가 근로조건에 관한 단체교섭을 거부했을 때 하되, 조합원 찬성 및 쟁의발생 신고절차를 거쳐야 한다. 4.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이다.
그런데 각론으로 들어가보면 조금 복잡하다. 대법원은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만이 단체교섭이 대상이 되고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 문제는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 교섭대상 (나아가 쟁의대상)이 될 수 없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여왔다.
노동3권이 제한되더라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하고 결국에는 더많은 고용 창출로 근로자에게 이익이 되고 국가경제도 발전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논리였다. 대부분의 파업이 목적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불법으로 간주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하지만 대전지법은 이 판례를 따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법원은 “경영사항에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항의 경계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며 “(노조법) 법문의 규정에 충실하다면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사용자가 처분권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명백한 법문의 근거도 없이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창설하여 쟁의행위를 처벌한다면 명확성의 원칙을 해할 수 있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해석의 공리에도 반하게 될 것”이라고 기존의 판례를 비판했다.
대전지법은 이어 “원칙적으로 쟁의행위는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모두 목적이 정당하다고 본다”며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것이라면 (대법원의) 재고를 요청한다”고 판시했다. 즉 경영사항에 속하는 부분이라도 근로조건과 관계가 있다면 교섭 대상이 되고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검찰은 철도노조가 파업의 목적으로 성실교섭 촉구와 같은 표면적인 이유를 내걸었을 뿐 실제로는 공기업선진화 방안 반대, 연봉제 반대 등과 같은 교섭대상이 아닌 정치적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 노조 역시 하나의 이익 집단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목표와 지향을 갖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집회현장에서 정치적 목표와 지향점에 관한 발언들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이것이 쟁의행위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안이한 논리”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쟁위행위 목적의 정당성이 부인되기 위해서는 불법적 목적이 그 쟁위행위의 주된 목적이어야 하는 것이고, 주된 목적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목적이 제외되었을 경우에 쟁의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근로조건 개선이 주목적이라면 정치적 목적 포함된 파업도 허용해야” 즉 쟁위행위의 주된 목적이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된 것이라면 다소 정치적인 내용을 목표로 하는 파업도 허용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 이유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부당하게 단체행동권을 제한당하지 않게 되면서 사용자에게도 부당히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원은 검찰이 노동운동 단체들이 연대하여 정치파업을 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노동운동의 주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쟁의행위를 활용하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불허되어야 하는 것인지 상당한 고민을 요한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판시했다.
법원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법원은 철도노조의 파업이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무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전지법은 이 사건을 심리하면서 전통적 시민법 질서에 익숙한 나머지 헌법적 현실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놓치게 될지를 끊임없이 자문하고 고민하였다고 밝혔다. 대전지법은 판결의 결론에서 “노동자들 역시 자신들의 권리행사가 사용자의 권리를 제약한다는 점을 깨닫고 두가지 법 질서가 조화를 이루는 합리적 지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법원은 판결 곳곳에서 사회법적 규정과 전통적인 시민법 규정의 조화, 노동자와 사용자의 공존을 강조했다.
“시민법과 사회법의 조화, 노동자와 사용자의 공존” 강조 이번 판결이 주목되는 부분은 적지 않다. 먼저 경영권에 관한 사항도 근로조건과 관계있다면 교섭이나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쟁위행위에서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따져서 목적의 정당성을 폭넓게 인정했다. 시민법과 사회법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무엇보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을 폭넓게 인정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이 판결이 상급심에서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헌법전에서 잠자는 줄만 알았던 노동 3권의 가치를 끄집어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빛이 나는 판결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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